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역자소개 ▼
정치적 글쓰기로 20세기 문학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작가이자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가. 조지 오웰은 간명한 문체로 계급의식을 풍자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탁월하였으며 사회주의자이자 반파시스트주의자로서 치열하게 글을 쓴 소설가이자 언론인, 비평가다.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로 1903년 6월 25일 영국령 인도의 벵골주 모티하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영국으로 돌아와 명문 기숙학교 세인트 시프리언스를 거쳐 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는 이튼 스쿨에 장학생으로 진학한다. 이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버마에서 5년간 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나 영국 제국주의의 실체에 환멸을 느끼고 사직한다. 이 시절의 경험이 『버마의 나날』(1934)에 잘 녹아 있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파리와 런던에서 빈민과 노숙자들의 생활을 몸소 체험하며 첫 작품 『파리와 런던의 부랑자』(1933)를 쓰고,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다. 이후 『신부의 딸』(1935)과 『엽란을 날려라』(1936) 등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자원하여 스페인 통합노동당 의용군으로 싸웠다. 이때의 경험을 『카탈루냐 찬가(Homage to Catalonia)』(1938)에 담았고, 이때부터 조지 오웰은 정치적인 성향이 짙은 작가로 알려지게 된다.
1938년 폐결핵을 진단받고 모로코에서 요양을 했으며, 건강을 회복한 후 『숨 쉴 곳을 찾아서』(1939)를 출간한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1941년 영국 BBC에 입사하여 2년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다. 1945년 러시아 혁명 과정을 풍자한 정치 우화 『동물농장』을 출간했으며, 이 책으로 그는 일약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1946년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있는 주라 섬에 머물며 집필에만 전념하였고 인간의 본성을 위협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한 또 다른 걸작인 『1984』(1949)를 완성했다.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1950년 1월 21일 4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다.
역자 배지혜
뉴욕시립대학교 버룩칼리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유학 시절 재미있게 읽던 작품을 한국어로 옮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한 뒤 바른번역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미키 7』, 『그녀가 테이블 너머로 건너갈 때』, 『시체와 폐허의 땅』, 『경제학의 아버지, 신화가 된 사상가 애덤 스미스』 등이 있다.
니체에 이르는 길이자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섬세히 펼쳐 낸 『언더그라운드 니체』, 『다이너마이트 니체』,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철저하고 깊이 있게 읽어 낸 〈북클럽 『자본』〉 시리즈(전 12권), 우리 사회의 현재를 그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묵묵』, 『사람을 목격한 사람』, 현장의 운동과 사건과 사람을 담아낸 『“살아가겠다”』,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추방과 탈주』 등을 썼다.
차례 ▼
1부 7
2부 143
3부 303
부록 | 새말의 원리 407
도슨트 고병권과 함께 읽는 『1984』
노래는 영원하고 아이는 계속 태어난다 7
1. 병실의 낚싯대 • 7
2. 빅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다 • 14
3. 권력의 목적은 권력이다 • 24
4.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 29
5. 진실과 야생 • 37
1) 돌은 단단하고 물은 축축하다 • 41
2) 희망은 프롤에게 있다 • 50
6. 봄의 신호를 읽기 위하여 • 57
편집자 추천글 ▼
‘저항하는 삶’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기쁨은 무엇인가?
문학과 철학의 만남으로 나의 삶과 세계를 확장하는 법,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5: 조지 오웰, 『1984』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다섯 번째 권으로 출간된 조지 오웰의 『1984』에서는 도슨트 고병권이 어떤 권력도 끝낼 수 없는 자유의 원천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보고 간직할 것인지 말하고 있다. 영원할 것만 같은 겨울도 언젠가는 끝나고 봄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봄의 신호를 읽고 그 즐거움을 나누는 법을 터득해 가는 일이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모든 질문은
결국 ‘나의 삶’으로 수렴된다
문학은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을 경험하게 하고, 만나지 못한 인물을 만나게 하며, 겪지 못한 일을 체험하게 한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작가와 나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이 세계가 없으면 우리의 삶은 온갖 정보와 소음 속에서 더욱 축소될 것이다. 문학의 세계가 만드는, 현실과 개인의 삶 사이의 이 완충지대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틈을 보여 준다. 그러나 문학의 상징과 비유는 독자들을 난관에 빠뜨리기도 한다. 작품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거나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은 철학과 인문학자의 시각을 빌려 세계문학의 고전을 읽게 해 준다. 이를 통해 저마다의 읽기가 수없이 많은 갈래를 만들고, 거기서 수없이 많은 세계가 생겨난다.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의 해설은 문학에 딸린 부록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한 권의 책과 같은 가치를 담고 있다. 이는 문학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독자들과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를 개척하려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특히 해설이 시작되는 뒤표지에서부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함으로써, 문학과 맞물려 있는 철학 혹은 사유의 긴밀함을 표현했다.
“그들은 당신에게 어떤 말이든 하게 할 수 있지만
그 말을 믿게 만들 수는 없어요.”
1984년, 가상의 국가 오세아니아는 독재자 빅브라더가 이끄는 당에 의해 통치되고 있으며, 철저한 감시와 통제로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역사를 조작한다. 오세아니아의 수도 에어스트립 원(런던)의 외부당원 윈스턴 스미스는 진실을 조작하는 기관인 ‘진리부’에서 근무하며 당의 선전과 거짓을 퍼뜨리는 일을 한다. 그러나 그는 당과 체제에 반감과 의문을 품고 있는 인물로서, 마찬가지로 당원인 줄리아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져 당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만남을 지속하게 된다. 서로의 자유와 인간성을 되찾으려는 그들의 만남은 결국 당에 발각되고, 둘은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다. 이처럼 『1984』는 전체주의와 독재, 감시와 통제, 언어와 진실, 저항과 인간성이라는 여러 주제를 관통하면서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몸’이라는 진실의 노트
오웰은 ‘몸으로 아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더 나아가 구체적인 감각 경험과 몸의 지식이 전체주의에 맞서는 중요한 힘의 원천이 된다고 본다. 몸은 ‘진실의 노트’로, 전체주의 체제가 부정하려는 진실이 새겨진 곳인 것이다. 당이 눈과 귀로 얻은 증거를 거부하라고 말하는 것은 몸을 믿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1984』는 몸으로 형성한 세계관, 곧 자신의 감각과 경험을 신뢰하는 것이 전체주의에 저항하는 핵심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오웰은 나무, 물고기, 나비, 두꺼비 같은 구체적인 사물들에 대한 감각과 애정에 기초한 세계관을 전체주의 반대편에 두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에 맞서 평화롭고 상식적인 미래를 만들 힘의 원천이 여기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중략) 전체주의가 윈스턴을 얼마나 철저히 파괴했는지가 아니라 윈스턴이 전체주의로부터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방어했으며, 죄의식에서 벗어나 어떻게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게 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전체주의에 맞설 저항의 원천, 전체주의적 미래와는 다른 미래를 열어 줄 힘의 원천을 어떻게 깨닫는지의 관점에서 『1984』를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감시와 억압, 통제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주의 기계의 작동이 미치지 않거나 그것의 작동을 막는 요소들도 많이 있습니다.”(도슨트 고병권과 함께 읽는 『1984』 해설 중에서)
『1984』 속 윈스턴의 이야기를 통해, 오웰은 전체주의에서의 저항이 비록 죽음으로 귀결될지라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의 방식임을 보여 준다. 윈스턴은 저항을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기쁨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체제에 순응하며 사는 이들이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언젠가 당에게 이 사실을 들킬 것을 이미 예감하고 따라서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여겼으나,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더라도 ‘죽은 채로 살아가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그렇게 그는 삶의 ‘절정’에 도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