아시아 일본  사이에서 근대의 폭력을 생각한다

아이아 총서 007

요네타니 마사후미 지음, 조은미 옮김 | 2010-07-25  | 272쪽 | 16,900원


19세기 말에서 태평양전쟁 패전 사이의 다양한 아시아 연대론을 분석하여 동아시아 사상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후쿠자와 유키지, 요시노 사쿠조, 미키 기요시, 오자키 호쓰미 등의 다양한 담론이 아시아의 다른 주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피고, 담론이 갖는 연대/침략의 이중성 문제, 그 속에 내포된 근대의 폭력성 문제를 고발한다. . 


저·역자소개 ▼

지은이  요네타니 마사후미 米谷匡史
1967년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도쿄대학에서 사회사상사와 일본사상사를 전공했다. 아시아/일본, 식민지/제국이 얽혀 있는 역사, 문화사를 재검토하고, 동아시아의 사상적 연쇄를 규명하여, 이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도쿄외국어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도쿄에서 ‘식민지/근대의 초극’연구회를 이끌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화연구자들의 공동토론인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의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 및 저서로는 「전시기 일본의 사회사상」(1997), 「야나이하라 다다오의 ‘식민·사회정책’론」(2003), 『아시아/일본』(2006), 『1930년대의 아시아 사회론』(2010) 등이 있으며, 편저로는 『와쓰지 데쓰로 인간 존재의 윤리학』(2000), 『오자키 호쓰미 시평집』(2004), 『다니가와 간 셀렉션』(전2권, 2009) 등이 있다.


지은이  조은미 
1971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도쿄외국어대학 지역문화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식민지 제국 일본과 일본어문학(자)을 둘러싼 담론 공간, 주로 이중언어문학자 장혁주를 둘러싼 동시대의 담론 공간을 연구하고 있으며, 저자 요네타니 마사후미의 제자이다. 논문으로 「식민지 제국 일본과 장혁주의 일본어문학 : 희곡 「춘향전」과 「만주문학」을 중심으로」, 「재일조선인 청년의 우수 : 장혁주 「이와모토 지원병」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차례 ▼

책머리에

I부 동아시아의 ‘근대’ 경험

1장_ 아시아/일본을 논하는 시좌
1. 다케우치 요시미의 시좌
2. 흥아론/탈아론의 재검토
3. 근대 비판의 시좌
4. 동아시아의 ‘근대’

2장_ 아시아/일본의 균열과 교착
1. ‘세계 시장’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상호 ‘개항’
가쓰 가이슈의 동아시아 제휴론 |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 문제
2. 갑신정변을 둘러싼 갈등
갑신정변과 자유당?오사카 사건 |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화론
3. 세기 전환기의 문명화론
동아시아에서의 ‘문명’과 ‘계몽’의 네트워크 | 오키나와의 문명화론 | 한말의 삼국제휴론?‘동양평화’론

II부 동아시아 변혁론의 계보

1장_ 전간기의 제국개조론
1. 민본주의와 ‘다문화제국’론
민족자결론과 제국개조론 | 제국주의 비판의 새로운 네트워크 | 식민지/제국에서의 ‘문화’
2. 식민지/제국의 ‘사회’ 문제
식민지 문제와 ‘사회’ 문제의 교착 | ‘식민지 근대’를 둘러싼 갈등

2장_ 전시기의 동아시아 변혁론
1. 전시광역권론의 대두
만주사변과 ‘오족협화’론 |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 | 사회주의자의 전시광역권론
2. ‘동아협동체’론을 둘러싼 갈등
‘동아연맹’론과 ‘동아협동체’론 | ‘동아협동체’론에 있어서의 새로운 식민지주의 | 오자키 호쓰미의 ‘동아협동체’론 | 조선 지식인의 ‘동아협동체’론

종장_ 세계전쟁 이후의 동아시아
전후 일본의 ‘탈아’ 노선 | 냉전기 동아시아의 ‘식민지적 개발’ | ‘탈냉전’기의 ‘동아시아’

참고문헌 안내
일본어판 후기 | 한국어판 후기 | 옮긴이 후기
서평_ ‘근대의 폭력’, 그 궤적으로서의 사상사의 시도(미치바 지카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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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의 ‘아시아 연대론’을 읽는다!
―동아시아 근대의 본질적 폭력성을 드러내는 사상사 연구


“일본과 조선을 놓고 본다면, 일본은 강대하고 조선은 약소하다. 일본은 이미 문명이 발달했고 조선은 아직 미개하다. (중략) 우리 일본이 무력과 권위를 앞세워 조선인의 마음을 압도하고, 일본의 국력으로 이웃나라가 문명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흡사 우리 일본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후쿠자와 유키치, 「조선과의 교제를 논함」 / 본문 78쪽)

일본 근대의 계몽가이자 1만엔권 초상일 정도로 존경받는 후쿠자와 유키치(福?諭吉), 그는 자신이 설립한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에 김옥균, 유길준 등 조선의 지식인들을 받아들일 정도로 조선의 문명개화를 적극적으로 도운 인물이다. 그러나 일본뿐만 아니라 조선, 지나(중국) 등이 함께 문명을 받아들여야 아시아가 번창할 것이라는 ‘흥아론’(興亞論)의 입장을 취했던 그는 김옥균 등이 일으킨 갑신정변이 실패한 이후 이웃나라를 정복하고 아시아를 벗어나야 한다는 ‘탈아론’(脫亞論) 입장으로 급변하기에 이른다.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 이렇게 ‘연대’를 지향하는 흥아에서 ‘침략’을 지향하는 탈아로 급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연대와 침략이라는 아시아 연대론 속에 내재된 상반된 양태를 분석하고 그 본질을 파헤치는 것, 이것이 이 책 <아시아/일본>의 문제설정이다. 즉, 이 책은 근대 초 일본이 아시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역설한 다양한 담론을 분석하고, 담론 속에 내포된, 문명의 전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침략을 정당화하는 근대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19세기 말의 가쓰 가이슈(勝海舟), 후쿠자와 유키치(福?諭吉), 오이 겐타로(大井憲太?), 전간기(戰間期,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약 20년)의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原忠雄), 전시기(戰時期, 태평양전쟁 시기)의 미키 기요시(三木?), 오자키 호쓰미(尾崎秀?)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연대론의 계보를 추적한다. 그리고 국경을 초월하여 상호 침투하는 ‘근대’의 힘에 직면한 아시아의 각 주체들(조선, 중국, 일본뿐 아니라 타이완과 오키나와,아이누까지)이 이 연대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아시아/일본 사이에 뒤얽힌 관계 속에서 각기 다른 입장들을 정리하면서, 연대와 침략을 동시에 낳을 수밖에 없었던 ‘근대’의 문제를 고찰한다.
이렇게 아시아 연대론을 분석하는 담론사 연구이자 동아시아 여러 주체의 관계를 분석하는 관계사 연구인 이 책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사상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일본 내에서만 논의되는 철학사상, 서양을 향해 발언하는 특유한 일본사상, 서양을 거울로 해서 일본사상사가 발전해 왔다는 논리를 넘어서, 일본의 사상이 이웃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상호작용과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정리함으로써 ‘근대의 폭력’의 궤적을 그리는 새로운 시도인 것이다. 사상담론과 동아시아 관계를 분석하면서 그 본질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동아시아 근대성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아시아/일본’으로 다시 짜는 사상사>

이 책은 동아시아의 사상사를 구성함에 있어 조선, 중국, 일본, 타이완, 오키나와 등의 각 주체가 맺고 있는 ‘관계’에 주목한다. 그래서 ‘동아시아’라는 말을 쓰긴 하지만, 이 말이 갖고 있는 근대적 공간 표상을 경계한다. 이곳의 각 주체들은 근대 제국주의의 폭력을 경험하는 과정과 양상이 모두 달랐으며 서로 간의 관계 또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이를 하나로 묶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이 책의 제목 ‘아시아/일본’은 아시아와 일본이 차이를 낳으면서 서로 깊이 연관된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한 표현이다. 아시아 각각을 실체화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써 지난 역사의 상흔을 마주하고 서로의 여백과 행간을 채우자는 미래적 함의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아시아 연대론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기존에 이미 충분히 연구되어 전형적이라고 할 만한 사상가들, 예컨대 “아시아는 하나다”라고 외친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 천황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주의를 주장한 기타 잇키(北一輝) 등이 아닌 진보적인 형상의 사상가들을 다루고 있다. 일본 제국에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좀더 적극적으로 고민한 사상가를 다룸으로써 당시 아시아 연대론 속에 감춰진 이중적 형상과 동아시아의 근대를 둘러싼 모순과 갈등을 좀더 자세하고 첨예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사상사의 구성을 19세기 말, 전간기, 전시기로 나눠 아시아 연대론이 어떻게 변화하고 아시아의 각 주체들이 이 담론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는지 보여 준다.

1) 19세기 말의 아시아 연대론
먼저 일찌감치 서양의 학문을 공부한 가쓰 가이슈(勝海舟, 1823~1899)는 정체된 아시아가 연합하여 유럽에 맞서야 한다는 동아시아 제휴론을 제시한다. 아시아가 “횡종연합하여 다함께 해군을 융성히 하고, 유무상통하여 학술 연구를 하지 않는다면 유럽의 유린을 피하지 못할 것”(본문 54쪽)이라며 조선, 중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연합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 주장의 파급력은 당시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때가 1860년대라는 점에서는 놀라운 일이다.
이러한 발상은 후쿠자와 유키치(福?諭吉, 1835~1901)에게 이어지는데, 특히 그는 문명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실제로 조선과 오키나와 등의 유학생을 받아들여 문명의 전파에 힘쓰며 동아시아가 함께 근대화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의 문명론은 조선에서는 갑신정변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고, 오키나와에서는 오타 조후(太田朝敷)의 문명화론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파급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 영향력의 결과는, 조선의 경우 청에서 일본으로 종속의 대상이 바뀌는 것일 뿐이고, 더욱이 오키나와는 일본의 종속상태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구하는 수단이 문명화를 향한 일본으로의 동화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으로, 각각 내재적 모순을 초래한다.

2) 전간기의 아시아 연대론
전간기는 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뒤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 비판과 민족자결주의가 부상하는 시기이다. 일본 내에서도 제국 비판에 따른 개조론이 등장한 시기로 그 대표적 인물은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1878~1933)와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 1893~1961)이다.
먼저 요시노 사쿠조는 “내정에 있어서는 민본주의의 철저”, “외정에 있어서는 국제적 평등주의의 확립”(118쪽)을 기본 전제로 일본 제국의 개혁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그는 3-1독립운동과 5-4운동, 타이완의 자치운동에 주목하며 민족자결론을 승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5-4운동의 주도자인 리다자오(李大釗)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중일 양국의 지식인과 학생들이 서로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연대를 돈독히 하고자 하고, 여운형의 기자회견, 즉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비판하고 조선 독립 승인만이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주장에 감명을 받아 “조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면상 가장 맹렬한 배일 분자와 먼저 제휴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것”(125쪽)이라며 배일 세력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민족자결은 독립론이라기보다는 ‘자치’ 승인에 그치는 것으로 결국 그의 제국개편론은 소극적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자치 승인의 의견을 좀더 구체화시켜 조선과 타이완에 의회를 개설하자고 주장한 야나이하라 다다오의 경우, 본국과 식민지의 노동계급이 제휴하여 제국의 문제를 토의하고 나아가 제국 전 지역의 사회주의화를 구상하기도 한다. 요시노 사쿠조와 야나이하라 다다오는 이렇듯 식민지에서 자립을 요구하는 시대적 분위기에 맞추고, 일본 내지의 민본주의, 사회주의와 연결하여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변혁을 꾀하고자 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은 철저하지 못했고 여전히 제국주의의 틀 속에 머물러 있다.

3) 전시기의 아시아 연대론
중일전쟁 발발 1년여 후 일본은 중국을 회유하고자 ‘동아신질서’ 성명(고노에 후미마로 수상. 1938년 11월 3일)을 발표하는데, 이를 계기로 다양한 연대론이 출현한다. 대동아공영권의 근거가 되는 ‘대아시아주의’, 일본, 만주, 중국을 아우르는 ‘경제블록론’, 만주사변의 주모자인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가 주장한 ‘동아연맹론’, 고노에 수상의 정책연구단체인 쇼와연구회에서 주장한 ‘동아협동체론’이 그것이다.
이 중 동아협동체론은 사회변혁을 통해 제국주의 분쟁을 극복하고 각 민족이 협동하여 새로운 동아시아를 형성하고자 한 것으로, 특히 오자키 호쓰미(尾崎秀?, 1901~1944)의 논의를 주목할 수 있다. 그는 다양한 동아협동체론이 중국의 민족 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것을 비판함과 동시에 제국 일본에 대한 자기비판을 수행한다. 그리고 항일전쟁을 벌이며 혁명을 진행하는 중국의 변화에 주목하여 일본과 소련까지 아우르는 ‘동아신질서 사회’의 비전을 제시한다. 중국공산당, 소련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첩보활동을 벌이던 그는 결국 체포되어 사형당하지만, 제국 내부 비판과 체제 변혁을 동시에 수행하고 “아시아를 살아가면서 저항과 연대를 사고하는 자립적 사고”(205쪽)를 보여 줌으로써 오늘날 아시아를 사유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


<아시아 연대론에 숨어 있는 연대/침략의 이중성>

“당신들 일본 민족은 구미의 패도문화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아시아의 왕도문화의 본질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훗날 다가올 세계문화를 마주하여 과연 서양 패도의 앞잡이가 될 것인가, 동양 왕도의 방패가 될 것인가는 당신들 일본 국민이 잘 생각해서 신중하게 선택하기에 달려 있습니다.”(13쪽)

1924년 고베에서 열린 ‘대아시아주의 강연’에서 쑨원은 아시아의 연대를 호소하는 일본을 향해 이와 같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질문 속에는 일본이 중국혁명에 협조할 수 있는가, 일본이 중국혁명을 지원하는 연대의 가능성은 있는가, 하는 질문이 숨어 있다. 그러나 이 강연을 보았던 동아일보 기자 윤홍열은 조선의 식민지적 상황이 대아시아주의와 모순된 상황을 지적하며 쑨원의 강연을 비판한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조선인에게 그의 강연과 중일 연대는 의심스러운 것일 뿐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일본의 패전 때까지 수많은 아시아 연대론이 제기되었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전반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다른 주체를 소외시키는 담론을 생산했다. 더구나 근대적 발전 방향으로 유인하고자 하는 문명론적 아시아 연대론 속에는 가쓰 가이슈가 군함을 타고 가 조선의 개항을 무력으로라도 실현시키겠다고 하듯이 폭력적 침탈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연대의 바깥에 둔 아이누인, 오키나와인, 타이완 선주민 등 마이너리티에 대해서는 동화정책을 긍정하는 논리가 담겨 있기도 하다. 또한 민족자결을 승인하는 입장에 서 있는 야나이하라 다다오의 논의 속에서도 그것을 통해 일본의 헤게모니를 유지 확대하고자 하는 신식민지주의적 의도를 포함하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모든 주체를 대등한 입장에 놓고 관계를 모색하지 않고, 문명적 근대의 세계 재편을 꿈꾸는 논의로는 진정한 아시아 연대론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제기된 아시아 연대론은 연대/침략의 이중적 성격을 벗어나기 힘들다.


<여전히 진행 중인 근대의 폭력>

근대의 폭력적 힘과 그 갈망은 아시아 연대론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근대를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아시아의 수출업자들은 연대와 협력을 말하지만 그 속에 침략적 본성을 감추고 있었을 뿐이다. 제국을 불러 식민지를 양산한 근대의 폭력, 발전과 진보의 욕망을 부추기고 과거와 타자를 철저히 억압한 근대의 힘이야말로 동아시아에서 모순과 분열, 마찰과 항쟁을 일으킨 본질적 주범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근대의 폭력적 양태는 일본 패망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가령 한국에서는 건국준비위원회가 독자적인 공화국 창설에 나서지만, 일본은 통치권을 미국에 이양함으로써 식민주의를 연장시키고 남북한의 분단을 낳았다. 그 덕택에 미국은 한반도와 오키나와, 타이완을 아우르는 방공세력권을 구축할 수 있었고 반면 동아시아는 병참기지로 전락했다. 다만 가해자 일본은 오키나와, 홋카이도 등지를 유지할 수 있었고, 지금은 되려 사할린과 쿠릴, 독도 등지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일본은 냉전 이후 아시아 각국의 독재정권과 경제 협력을 맺고 또다른 식민지적 개발에 착수해 왔다. 아시아 당국자들은 개발되어 좋고 일본은 배상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좋겠지만, 이로 인해 지역 주민의 생활기반은 무너지고 자연환경이 파괴되어 무수한 ‘개발 난민’을 낳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1997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일본이 건설된 고토 판장 댐은 극심한 환경적, 인권적 피해(10개의 계곡과 약 9천 헥타르의 농지가 잠겼고, 13개 마을이 이주해야 했다)를 가져왔다(더구나 건기 때는 전력생산 등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제 아시아 연대론의 이상은 국가와 자본 중심의 경제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살고 있는 구성원들에게 그것이 축복이 될 만한 일인지, 아니라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 광역 질서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른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이 책은 질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