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역자소개 ▼
20세기 문학의 혁신을 이룬 영국의 작가. 잊을 수 없는 언어, 역사·정치·페미니즘·예술 문제에 관한 시대를 초월한 문제의식, 놀랍도록 왕성한 작품활동, 소설의 기존 형식을 깨부순 그녀의 실험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Adeline Virginia Stephen)으로 1882년 1월 25일 영국 런던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저명한 문인이자 영국 국가인명사전의 초대 편집자로, 어렸을 적부터 문학적 재능을 보인 울프를 지도했다. 어머니 줄리아 덕워스는 빼어난 미모와 빅토리아 시대가 요구하는 자기희생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또한 19세기 최고의 인물 사진가인 줄리아 마거릿 카메론을 숙모로 둔 만큼 저명한 사회적, 예술적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1895년, 1905년 어머니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이때 발병한 울프의 신경질환이 평생을 괴롭힌다.
그녀가 회복하는 동안 네 남매(바네사, 토비, 버지니아, 아드리안)는 런던의 보헤미안적인 블룸즈버리 지역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즐겁게 지냈다. 곧 미술·문학·사회경제 분야를 아우르는 급진적인 젊은이들의 주간 모임 ‘블룸즈버리 그룹’을 주최하는데 거기서 교제한 레너드 울프와 1912년 결혼한다. 1917년 울프 부부는 인쇄기를 구입하고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한다.
“사람들을 조각과 모자이크로 드러낼 것입니다. 그들은 예전처럼 깨끗하고 획일적이며 일관된 전체가 아닙니다.” 그녀는 일기에 쓴 것처럼 현실을 “떨리는 조각들로 이루어진 전체”로 창조하고 “마음의 비행을 포착하는 데 전념”했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등 그녀 최고의 소설들은 깔끔한 해결책이나 명확한 구분 없이 인간의 내면과 외부 사이를 오가며 시간, 경험, 성격의 불확정성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에 대한 미적 탐구로 우리를 초대한다. 또한 예술 이론, 문학사, 여성의 글쓰기, 권력의 정치에 관한 선구적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남겼으며 전기문과 일기, 서신도 썼다. 정신 질환이 재발하면서 1941년 3월 28일 서섹스 우즈강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향년 59세).
역자 정해영
연세대학교 영문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고, 충남대학교 영문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존 바스의 『연초도매상』과 『키메라』를 번역했으며, 그 밖에 옮긴 책으로 『Y씨의 최후』,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종말론』,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등이 있다.
차례 ▼
I. 창(窓) 7
II. 시간이 흐르다 207
III. 등대 239
도슨트 최은주과 함께 읽는 『등대로』
나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한 번만 존재한다 7
느릿하게 이어지는 일상의 상태 • 7
여기 있다는 것과 저기 있다는 것: 공간에 대하여 • 11
우리, 순간의 존재들 • 22
결혼 이야기 • 30
그림은 마침내 완성되었다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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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세계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문학과 철학의 만남으로
나의 삶과 세계를 확장하는 법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인공지능 시대에도 모든 질문은
결국 ‘나의 삶’으로 수렴된다
통계와 사회학이 아무리 많은 숫자와 도표를 들이밀며 얘기해도 와닿지 않던 사회문제가 한 편의 문학 작품으로는 확 와닿을 때가 있다. 꾸며낸 말들과 허구일 뿐인 문학에 과연 어떤 힘이 있는 걸까? 문학은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을 살게 한다. 만나지 못할 인물을 만나게 한다. 겪지 못할 일을 체험케 한다. 문학이 만들어 낸 그 세계에 반응함으로써 우리는 작가만의 것도, 그리고 나만의 것도 아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세계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그렇지 않아도 왜소한 우리의 삶은 온갖 정보와 소음 속에서 더욱 축소되어 버릴 것이다.
문학이 만들어 낸 세계는 현실 속 외부 세계와 개인의 삶 사이에 완충지대가 된다. 이 완충지대는 우리가 이전에 미처 못 보았던 틈을 내준다. 일상이 놓친 다면적인 현실을 다채로운 언어로 되비추는 문학은 그러나 상징과 비유라는 특유의 우회로 때문에 독자들을 난관에 봉착하게 만들기도 한다. 작품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거나 읽기 자체를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은 철학의 눈, 인문학자의 친절한 눈을 빌려 세계문학의 고전을 읽었다. 하여 저마다의 읽기가 수없이 많은 갈래를 만들고, 거기서 수없이 많은 세계가 생길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의 세계가 단지 밈으로 축소되지 않도록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이 손 내민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지 하나의 문일 뿐이다. 그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줄 도슨트가 내미는 손을 독자는 이제 잡으면 된다.
인문학자들이 유능한 도슨트가 되어 써낸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의 해설들은 문학에 딸린 부록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한 권의 책과 같은 가치를 담고 있다. 빼어난 읽기의 한 예를 보여 주는 이 해설들은 문학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독자들, 그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를 개척하려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문학과 맞물려 있는 철학 혹은 사유의 긴밀함을 표현하기 위해 해설이 시작되는 뒤표지와 해설의 본문을 뒤집어, 뒤표지부터 읽어도 또 하나의 온전한 책으로 시작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녀는 등대가 던지는 불빛을 맞이하러 밖을 내다보았다.
세 번 가운데 마지막, 길게 지속되는 불빛이 그녀의 불빛이었다.”
『등대로』는 스코틀랜드 해안의 헤브리디스제도를 배경으로, 램지 가족과 그들의 여름 별장에 찾아온 손님들의 10여 년에 걸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의 첫 부분인 ‘창’에서는 램지 부부와 그들의 여덟 자녀 그리고 그들의 여름 별장에 묵는 손님들이 소개된다. 가족들은 다음 날 등대로의 여행을 계획하지만 다양한 긴장과 관계의 면면이 조용히 드러난다. 2부인 ‘시간은 흐른다’에서는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세월 동안 황폐해진 램지 가족의 집이 빠르게 목격된다. 마지막 ‘등대’에서는 램지 부인의 죽음 이후 흩어졌던 사람들이 여름 별장에 다시 모이고, 마침내 등대로 향하는 현재의 시간을 다룬다.
도슨트 최은주와 함께 읽는
『등대로』— 해설 중에서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그런 시간을 질적, 주관적 경험으로 회복하고자 하였어요. 시간을 정확한 윤곽 없이 서로 녹아 스며드는 질적 변화의 연속으로 바라보는 ‘순수 지속’(pure duration)이라는 것을 개발했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을 시간과 분(分)의 선적 연속으로 보지 않고 상호 침투하는 ‘순전히 이질적인 것’으로 보았던 것이죠. 그에게 크게 영향받은 모더니스트 작가들은 줄거리의 시간적 구조라는 전통을 제쳐 둘 수 있었습니다. 현대 소설론을 다룬 에세이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의 마음 위로 원자들이 떨어질 때 차례대로 기록하고, 겉으로 볼 때 전혀 무관하고 일관성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패턴(원자들의 모습이나 그것이 나타날 때 의식에 생겨난 것)을 추적해 보자” 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