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밭 사람들  라틴아메리카 커피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 

트랜스 라틴 06

임수진 지음  | 2011-07-15 | 328쪽 | 15,000원


지리학자인 저자가 지역연구를 위해 간 라틴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에서 만나고 2년여를 함께 생활했던 커피열매 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커피 한 잔 값에도 못 미치는 일당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에 대한 시선이 담담한 문체와 어우러지며 감동을 준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임수진 
중197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관광버스 운전수가 되길 간절히 꿈꾸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리학자가 되어 버렸다. 전북대학교 사회교육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이후 현재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Universidad de Colima) 정치사회과학대학(Facultad de Ciencias Pol?ticas y Sociales) 교수로 재직 중이다. 틈틈이 멕시코 태평양 바닷가에 면한 콜리마 주 인근 라임밭을 기웃거리며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저서 및 논문으로 『세계의 분쟁』(공저), 「코스타리카 커피경제의 시공간적 전개와 지역적 다양성」, 「식량위기 시대의 멕시코 농업정책」, 「멕시코 토르티야 위기」, 「라틴아메리카 커피, 다시 꽃 피는 봄을 맞이하려나……」 등이 있다. 


차례 ▼

책머리에
프롤로그 _ 현장에 가면 영감이 있다

1장 / 커피밭을 찾아서
2001년 가을, 뉴욕
코스타리카, 산호세
코스타리카에 살다
‘타라수’를 알게 되다
페레스 셀레동으로 가다

2장 / 커피밭에서의 삶
생애 처음, 커피를 따다
나, 불량노동자
얀시의 바지를 사러 가다
커피꽃이 피었습니다
엘레나와 기예르모의 결혼 1주년 기념일
둘리아의 남편이 돌아왔다
산타페농장으로 가다
다시, 타라수로 돌아오다
해질녘, 늘 방죽가 집을 찾아가다
토요일 오후 그들의 일상, 타라수 센트로 풍경
니카라과 사람들과 과이미, 그리고 과이미 여자들
‘독토르 델 카페탈’이 미쳤다
내 삶의 위안, 카페 로스산토스

3장 / 내 친구, 프레디를 찾아서
프레디가 떠나갔다
니카라과, 보아코, 산타루시아
프레디의 할아버지, 돈 레이놀드
프레디 집을 찾아가다
프레디를 기다리다
마타갈파에 들르다
마타갈파 여관 식모, 글로리아
프레디 부부를 다시 만나다
미국으로 간 프레디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다

4장 / 2009년, 지난 삶의 흔적을 좇아 떠난 여행
다시 찾은 코스타리카, 그리고 사람들
페레스 셀레동, 산페드로 마을사람들
타라수, 카페 로스산토스
타라수, 도냐 베르타 가족
산타마리아 도타 커피집, 그리고 옛친구 후안 엘리

5장 / 프레디를 찾지 않는 것이 좋을 뻔했다
2009년, 다시 니카라과로
마나과, 호텔 티카버스
보아코
산타루시아, 도냐 루신다 민박집
돈 레이놀드
프레디의 집, 프레디의 우물
지오반과 함께 아랫마을로 내려오다
다시, 마나과로
안토니아에게 전화를 걸다

6장 / 2010년 다시, 커피밭에서 만난 사람들
기예르모
엘레나
다시 사라져 버린 안토니아
방죽가 집에 홀로 남은 과이미 여인

에필로그 _ 여전히 쓴 그들의 삶


편집자 추천글 ▼

라틴아메리카 커피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보고서!
― 여성 지리학자가 코스타리카 현지에서 커피밭 노동자로 살아가며 기록한, 그들의 이야기!

현재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 정치사회과학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임수진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쓰기 위해 지역연구에 나섰다. 그녀가 택한 곳은 중미의 스위스라 불리는 라틴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 유럽의 귀족들이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는 유럽의 노동자들과 미국인들이 찾게 된 커피가 이 코스타리카라는 작은 나라를 어떻게 세계체제 속에 규정하고 변화시켜 왔는지에 대한 연구, 즉 커피를 매개로 한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였다.
그녀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코스타리카 타라수 지역과 페레스 셀레동 지역에서 커피 수확철에 현지의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직접 커피열매를 따면서 지역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자로 머문 것이 아니라, 그들과 똑같은 일당노동자로 머물렀고, 그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두 살 때부터 커피를 따왔다는 스무 살 새댁 엘레나의 집에 머물면서 농장에서 일하는 현지 코스타리카 노동자들과 어울렸으며, 타라수 지역에서는 니카라과에서 코스타리카로 건너온 (불법)이주노동자인 니카라과 노동자들과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이 책은 지리학자 임수진이 2년여간 커피밭 노동자로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그들 삶에 대한 기록이자, 니카라과 출신 이주노동자인 프레디 부부와 나눈 우정의 기록이기도 하다(이 책에는 다시 2009년과 2010년 그들을 찾아 나선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또한 하루 종일 일해도 커피 한잔 값 정도의 일당밖에 벌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과거이며, 지금 한국 이주노동자들의 현재이며, 또한 아직 자본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은 곳의 내일로 읽힌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삶을 성실히 살아내는, 자기 일상을 지켜가는 라틴아메리카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저자가 느낀 경외감은, 이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도 ‘삶’과 ‘행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할 것이다.
더불어 커피의 유행과 함께 그에 대한 온갖 책들이 쏟아져 나오며 카페 여행기도 있을 정도이지만, 정작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은 거의 없는 출판 현실에서 커피 생산 현지의 사람들 삶이 담긴 이 책 『커피밭 사람들』의 출간은 ‘유행’ 이면에 감추어진 다른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 줄 것이다. 예컨대 유명 커피 브랜드의 5,000원대 커피 한잔에 담긴 현지 노동자들의 땀에 대해서, 공정무역으로도 해소되지 않을 이 전지구적 빈부격차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부(富)가 얼마만큼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두 살 때부터 커피열매를 따다 ― 엘레나 이야기 

저자 임수진이 지역연구를 위해 무작정 아는 사람도 없는 코스타리카로 날아가 우여곡절 끝에 생애 처음 커피열매를 따게 된 곳은 코스타리카의 시골마을 페레스 셀레동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결혼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혼부부, 엘레나(당시 20세)와 기예르모(당시 26세)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 보는 동양인에 대한 어떤 경계심도 없이, 누추한 자기 집에 손님이 와주어 오히려 미안하고 기쁘다는 순박한 부부와 함께 저자의 커피 노동자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물론 저자 본인이 이 책 여러 곳에 언급하거니와, 그녀는 “불량 노동자”였다. (본문 61쪽 참고)
엘레나와 기예르모 부부의 삶은 현재 코스타리카 일반 민중의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부부의 학력은 엘레나가 초등학교 3학년, 기예르모가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닌 것이 전부이고, 엘레나는 두 살 때부터 커피밭에서 열매를 따왔다. 하루 10시간을 일하고도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 천성이 부지런하고 성실한 이 부부의 꿈은 자기의 자식들이 고등학교까지는 마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난을 대물림해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젊은 부부다.
그러나 10시간을 커피열매를 딸 수 있는 날도 1년에 커피 수확기인 서너 달의 호사일 뿐. 나머지 달은 그마저도 없이 지내야 한다. 또 이들의 식사는 기름에 볶았다기보단 기름에 말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의 밥과 약간의 푸성귀가 전부. 가끔 저급 소시지를 밥 위에 약간 얹어 먹을 수 있고, 콜라를 마실 수 있는 날은 정말 행복한 날이다. 저자는 이들과 지내며 가난함이라기보다 궁핍함에 가까운 커피밭 노동자들의 삶에 놀라고 안타까워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 저자가 더 놀란 것은 그럼에도 그들이 가진 삶에 대한 긍정성이었다.

니카라과 이주노동자의 삶 ― 프레디 이야기 

타라수는 세계 5대 고급커피 생산지 중의 하나인 곳이다. 코스타리카의 정식 행정지명은 산마르코스(San Marcos). 이곳에서 3대에 걸쳐 ‘타라수 커피’의 산 역사가 된 도냐 베르타의 커피농장에서 저자는 니카라과에서 넘어온 불법이주노동자들을 만나게 된다. 코스타리카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니카라과는 원래 1542년부터 스페인 부왕령 산하 과테말라 총독령에 속해 있었고, 1822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뒤에도 10년 넘게 중앙아메리카연방공화국에 속해 있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달라졌다. 두 나라 간 경제 차이 때문일 터인데(2009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니카라과는 1천 달러, 코스타리카는 6,500달러이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니카라과 사람들을 무시하고 천대하며, 코스타리카에서 허드렛일이나 위험한 일의 대부분을 불법이주한 니카라과 사람들이 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말만 듣고, 니카라과 사람들이 거칠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저자는 막상 그들과 만나 함께 커피열매를 따고 또 일이 끝난 후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그들 역시 똑같은 사람이고 친구들임을 확인한다. 특히 니카라과 고향에 어린 남매를 두고, 집을 지을 돈을 벌기 위해 커피 수확철이면 코스타리카로 넘어온다는 프레디와 안토니아 부부와는 특별한 우정을 맺게 된다. 타국에 돈을 벌기 위해 어렵게 넘어온 처지임에도 이들 부부를 비롯해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니카라과 사람들은 저자에게 먹을거리를 나누어 주기를 아끼지 않음은 물론이고, 저자가 오가는 길에 소떼들이 있어 다니기 힘들까봐 자신들이 나서서 소떼들을 몰아주며 저자가 다니기 편하게 해주는 등, 마음에서 우러난 순박한 우정을 보여준다.
타라수의 커피 수확철이 끝나고, 떠나버린 프레디 부부를 찾기 위해 저자는 직접 니카라과로 넘어가서 그들 부부의 집을 들르기도 하지만, 이들 부부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결국 이들 부부와 겨우 다시 코스타리카에서 만나고, 또 다시 헤어지는 과정과, 후에 남편인 프레디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국으로 밀입국하여 처음에는 돈을 좀 버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니카라과의 가족들과 소식이 끊기고 마는 안타까운 사연까지 이 책에는 담겨 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저자는 2003년 코스타리카를 떠난 후 2009년과 2010년 다시 그곳을 찾아간다. 엘레나와 기예르모 부부는 여전히 해가 뜨기 전 새벽부터 고된 일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2009년에 드디어 자기들의 집을 짓고 아이도 낳고 내년쯤에는 염소를 키울 수 있다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 처음 만났던 8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저자에게 그들의 희망은 진정 반가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후 기예르모의 입원 소식을 듣고 급하게 코스타리카를 찾은 저자가 만난 것은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기예르모와 그런 그의 상태조차 제대로 모른 채 시골집에서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엘레나였다.
저자는 이들 젊은 부부의 불운과 베트남 커피로 인해 경쟁력이 없어져서 많은 커피밭이 사라져 버린 페레스 셀레동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마음 아파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신산한 삶을 웃음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글을 맺는다. 이들의 삶이 앞으로 물질적으로 나아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물론, 저자 역시 회의적이지만, 저자는 그들 “삶의 내공”에 존경을 표하며, 그들이 보여준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우정에서 ‘삶의 힘’을 보았다.
한 지리학자가 무작정 ‘커피밭 사람들’의 사진 한 장에 이끌려 떠났던 지역연구에서 만난 것은 결국 거대담론이나 이론이나 통계로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삶, 자체였던 것이다. 이것에 굳이 ‘희망’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경솔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쉽게 ‘절망’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가벼운 일일 것이다. 우리는 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 마음을 움직여 행동으로 이끄는 것이, ‘삶’ 자체라는 것을. 그렇기에 저자는 코스타리카에서 만난 커피밭 노동자들, 그들의 이야기를 남겨서 그들의 이름을 커피와 함께 전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마시는 카페라테, 카페모카 한잔에 담겨 있는 향기와 맛 속에 그들, 커피밭 노동자들의 삶이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