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
박정수 지음 | 2024-01-04 | 272쪽 | 16,800원
비극이라는 단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 그리스 비극을 ‘장판’(장애운동판) 특유의 전복적이고 유쾌한 시선으로 살핀다.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로 널리 알려진 그리스 비극이 주로 인간의 이야기인 데다 그 내용이 정치적이고 급진적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저자는 노들장애학궁리소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장판에서 비극 읽기>라는 수업을 진행하며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비극 속 장애 이야기들을 읽었다. 그들은 ‘막장 드라마’ 뺨칠 정도로 기구한 비극 속에서, 인물들이 ‘운명애’(amor fati)를 통해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발견해 냈다.
비극적인 운명이 주어질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마침내 장판에서 그리스 비극을 읽는다는 것은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지 탐구하고, 그에 따른 삶의 태도를 성찰하는 진지하고도 즐거운 작업이 된다.
저·역자 소개 ▼
저자 박정수
연구 공간 수유+너머에서 프로이트, 라캉, 푸코, 들뢰즈 등을 공부했으며, 거기서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막 얘기해도 된다는 걸 배웠다. 수다스런 ‘아침꽃 세미나’에서 루쉰, 벤야민, 카프카 전집을 읽었고, 그리스 비극도 여기서 처음 읽었다. 지금은 SF소설을 읽고 있는데, 어슐러 K. 르 귄에 푹 빠졌다.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장애사 저서를 번역하며 공부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장애 인식에 관한 지식은 주로 여기서 얻었다. 노들야학 철학 교사로서 수업 시간에 그리스 비극을 강독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2022년부터 영상 활동을 시작, 장애인들과 함께 장애인들의 ‘비극’을 영상으로 담고 있다.
그동안 쓴 저서로는 《‘장판’에서 푸코 읽기》, 《현대 소설과 환상》,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 《매이데이》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How To Read 라캉》,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등이 있다.
연구 공간 수유+너머에서 프로이트, 라캉, 푸코, 들뢰즈 등을 공부했으며, 거기서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막 얘기해도 된다는 걸 배웠다. 수다스런 ‘아침꽃 세미나’에서 루쉰, 벤야민, 카프카 전집을 읽었고, 그리스 비극도 여기서 처음 읽었다. 지금은 SF소설을 읽고 있는데, 어슐러 K. 르 귄에 푹 빠졌다.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장애사 저서를 번역하며 공부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장애 인식에 관한 지식은 주로 여기서 얻었다. 노들야학 철학 교사로서 수업 시간에 그리스 비극을 강독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2022년부터 영상 활동을 시작, 장애인들과 함께 장애인들의 ‘비극’을 영상으로 담고 있다.
그동안 쓴 저서로는 《‘장판’에서 푸코 읽기》, 《현대 소설과 환상》,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 《매이데이》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How To Read 라캉》,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등이 있다.
차례 ▼
prologue. 장판에서 비극을 왜?
1. 사회적 장애모델과 비극
2.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소수자들
3. 저항하는 자들의 운명애
4.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
5. 민주주의가 품은 장애 난민
6. 아픈 몸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전체를
7. 돌봄의 배신, 절망 속 모성의 복수
8.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젠더-장애인
epilogue. 장애인의 운명, 한 번 더
편집자 추천글 ▼
★ 김도현, 나드, 이라나, 정희진, 홍은전 추천 ★
장애를 비극(적)이라고 단정지어도 될까?
우리가 지금까지 읽지 못했던 그리스 비극 속 장애의 운명애
이 책은 비극이라는 단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 그리스 비극을 ‘장판’(장애운동판) 특유의 전복적이고 유쾌한 시선으로 살핀다.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로 널리 알려진 그리스 비극이 주로 인간의 이야기인 데다 그 내용이 정치적이고 급진적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저자는 노들장애학궁리소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장판에서 비극 읽기>라는 수업을 진행하며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비극 속 장애 이야기들을 읽었다. 그들은 ‘막장 드라마’ 뺨칠 정도로 기구한 비극 속에서, 인물들이 ‘운명애’(amor fati)를 통해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발견해 냈다.
비극적인 운명이 주어질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마침내 장판에서 그리스 비극을 읽는다는 것은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지 탐구하고, 그에 따른 삶의 태도를 성찰하는 진지하고도 즐거운 작업이 된다.
‘부은 발’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던 이유
―장애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비극
유명한 수수께끼 하나. “아침에는 다리가 넷, 점심에는 다리가 둘, 저녁에는 다리가 셋인 것은?” 답은 ‘인간’이다. 아무도 맞추지 못한 수수께끼이지만 오이디푸스만이 쉽게 정답을 맞히고 평화를 얻어 낸다.
저자는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맞힐 수 있었던 비법으로 그가 가진 장애의 당사자성을 꼽는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은(oide) 발(pus)’이라 불릴 정도로 눈에 띄는 신체장애를 가졌기에 오이디푸스는 평생 “보행의 장애”를 의식하였을 것이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오이디푸스로부터 장애 있는 몸의 취약성, 그리고 배제와 차별의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지혜롭지도, 똑똑하지도 않았던 오이디푸스만이 “발의 개수와 보행장애의 연관성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던 이유다.
장판에서 장애와 비극을 연관 짓는 일은 비판을 받기 쉽고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한국 진보적 장애운동의 관점과 달리 ‘비극’은 장애를 개인적인 사건이자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장애가 갖는 사회성을 간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비극에 담긴 ‘운명애’의 순간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비극’의 의미를 재구축한다. 슬픈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기 삶을 주도하는 운명애의 저항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장애의 관점에서 그리스 비극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이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 내지 못했던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면모를 발견한다는 의미이다.
“왜 여성, 소수자, 장애인은 급진적일 수밖에 없는가?”
올림포스 신 중 가장 소수자와 밀접한 신을 하나 꼽는다면, 단연 디오니소스다. 디오니소스 제전을 묘사한 유물에서는 유독 발기한 곱추나 난쟁이 형상이 많이 등장한다. 이에서 알 수 있듯 그를 따르는 신도 중에는 여성과 장애인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왜 소외된 자들의 신이 되었을까?
디오니소스(Dionysos)의 이름은 ‘두 번(dio) 태어난 자(nysos)’라는 뜻. 인간인 어머니의 몸에서 한 번, 신인 아버지의 몸에서 또 한 번 태어난 그는 신성을 가졌지만 신은 아니었고, 남성이지만 “여자 같은” 모습으로 곧잘 그려졌다. 올림포스에서 유일하게 장애를 가진 신 헤파이스토스를 설득하여 황금 의자에 결박된 헤라 여신을 풀어준 공로로 신이 되기 전까지는 ‘신도 인간도 아닌’ 존재, 즉 체제 바깥에 있는 존재였다.
이런 특성은 억압당하던 소수자들을 포도주와 축제로 위로하고, 강력한 에콜로지 공동체를 이루는 원천이 되었다. 디오니소스 신도들은 ‘마이나데스’라고 불렸는데, 이들은 “여성, 트랜스젠더, 장애인, 노인, 이방인, 부랑인, 노예 등 그리스 사회에서 차별과 모욕 속에 고통받는 소수자”였으며 가부장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이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가부장제를 대표하는 인물인 크레온과 대치하는 여인 안티고네를 그린다. 안테고네는 자신의 오라비 매장이 테베의 왕 크레온의 포고령보다 위에 있는 ‘신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안티고네의 모습이 “공론장에서 법과 정의의 원칙을 논하는 ‘시민’의 모습”, 즉 가부장제 속의 남성 모습을 띠자, 크레온은 그에 분노하여 안티고네를 동굴에 가둔다.
이 일을 겪으며 안티고네는 “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가 보여 준 “같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난 혈족에 대한 사랑”은 모계적이고 에콜로지적인 ‘마이나데스’의 사랑이었다. 이처럼 사회 제도로부터 배제되는 소외와 탄압의 경험을 공유한 소수자들은 이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사랑’ 안에 연대하였으며, 가부장 제도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어떡할까, 여러분들?”
극장을 정치 현장으로, 현실을 비극 속으로!!
그리스 비극은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유흥만을 위한 수단은 아니었다. 아테네 시민에게 비극 공연 관람은 “민회에 참여해서 국정을 토론하고 합의하는 일”의 연장선이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필록테테스」에 등장하는 네오프톨레모스는 만성질환 때문에 버림받은 필록테테스를 구할지 고민하다가 관객들에게 묻는다. “어떡할까, 여러분들?” 이처럼 그리스 비극 속에는 정치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들이 녹아 있었고, 관람객을 비극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비극 밖 현실을 보게 하는 장치였다.
이 책 역시 그런 공론장의 역할을 이어 간다. 장애인권운동가들의 현실과 그리스 비극 속 인물들의 서사시를 비교하며 현실의 장애인 문제를 책 속으로 끌어 온다. 프로메테우스가 모든 것을 내다보면서도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제우스가 내린 벌을 받는 이야기, 그리고 노들야학의 전 교장 박경석이 장애인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권리의 주체로 나서게 된 이야기를 병치하는 식으로 말이다.
소포클레스가 네오프톨레모스의 입을 통해 던진 질문 “어떡할까, 여러분들?”은 당시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고통과 국가의 이익 사이에서 아테네 시민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는 희생해야 하는가? 장애 있는 몸은 그저 버려져야 하는가? 이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물음이다.
★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라는 공론장을 함께 이끌어 주신 분들 ★
“장애학의 시좌에서 그리스 비극을 읽어 냄으로써 비극의 의미를 탈구축하는 동시에
운명애를 소수자적 관점에서 정치적으로 재구축한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아픔과 고통이 이끄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는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저마다의 비극을 안고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
나드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배우)
“모든 사람에게는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자기 삶을 긍정할 기회가 있다”
이라나 (장애인권운동 활동가)
“소외와 배제로 연결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주의가 가진 급진성의 기원을 밝히는 책”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책을 덮고 나면 세상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싶어진다…
그리스 비극의 해괴한 막장 스토리에 절실히 공감하게 되는 순간”
홍은전 (작가, 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나는 동물』 저자) .
장애를 비극(적)이라고 단정지어도 될까?
우리가 지금까지 읽지 못했던 그리스 비극 속 장애의 운명애
이 책은 비극이라는 단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 그리스 비극을 ‘장판’(장애운동판) 특유의 전복적이고 유쾌한 시선으로 살핀다.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로 널리 알려진 그리스 비극이 주로 인간의 이야기인 데다 그 내용이 정치적이고 급진적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저자는 노들장애학궁리소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장판에서 비극 읽기>라는 수업을 진행하며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비극 속 장애 이야기들을 읽었다. 그들은 ‘막장 드라마’ 뺨칠 정도로 기구한 비극 속에서, 인물들이 ‘운명애’(amor fati)를 통해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발견해 냈다.
비극적인 운명이 주어질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마침내 장판에서 그리스 비극을 읽는다는 것은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지 탐구하고, 그에 따른 삶의 태도를 성찰하는 진지하고도 즐거운 작업이 된다.
‘부은 발’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던 이유
―장애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비극
유명한 수수께끼 하나. “아침에는 다리가 넷, 점심에는 다리가 둘, 저녁에는 다리가 셋인 것은?” 답은 ‘인간’이다. 아무도 맞추지 못한 수수께끼이지만 오이디푸스만이 쉽게 정답을 맞히고 평화를 얻어 낸다.
저자는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맞힐 수 있었던 비법으로 그가 가진 장애의 당사자성을 꼽는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은(oide) 발(pus)’이라 불릴 정도로 눈에 띄는 신체장애를 가졌기에 오이디푸스는 평생 “보행의 장애”를 의식하였을 것이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오이디푸스로부터 장애 있는 몸의 취약성, 그리고 배제와 차별의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지혜롭지도, 똑똑하지도 않았던 오이디푸스만이 “발의 개수와 보행장애의 연관성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던 이유다.
장판에서 장애와 비극을 연관 짓는 일은 비판을 받기 쉽고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한국 진보적 장애운동의 관점과 달리 ‘비극’은 장애를 개인적인 사건이자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장애가 갖는 사회성을 간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비극에 담긴 ‘운명애’의 순간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비극’의 의미를 재구축한다. 슬픈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기 삶을 주도하는 운명애의 저항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장애의 관점에서 그리스 비극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이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 내지 못했던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면모를 발견한다는 의미이다.
“왜 여성, 소수자, 장애인은 급진적일 수밖에 없는가?”
올림포스 신 중 가장 소수자와 밀접한 신을 하나 꼽는다면, 단연 디오니소스다. 디오니소스 제전을 묘사한 유물에서는 유독 발기한 곱추나 난쟁이 형상이 많이 등장한다. 이에서 알 수 있듯 그를 따르는 신도 중에는 여성과 장애인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왜 소외된 자들의 신이 되었을까?
디오니소스(Dionysos)의 이름은 ‘두 번(dio) 태어난 자(nysos)’라는 뜻. 인간인 어머니의 몸에서 한 번, 신인 아버지의 몸에서 또 한 번 태어난 그는 신성을 가졌지만 신은 아니었고, 남성이지만 “여자 같은” 모습으로 곧잘 그려졌다. 올림포스에서 유일하게 장애를 가진 신 헤파이스토스를 설득하여 황금 의자에 결박된 헤라 여신을 풀어준 공로로 신이 되기 전까지는 ‘신도 인간도 아닌’ 존재, 즉 체제 바깥에 있는 존재였다.
이런 특성은 억압당하던 소수자들을 포도주와 축제로 위로하고, 강력한 에콜로지 공동체를 이루는 원천이 되었다. 디오니소스 신도들은 ‘마이나데스’라고 불렸는데, 이들은 “여성, 트랜스젠더, 장애인, 노인, 이방인, 부랑인, 노예 등 그리스 사회에서 차별과 모욕 속에 고통받는 소수자”였으며 가부장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이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가부장제를 대표하는 인물인 크레온과 대치하는 여인 안티고네를 그린다. 안테고네는 자신의 오라비 매장이 테베의 왕 크레온의 포고령보다 위에 있는 ‘신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안티고네의 모습이 “공론장에서 법과 정의의 원칙을 논하는 ‘시민’의 모습”, 즉 가부장제 속의 남성 모습을 띠자, 크레온은 그에 분노하여 안티고네를 동굴에 가둔다.
이 일을 겪으며 안티고네는 “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가 보여 준 “같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난 혈족에 대한 사랑”은 모계적이고 에콜로지적인 ‘마이나데스’의 사랑이었다. 이처럼 사회 제도로부터 배제되는 소외와 탄압의 경험을 공유한 소수자들은 이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사랑’ 안에 연대하였으며, 가부장 제도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어떡할까, 여러분들?”
극장을 정치 현장으로, 현실을 비극 속으로!!
그리스 비극은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유흥만을 위한 수단은 아니었다. 아테네 시민에게 비극 공연 관람은 “민회에 참여해서 국정을 토론하고 합의하는 일”의 연장선이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필록테테스」에 등장하는 네오프톨레모스는 만성질환 때문에 버림받은 필록테테스를 구할지 고민하다가 관객들에게 묻는다. “어떡할까, 여러분들?” 이처럼 그리스 비극 속에는 정치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들이 녹아 있었고, 관람객을 비극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비극 밖 현실을 보게 하는 장치였다.
이 책 역시 그런 공론장의 역할을 이어 간다. 장애인권운동가들의 현실과 그리스 비극 속 인물들의 서사시를 비교하며 현실의 장애인 문제를 책 속으로 끌어 온다. 프로메테우스가 모든 것을 내다보면서도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제우스가 내린 벌을 받는 이야기, 그리고 노들야학의 전 교장 박경석이 장애인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권리의 주체로 나서게 된 이야기를 병치하는 식으로 말이다.
소포클레스가 네오프톨레모스의 입을 통해 던진 질문 “어떡할까, 여러분들?”은 당시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고통과 국가의 이익 사이에서 아테네 시민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는 희생해야 하는가? 장애 있는 몸은 그저 버려져야 하는가? 이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물음이다.
★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라는 공론장을 함께 이끌어 주신 분들 ★
“장애학의 시좌에서 그리스 비극을 읽어 냄으로써 비극의 의미를 탈구축하는 동시에
운명애를 소수자적 관점에서 정치적으로 재구축한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아픔과 고통이 이끄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는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저마다의 비극을 안고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
나드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배우)
“모든 사람에게는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자기 삶을 긍정할 기회가 있다”
이라나 (장애인권운동 활동가)
“소외와 배제로 연결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주의가 가진 급진성의 기원을 밝히는 책”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책을 덮고 나면 세상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싶어진다…
그리스 비극의 해괴한 막장 스토리에 절실히 공감하게 되는 순간”
홍은전 (작가, 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나는 동물』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