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성의 현상학

철학의 정원 53

조광제 지음 | 2023-02-10 | 296쪽 | 19,800원


철학의 정원 53권. 후설부터 하이데거, 마르셀,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리쾨르, 데리다까지 8명의 유력한 현상학자들의 사유를 ‘존재의 불투명성과 심연’이라는 화두로 엮어 독자적 논의를 전개한다.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현상학은 불투명한 존재를 적발하고 그것이 왜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가를 밝히는 철학적 사유이다. 그렇다면 불투명성이란 무엇인가? 불투명성은 이성으로 대표되는 투명함, 명증함과 대조된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인식’의 근원적인 불가능성과 ‘존재’의 무한 깊이의 심연 두 가지를 오가며 작동한다. 결국 우리의 인식은 존재의 근원적인 불투명성을 다만 명시적으로 확인할 뿐이며, 이때 ‘존재의 불투명성에 대한 명증한 인식’이라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불투명한 사태를 확인하는 계기가 곧 사물과 감각의 굳건한 결합, ‘감각 사물’을 통해서다. 감각 사물은 주체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순수 객관적인 사물도, 주체의 감각적 관념의 결과물만도 아닌 존재이다.


저·역자소개 ▼
저자  조광제
1955년에 마산에서 출생했다.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한전숙 교수님 지도로 「현상학적 신체론: E. 후설에서 M. 메를로-퐁티에로의 길」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3월 시민대안학교 〈철학아카데미〉를 설립해 운영위원, 공동대표를 거쳐 현재 대표로 일하고 있다.
1987년부터 2020년까지 여러 대학의 학부와 대학원에서 시간강사로 철학과 예술에 관련한 강의를 했다. 그리고 교도소, 도서관, 문화센터, 공무원 교육기관, 각종 시민교육 시설들을 오가며 특강을 했다. 그 와중에 한국프랑스철학회 회장직과 한국철학회 부회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23년 동안 <철학아카데미>에서 수없이 많이 강의하면서 매번 강의록을 제공했고, 이 강의록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다. 영화에 관한 『인간을 넘어선 영화예술』(2002), 존재론 입문을 위한 『존재 이야기』(2004),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을 강해한 『몸의 세계, 세계의 몸』(2004), 미술에 관한 『미술 속 발기하는 사물들』(2007), 후설의 현상학에 관한 『의식의 85가지 얼굴』(2008), 입문자를 위해 철학의 개념을 풀이한 『철학라이더를 위한 개념어 사전』(2012),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강해한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 1, 2권』(2013), 메를로-퐁티의 《눈과 정신》을 강해한 『회화의 눈, 존재의 눈』, 현대철학자들의 사상을 개관한 『현대철학의 광장』(2017), 현상학적 사유를 나름으로 해석한 『불투명성의 현상학』(2023) 등이 그 책들이다. 여기 이 책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 「서론:리좀」 읽기』(2023)도 2022년 <철학아카데미>에서 한 강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 외 여러 공저가 있고, 주요 역서로는 마빈 민스키의 The Society of Mind를 번역한 『마음의 사회』(2019)가 있다.
한때 ‘함수적 존재론’이라는 나름의 존재론을 모색했으나 중도에 그쳤다. 요즘에는 신경과학을 염두에 둔 몸과 의식의 문제를 탐색하는 가운데, 브뤼노 라투르의 신-실재론을 중심으로 한 신유물론의 문헌들을 살피면서 21세기를 염탐하는 존재론을 모색하고 있다.
차례 ▼

책머리에 — 4

1부 불투명한 심연의 존재, 감각 사물
§1. 감각 사물에의 이력 — 13
§2. 심연의 불투명성, 또는 불투명한 심연 — 20
§3. 절대 이성에 따른 존재와 인식의 명증 — 26
§4. 실현 불가능한 이성의 욕망 — 33
§5. 칸트가 제시한 불투명한 심연의 존재 — 42
§6. 불투명성의 근원, 감각 사물의 영토 — 59
§7. 감각 자체와 더불어 지각되는 개별 사물을 무시한 사유들 — 71
§8. 감각 사물 — 84

2부 불투명성의 현상학
I. 후설: 불투명성의 실마리 — 97
§1. 후설의 명증성 원리 — 98
1) 후설의 명증성 정의 — 99
2) 충전적 명증성과 필증적 명증성 — 104
§2. 후설의 명증에 대한 물음 — 107
§3. 후설의 고뇌 — 110
§4. 원인상의 원초적인 불투명성 — 114
§5. 후설의 두 얼굴: 명증한 본질 필연의 세계와 불투명한 개별 착종의 생활세계 — 119

II. 하이데거: 존재의 불투명성 — 123
§1. 존재의 불투명성과 이해 — 124
§2. 현존재의 존재인 마음 씀과 존재의 불투명성 — 129
§3. 불안과 무를 통한 존재의 불투명성 — 134
§4. 불투명한 존재의 근원적 불투명성을 견뎌 내는 방책, 시작(詩作) — 140

III. 마르셀: 내 몸에서 열리는 신비 존재의 불투명성 — 145
§1. 불투명성의 형이상학 — 146
§2. 신비의 불투명성 — 163

IV. 사르트르: 주체의 투명성과 존재의 불투명성 — 167
§1. 존재의 근원적 우연성과 불투명성 — 169
§2. 의식의 대자존재성과 절대적 투명성 — 175
§3. 존재의 불투명성과 의식의 투명성 사이의 완전한 균열 — 179
§4. 즉자의 끈적끈적함, 충동 — 183

V. 메를로-퐁티: 몸과 살의 불투명성 — 187
§1. 존재 본질적 차이에 의한 몸의 불투명성 — 188
§2. 몸의 불투명성을 드러내는 개념들 — 191
§3. 살의 불투명성에 의한 존재론적인 전복 — 199

VI. 레비나스: 타자와의 관계의 불투명성 — 209
§1. 존재의 익명성 — 211
§2. 존재로부터의 존재자의 발생 - 히포스타시스(hypostasis) — 221
§3. 빛과 이성에 대한 비판 — 226
§4. 고통과 죽음의 타자성 — 228
§5. 타자와 타인 — 231
§6. 에로스적 공동체 — 236
§7. 마무리 — 238

VII. 리쾨르: 텍스트 세계의 불투명성 — 241
§1. 텍스트를 통한 주체의 매개적인 자기 이해 — 244
§2. 텍스트에서의 거리 두기 — 249
§3. 텍스트에 앞에서의 자기 이해의 전유 — 253
§4. 리쾨르의 신적 불투명성 — 257

VIII. 데리다: 현전과 부재 너머의 불투명성 — 261
§1. 후설의 의미 현전에 대한 비판 — 263
1) 현전 문제의 시발 — 263
2) 후설의 의미론 — 266
3) 후설의 기호론 — 268
§2. 후설의 음성 중심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 — 272
§3. 데리다의 근원 문자의 비현전 — 275
§4. 데리다, 부재의 불투명성 — 278

3부 불투명성, 심연 그리고 충동
§1. 탈-도구의 환원, 절대적 잉여인 감각 사물 — 285
§2. 감각 사물과 뇌 — 289

참고문헌 — 293

편집자 추천글 ▼

“중심에 있는 것은 어둠이다”
심연을 품은 존재인 인간,
그 불투명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현실을 채우고 있는 불투명한 존재,
‘감각 사물’


『불투명성의 현상학』은 후설부터 하이데거, 마르셀,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리쾨르, 데리다까지 8명의 유력한 현상학자들의 사유를 ‘존재의 불투명성과 심연’이라는 화두로 엮어 독자적 논의를 전개한다.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현상학은 불투명한 존재를 적발하고 그것이 왜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가를 밝히는 철학적 사유이다. 그렇다면 불투명성이란 무엇인가? 불투명성은 이성으로 대표되는 투명함, 명증함과 대조된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인식’의 근원적인 불가능성과 ‘존재’의 무한 깊이의 심연 두 가지를 오가며 작동한다. 결국 우리의 인식은 존재의 근원적인 불투명성을 다만 명시적으로 확인할 뿐이며, 이때 ‘존재의 불투명성에 대한 명증한 인식’이라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불투명한 사태를 확인하는 계기가 곧 사물과 감각의 굳건한 결합, ‘감각 사물’을 통해서다. 감각 사물은 주체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순수 객관적인 사물도, 주체의 감각적 관념의 결과물만도 아닌 존재이다.

삶이란 근본적으로 불투명하다는 것,
그것이 진실 중의 진실이다


서양 철학의 근간이 되는 이성의 논리는, 존재하는 사태는 근본적으로 명증하다고 전제해 왔다. 만약 어떤 사태가 명증하지 않다면 사태의 탓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사태를 명증하게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을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너머에서 찾는 ‘절대 이성’을 내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존재와 인식이 그토록 명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러한 명증성을 벗어난 불투명하고 어두운 영역이란 정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불투명성의 현상학』은 저명한 현상학자들의 사유로부터 불투명한 심연의 존재가 드러나는 대목들을 뽑아 논의를 전개해 나감으로써, 각 사상가들이 사물의 존재 앞에서 자신의 이성적 사유를 어떻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핵심 원인이 사물과 감각의 굳건한 결합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칸트가 말한 ‘사물 자체’에서 존재의 불투명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고, 그로부터 ‘감각 자체’에서 존재의 불투명성을 정립할 수 있었다. 현실을 채우고 있는 불투명한 존재를 ‘감각 사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이 감각 사물은 대표적인 불투명성의 현상학자라고 일컬을 수 있는 메를로-퐁티의 살 존재론에서 특별히 부각된다. 메를로-퐁티는 데카르트가 추구했던 명증성 내지는 투명성에 대립하면서 오히려 몸의 불투명성을 근본으로 내세우고자 했다. 결국 불투명성은 이성, 반성하는 의식에 대한 불투명성이다. 그리고 존재가 불투명하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세계 자체 역시 근원적으로 불투명함을 함축한다.

나와 세계의 불투명성을 투명하게 드러내기

그렇다면 근원적으로 불투명한 우리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불행한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불투명성을 긍정 또는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식하고자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삶의 근원적 불투명성이 오히려 인간과 세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살펴 온 존재의 불투명성에 견주어 보면, 언어는 근원적으로 불투명함을 바탕으로 해서 발설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성 내지는 지성으로써 고정할 수 있는 낱말이나 문장의 의미를 활용해서는 결코 시를 쓸 수도, 읽을 수도 없다. 하이데거의 이러한 시작으로서의 언어관에서 우리는 존재의 불투명함이란 기실 그 자체 그저 무의미함을 의미한다거나 도무지 넘어설 수 없는 단단한 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중략) 요컨대 근원적으로 불투명한 삶을 견뎌 내는 것은 우리가 겪는 인고가 아니라, 알고 보면 우리가 존재자 전체를 포섭하면서 그 전체의 밑바탕에서 움터 나오는 시적인 의미를 끌어들여 보호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저 불투명한 심연을 품은 존재에게로 넘겨주고 아울러 저 존재를 나의 존재로 넘겨받는 상호교환적인 거대한 작업이다. (143쪽)

존재의 정체를 파헤치고자 하는 것은 인식의 욕망을 가진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나 존재는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무한한 깊이의 어둠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만다. 소크라테스는 “놀라워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철학자의 상태”라고 말했다. 존재론적 우연 앞에 놀라움 혹은 물음을 가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재의 불투명성을 탐구하기를 권한다. 우리의 존재와 삶은 근원적으로 감각 사물이 가져다주는 강렬한 힘에 휩쓸리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이러한 불투명성을 극복하기보다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이 책은 ‘나와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막막한 여정을 시작하기 위한 든든한 나침반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