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의 너머에서
아이아 총서 006
우카이 사토시 지음, 신지영 옮김 | 2010-06-07 | 416쪽 | 22,000원
우카이 사토시는 자크 데리다에게서 배운 학자답게 데리다가 말한 환대의 윤리, 주권론과 폭력론, 테러리즘 비판 등의 정치철학을 이어받아 일본 내의 내셔널리즘적 현실 변화를 비판하기도 하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특히 미국의 폭력적인 세계 통치를 비판한다. 그리고 국민국가와 주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적 논리를 펴 나간다.
이 책은 주권 개념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국민국가가 주권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의 폭력적 양태를 고발하고 그 속에서 배제된 마이너리티에 대한 환대를 주장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9·11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기지화, 히노마루-기미가요 법제화 등 점차 우경화하는 일본, 주권 밖으로 배제된 노숙자와 외국인 문제 등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을 재조명하여 국가 간 혹은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차별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저·역자소개 ▼
1955년 도쿄 출생. 교토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를 졸업했다. 프랑스 문학 및 사상을 전공했으며, 파리8대학에서 자크 데리다에게 사사師事했다. 특히 자크 데리다와 장 주네 연구를 바탕으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현재는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이자 같은 대학원 언어사회연구과 특임교수다.
잡지 『임팩션インパクション』 편집위원이며 일본에 포스트 신좌익 행동주의를 도입, ‘민족학교 출신자의 수험 자격을 요구하는 국립대학 교직원 성명’ 등 다양한 운동에 앞장서왔다. 1996년에는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와 함께 영화 「쇼아Shoah」 상영 운동을 벌였다. 지은 책으로 『속죄의 고고학償いのアルケオロジ?』 『자크 데리다의 무덤ジャッキ??デリダの墓』 등이 있으며, 국내에 『저항에의 초대』 『주권의 너머에서』 『반일과 동아시아』(공저) 등이 번역되어 있다.
지은이 신지영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부교수. 한국·동아시아 마이너리티 코뮌의 형성·변화를 1945년 전후 기록/문학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면서, 현재의 난민·장애·비인간 존재의 곁/뒤에 설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꾼다. 저서로는 『不부/在재의 시대』(2012), 『마이너리티 코뮌』(2016), 『난민, 난민화되는 삶』(2020, 공저), Pandemic Solidarity (2020, 공저), 『動物のまなざしのもとで』(2022, 공저) 등이 있다.
차례 ▼
한국의 독자들에게
1부 환대의 사유
1_ 환대의 사유
2_ 어떤 감응의 미래 ― ‘부끄러움’의 역사성을 둘러싸고
3_ 콜로니얼리즘과 모더니티
4_ 시민 캘리번 ― 에르네스트 르낭의 철학극에 관하여
5_ 르낭의 망각 또는 ‘내셔널’과 ‘히스토리’의 사이
6_ 복수의 폭력, 화해의 폭력
7_ 섬, 열도, 반도, 대륙 ― 이웃한 것들에 대한 혹성적 사유
2부 저항의 논리
8_ 1964년의 ‘소국민’
9_ 깃발 저편의 회상 ― 히노마루는 왜 ‘경사스러운’ 것인가
10_ 독립을 발명하는 것 ― 코지 타이라의 ‘류큐 독립의 새로운 관점’을 읽는다
11_ 9월 11일의 매듭
12_ 어떤 모임
13_ 대침공 전야 ― 국제작가회의 대표단의 팔레스타인 방문
14_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빈틈없이 포장되어 있다 ― 도래시켜야 할 ‘테러리즘 비판’을 위하여
15_ 막다른 지경에 몰리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16_ 가족과 제국
17_ 새로운 아시아적 대화를 위하여
18_ 전쟁의 극복
19_ 만약 놈들이 아침에 온다면……
맺음말을 대신해서_ 주권의 너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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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추천글 ▼
국민국가를 극복하는 환대의 정치철학!
―전 세계인의 자유로운 만남을 꿈꾸며 ‘주권의 너머’를 말한다
여기, 경계를 넘나드는 국제적인 지식인을 만난다. 그의 이름은 우카이 사토시(?飼哲). 그는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전공한 일본인이지만, 그에 머물지 않고 팔레스타인과 타이완, 한국, 오키나와 등지를 오가며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실천적인 발언을 하는 세계인이다. 자크 데리다에게서 직접 배운 학자답게 데리다가 말한 환대의 윤리, 주권론과 폭력론, 테러리즘 비판 등의 정치철학을 이어받아 일본 내의 내셔널리즘적 현실 변화를 비판하기도 하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특히 미국의 폭력적인 세계 통치를 비판한다. 그리고 국민국가와 주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적 논리를 펴 나간다. 이 책은 전 세계적인 시야에서 사유하고 실천하는 그의 이런 면모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서 진보적인 역할을 하고자 하는 연구자들과 현장에서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활동가 모두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동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라는 공간적 시야, 주권의 너머 혹은 주권 이후라는 새로운 시야에서 현실과 마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깊이 읽고 생각할 만한 정치철학이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은 1995년에서 2006년 사이의 세계 현실과 마주하며 쓴 글이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9·11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기지화, 히노마루·기미가요 법제화 등 점차 우경화하는 일본, 주권 밖으로 배제된 노숙자와 외국인 문제 등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을 재조명하여 국가 간 혹은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차별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이 같은 국제정세 속에 내재된 주권의 문제를 사유하고,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을 불러온다. 예컨대 마이너리티와의 평등한 공존을 위한 환대(hospitality)의 논리(1장)와 부끄러움이라는 사회적 감응(2장), 가족과 같은 폐쇄적 공동체 윤리와 정치를 넘어서고(6장과 16장) 마이너리티가 지닌 망각의 역사를 기억하고 재구성하는 것(5장), 공동 운명의 동아시아에 대한 성찰과 그에 따른 국제적 연대(7장과 17장) 등 주권 개념의 숨은 의미와 함께 이를 탈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을 제시한다. 신자유주의와 글로벌화가 유행하고 있지만 오히려 국가 간 장벽은 높아지고 자유의 공간은 축소되고 있는 오늘날, 이 같은 조건들은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를 사유하도록 우리를 이끌 것이다.
주권을 넘어서는 환대의 사유
“세계 시민법은 보편적 환대를 촉구하는 각 조건들로 제한되어야 한다.”(칸트, 「영구 평화론」, 본문 26쪽)
이 책은 주권에서 배제된 마이너리티에 대한 환대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일본에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노숙자’와 한국에서도 문제가 깊은 ‘외국인’, 그리고 국적을 박탈당한 난민(특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환대를 주장한다. 여기서 환대의 사유란 단순히 손님을 맞아들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主) 역시 ‘객’(客)이 될 수 있다는, 혹은 태초에 ‘주’ 역시 ‘객’이었다는 주객이 전도된 사유이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는 국적을 가진 ‘주인’이지만 이곳을 떠나는 즉시 ‘외국이’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환대를 상대방에 대한 것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와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다. 200여 년 전 칸트는 환대란 외국인이 타국 땅에 발을 디뎠다는 이유만으로 그 국가 사람들로부터 적으로 취급받지 않을 ‘권리’(방문권)라고 했지만, 이 책은 이에 더해 국민국가 간의 장벽을 넘어 ‘체류권’까지도 칸트적인 정언명법 안에 넣을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국가주권은 ‘객’을 맞아들이는 데서 비롯된 권능이지만, 오히려 ‘객’에 대해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으로 치환되어 있다. “외국인을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주권국가의 자유”라고 한 일본 외무관료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을 보면 주권의 폭력적 특징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이너리티의 기억 복원과 역사의 복수화(複數化)
이 책은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을 통해 ‘국민’(nation)의 기원을 분석하는 글을 싣고 있다(4, 5장). 특히 「국민이란 무엇인가」(국역본은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분석하여 르낭에게 있어서 국민 창조의 본질적인 요소가 마이너리티의 ‘망각’에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르낭은 동시대의 니체와 마찬가지로 망각의 창조적이고도 능동적인 성격을 발견했지만, 국민의 창조라는 목적론적 성격을 가지고 대함으로써 망각이 통합의 기제로 작용한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근대 서유럽은 5세기에서 10세기에 걸친 게르만족의 침입에 의해 구성되는데, 정복자인 게르만족이 서유럽의 종교와 언어를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종교와 언어를 망각함으로써 ‘국민’으로 융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르낭은 프랑스 국민의 단합을 주장하는 이 강연에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1572년) 등의 내전을 잊어야 한다고, 역사학의 진보가 국민성에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국민에 대한 고고학적 탐색을 하는 이 책은 르낭이 회귀되어 논해지는 프랑스의 현 시점에서, 외국인에 대해 배외적이고도 동화적인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일본(한국)의 현 시점에서 마이너리티를 옹호하는 방법을 말해 준다. 그것은 마이너리티의 특징은 ‘이질성’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양성’에 있다는 것, 이 다양성은 메이저리티라 불리는 존재에 의해 제거되기도 하고 흡수되기도 하고 ‘대상’으로서 분석되기도 했지만, 마이너리티가 갖고 있는 다양한 역사, 그 망각된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 즉 ‘국민적’이지 않은 다른 사회적 기억을 발명하여 역사를 복수화(複數化)할 것을 주장한다.
글로벌 공간에서의 저항의 논리
“인티파다에 참가해 투석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팔을 꺾는 것은 ……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비교할 수 있다.”(주제 사라마구, 본문 265쪽)
이 책은 2001년에 일어난 9·11 사건과 그에 연속된 일련의 사태들에 대한 논평을 싣고 있다(11~14장). 특히 2002년 국제작가회의 방문단의 일원으로서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직접 목격한 상황을 결합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 중인 폭력에 대한 저항을 호소한다.
물론 폭력의 중심에는 20세기뿐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미국이 있다. 미국은 자국 역사상 가장 긴 시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고, 9·11과는 무관한 이라크를 침공했으며, 국제연합의 결의를 무시한 채 팔레스타인에 폭격과 학살을 서슴지 않는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다. 이 책은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이 경찰국가를 견제하기 위해 다른 지역적 힘(예컨대 유럽연합이나 중국)에 기대기보다는 좀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인류 공동의 노력을 당부한다.
수년간 빠른 템포로 발전해 왔던 경제 글로벌화에 대한 세계 규모의 저항운동, 국제적인 사형폐지운동, 그리고 군사 글로벌화에 대한 새로운 반전운동과 함께 (국내 운동을 통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끊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최악의 상황이 각성을 불러올 수 있다며 ‘생명 앞에서의 평등’에 근거한 국제법의 정신이 싹터 자라나길 희망한다. 이를 위해 국제연합의 개혁을, 예컨대 대서양 중심 세계관의 상징으로 뉴욕에 있는 이 기관의 소재를 제3세계로 이전하거나 국가 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여러 개혁적 장치를 상상한다. 미국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 무자비한 패권 추구를 타개함과 동시에 지속 가능한 생명 중심의 국제관계를 요구하는 것이다.
테러리즘 담론에 대한 비판
이 책의 이러한 정치적 상상력의 근저에는 여러 철학적 통찰이 깔려 있다. 그 중 하나가 ‘테러’ 혹은 ‘테러리즘’에 대한 것이다. 이 말의 기원을 묻는 것과 함께 지금 쓰이고 있는 굴절된 의미를 추적하고, 이를 남용하고 확대 해석하는 논리와 심성을 분석해 이 언어의 탈구축을 시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현재 테러리즘은 마치 절대 악이나 최상의 범죄를 가리키는 말처럼 쓰이고 있지만, 애초에는 ‘어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직접적인 공포 수단을 이용하는 정책’을 가리킬 뿐이었으며, 특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주권 없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정치적 활동이 이 말로 규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 말은 이라크 전쟁이 여실히 보여 주듯 단죄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국의 석유 공급 확보 등 경제적 이득을 위해 벌여 놓은 전쟁, (찾지 못한) 대량살상무기를 비축해 둔 잠재적인 적을 상대로 한 예방 차원의 전쟁에서 그 명목이 되고 있다. 더구나 미국이 말하는 테러리스트들은 이전에 미국이 훈련시키거나 지원했던 사람들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역시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승인한 정권이었다. 테러리즘은 미국의 자기 파괴적인 도착적 담론이라는 것, 이 책은 이 담론 비판을 통해 미국 헤게모니의 글로벌화에 저항할 것을 말한다.
동아시아를 위한 새로운 관계
“타자의 아포리아는 우리의 아포리아이기도 하다는 점을 원칙으로 해야 합니다.”(본문 339쪽)
이 책은 또한 열강이 주목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여러 관계를 살피고, 나아가 서양과는 다른 동아시아의 성숙과 발전, 항구적인 평화를 위한 조건에 대해 사유한다. 구체적으로는 북한(한반도)과 일본의 관계, 오키나와의 독립, 중국과 타이완까지 얽히고설켜 있는 동아시아 문제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고 있다. 이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이곳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규정이다.
클린턴 정권 2기 때 미국 싱크탱크에서는 “2020년에서 2025년경, 일본개헌과 조선반도의 통일 후, 일본과 중국 간의 모순 확대로 대규모의 무력분쟁이 발생한다”는 예측을 했다고 한다(본문 346쪽). 이 책이 이 예측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동아시아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보는 자’로서의 미국과 ‘보여지고 있는’ 동아시아라는 관계이다. 미국은 10년, 20년 뒤에도 동아시아에 대한 패권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일본은 아직 ‘탈아’의 제국적 심성을 간직한 채 보여지는 위치가 아닌 보는 자의 위치에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가령 중국에 대해 “중국은 독재이기 때문에 열등하고, 일본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우월하다”며 미성숙한 민중의 ‘반일’을 단속하라고 압력을 넣고, 영토 분쟁을 비롯하여 청산하지 못한 식민지 시대의 일을 근거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2010년 6월 하토야마 총리의 사퇴에 직접적인 원인이 된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실패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오키나와를 여전히 구시대적 식민지로 대하고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일본 역시 미국에 대해 보여지는 위치에 있을 뿐인데, 이를 망각한 채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법제화하고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는 등 점차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책은 하나의 국민국가가 성숙한다는 것은 곧 이웃 국가와의 관계가 성숙한다는 것이며, 타국의 미성숙을 왈가왈부하는 한 자국의 성숙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동아시아에서는 무엇보다 미국의 존재를 비군사화해야 하며, 전쟁을 거치지 않고 상호 승인에 따라 성숙해 가야 서유럽이 힘들게 달성한 성숙한 국가 간 관계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눈앞의 과제를 넘어 민족을 초월한 역사적인 대화와 타자의 고투(苦鬪)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국제적 의식이 장기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이 시대의 글로벌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이다. 그러나 강대국과 거대기업의 이익만 불려 줄 뿐인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가속화하고 있고, 테러방지법이 보여 주는 것과 같이 국가 간 장벽은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맑스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스스로 대립과 위기를 만들어 내면서도 스스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우리가 글로벌화를 피할 수 없다면 시장의 가치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라는 가치를 옹호하고, 국제 정치의 장에서 실질적인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발화주체를 만들기 위해 경계를 넘는 대화와 학습의 장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범세계적인 정치적 사유를 통해 오늘날 주권 너머, 자본주의 너머를 생각할 수 있는 아젠다를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