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의 동물 타자
클리나멘 총서 012
임은제 지음 | 2022-10-11 | 320쪽 | 19,800원
근대 철학이 어떻게 동물 타자를 억압해 왔는지를 데리다의 사상을 통해 밝히는 책. 저자 임은제는 철학사와 현대 예술에 자리하는 뿌리 깊은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며, 현대 산업 사회에서 체계화된 동물 착취의 근거가 데카르트로 거슬러 올라가는 근대 철학의 정신에 있다고 본다.
형이상학사의 해체를 통해 데리다가 주장하는 바는 ‘이성’과 ‘합리성’으로 이루어진 철학이 아닌 타자의 ‘고통’에 준거한 철학이다. 달리 말해 데리다의 철학은 이성, 합리성, 언어로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서사를 따라가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데리다의 후기 철학을 소개하며 철학사 전체를 동물 타자라는 주제로 사유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저·역자소개 ▼
홍익대학교 미학과에서 메를로퐁티 철학을 분석한 「현대 시각예술에서의 지각의 애매성에 관하여: 나우만, 리히터, 헤세, 호크니 작품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생태미학적 관점에서 본 데리다의 동물 타자: ‘결핍’으로서의 ‘생성’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계수동 이야기’, ‘황해 미술제’ 등 타자, 소수자, 취약자에 관한 관심을 주제로 하는 전시를 기획했고 갤러리 상의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월간 『미술세계』에 5년간 전시 비평문을 기고했다. 주요 연구 주제는 비인간 타자, 동물, 예술, 신체, 감각, 정서 등이며 현상학, 해체론, 생태미학, 탈인간중심주의 철학으로 연구 영역을 넓히고 있다.
차례 ▼
1장. 철학은 어떻게 동물을 길들였는가? 소거된 채 존재하는 동물 타자 11
1. 개괄: ‘해체’의 행보와 동물 타자 11
2. 데카르트 계보와 ‘결핍’으로 인식된 동물 21
3. 데카르트, 동물 기계론 25
4. 칸트, 섭리의 동물 37
2장. 존재·타자에서 배제된 동물 45
1. 하이데거의 동물론과 데리다의 존재·타자로서의 동물론 46
2. 아감벤의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권태 71
3. 데리다와 아감벤의 ‘생성’으로 본 동물의 ‘결핍’ 81
4. 라캉의 타자로서의 조건과 동물 타자의 배제 90
5. 지젝의 데리다적 동물 타자 105
3장. 동물이란 무엇인가? 115
1. 생성으로서의 코라와 생성으로서의 동물 타자·동물성 117
2. 레비나스의 얼굴을 가진 타자와 데리다의 얼굴 없는 타자 144
3. 귀향을 기다리는 이방인, 인간과 뱀 165
4장. 예술은 어떻게 동물과 친구가 되었나? 185
1. 프랜시스 베이컨과 타자인 동물, 고기 187
2. 데이미언 허스트와 희생된 타자, 동물 204
3. 요제프 보이스와 꼭두각시 타자, 동물 214
4. 올레크 쿨리크와 인간 안의 동물, 동물 안의 인간 232
5. 조은지와 인간을 응시하는 타자, 동물 241
5장. 동물 타자에 대한 환대 251
1. 동물철학·동물윤리학 253
2. 데리다의 생물학적·생태학적 코기토 276
결론 297
참고 문헌 307
편집자 추천글 ▼
기존의 철학사는 동물 타자에 대한 억압이었다
은폐된 고통을 발굴하는 데리다의 새로운 철학
인간의 시각에서 벗어나 고양이의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볼 수 있을까? 혹은 닭, 돼지, 소의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볼 수 있을까? 동물의 자리에서 인간을 바라볼 때 기묘하고 우스꽝스러운 우리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아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에서 동물은 인간의 친구로 묘사된다. 인간처럼 옷을 입고 학교에 가거나, 수저와 포크를 사용하여 식사를 한다. 동시에 인간은 동물이라면 무엇이든 먹어 치워야 만족하는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동물을 친구로 여기면서 잔인하게 도살하기도 하는 인간의 모순적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일찍이 동물의 이중적인 위치를 깨닫고,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력적 시선을 비판했던 철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 현대철학자 자크 데리다다. 알몸이 된 자신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에서 당혹스러움을 느꼈던 그는 인간 주체를 구성하는 ‘결정적 타자’로 동물을 정의했다.
『데리다의 동물 타자』는 데리다의 사상을 통해 근대 철학이 어떻게 동물 타자를 억압해 왔는지를 밝히고, 그동안 은폐되어 온 동물 타자의 문학적, 예술적, 철학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저자 임은제는 철학사와 현대 예술에 자리하는 뿌리 깊은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며, 현대 산업 사회에서 체계화된 동물 착취의 근거가 데카르트로 거슬러 올라가는 근대 철학의 정신에 있다고 본다. 반인간중심주의 사유에 기반하는 이 책의 관점은 생명중심주의에 초점을 맞추는 포스트휴머니즘을 따르며 무엇보다 자크 데리다의 후기 사유를 바탕으로 한다. 데리다의 후기 이론은 동물을 타자이자 존재로 간주하는 철학으로 동물을 철학사의 중요한 주제로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철학사 전체를 인간중심주의의 체계화이자 공고화로 비판하는 새로운 현대철학의 프레임을 제시했다.
포스트휴머니즘 사유의 시작,
데카르트적 이분법을 해체하다
데리다의 후기 저작인 『동물 그러므로 나인 동물』과 『짐승과 주권자』 1, 2권은 철학의 주요 역사를 구성해 온 데카르트의 계보를 동물 타자에 대한 착취의 논리이자 인간중심주의 사고의 결과로 간주한다. 데카르트의 계보는 인간/동물의 이분법에 의존하며 동물을 인간에 대비되는 ‘결핍’으로 이해한다. 애초에 데카르트는 동물을 주체가 아닌 기계적 자동장치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적시하는 데카르트의 계보에는 칸트, 라캉, 레비나스,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의 대가들이 포함된다. 칸트철학에서 동물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고, 하이데거철학에서 동물은 언어가 없기에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존재였다. 기존의 철학을 전복했다는 평가를 받은 라캉과 레비나스도 동물을 타자로 인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유로 데리다의 사유는 동물 타자라는 주제 아래 하이데거, 레비나스, 라캉 같은 현대철학자와 가장 극명하게 분리된다.
데리다는 데카르트적 계보를 ‘동물 타자’의 논제로 해체함으로써 동물이 가진 결핍을 새롭게 해석한다. 동물의 결핍은 다른 철학자들이 말하듯 부정적 부족함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에서 가능성의 조건이 되는 긍정적 근원이라는 것이다. 동물은 플라톤의 코라처럼 생성이자 과정이며, 언어와 대립이 존재하기 이전의 창조적 공간이다. 결과적으로 데리다는 철학사 전체가 동물 타자에 대한 억압의 계보학이자 동물 타자에 근본적으로 의존하는 인간중심의 논리로서, 동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산업화 사회에 구조적·이론적 근간을 제공해 왔음을 밝힌다. 동물은 철학이 가진 모순의 틈 안에 처음부터 존재했던 타자성이며 철학의 여백에 각인되어 있었던 또 다른 주제이다. 철학은 동물을 배제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인간/동물의 대립 구도를 통해 우월성을 획득하면서 동물 타자라는 대응 항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이상학사의 해체를 통해 데리다가 간명하게 주장하는 바는 ‘이성’과 ‘합리성’으로 이루어진 철학이 아닌 타자의 ‘고통’에 준거한 철학이다. 달리 말해 데리다의 철학은 이성, 합리성, 언어로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서사를 따라가고 있다. 그것은 이름 붙여질 수 없지만 이미 존재하는 것, 혹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이름을 넘어선 동물 타자와 같은 존재를 지향한다. 저자는 이러한 데리다의 후기 철학을 소개하며 철학사 전체를 동물 타자라는 주제로 사유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철학의 여백을 사유하는 예술,
이성의 이면을 향하는 작가들에 관하여
이 책은 현대 예술을 분석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보여 주기도 한다. 저자는 폴 발레리, D. H. 로렌스, 프랜시스 베이컨, 데이미언 허스트, 요제프 보이스, 올레크 쿨리크, 조은지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미술에 걸쳐 동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데리다의 관점을 통해 설명하고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철학이 드러내지 못한 것을 보충적으로 주제화하는 예술의 비판적인 시각이다. 인간보다 부족하다는 선입견 아래 배제된 동물은 공장식 축산에서 보여 주듯 산업 사회의 자원으로 소비된다. 그러나 예술은 동물을 생명, 존재, 타자로 성찰하며 동물 타자의 희생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인간 사회의 이기성을 폭로한다. 이 책은 최근 관심이 증대하는 채식주의나 동물권의 이론적 배경을 다루며, 지금까지의 인문학 도서에서 찾기 힘들었던 동물의 존재론에 관한 학술적, 철학적, 예술적 연구이다.
저명한 철학자들의 은폐된 인간중심주의적 측면과 예술의 비범한 시각을 동시에 밝혀내는 이 책은 보편성과 일반성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유가 어떻게 각각의 개성을 지닌 동물 타자와 만나는지 보여 준다. 미학을 전공한 저자는 일상에서 한 권쯤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예술철학서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는데,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현대 철학의 변모하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문학과 미술의 다면적인 지층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제인 구달은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로 인한 펜데믹 위기가 동물과 자연에 대한 존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 역시 동물, 자연, 환경을 타자로서 존중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잊힌 의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