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예술

최종철 지음 | 2024-04-09 | 184쪽 | 15,000원


책에 실린 다섯 편의 글들은 이른바 ‘포스트 세월호 시대’라고 불리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 문화가 세월호 참사의 뼈아픈 교훈을 얼마나 깊이 반성하고 변화의 계기로 삼아왔는지,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던 다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지, 세월호의 아픈 이미지들이 전하려 했던, 그러나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말해지지 못한 고통과 구원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인지, 예술은 그 고통과 구원의 이야기를 어떻게 재현할 수 있는지 묻는다.

세월호 참사는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물리적 재난인 동시에 이미지에 의해 그 충격과 고통의 외연이 확장된 매우 특수한 시각적 사태였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이러한 시각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세월호를 재현하는 일, 혹은 그것을 이미지화하는 일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세월호 이미지들이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약속에 필연적인 조건임을 알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이미지들이 야기할 사회적 혼란과 해악을 염려한다. 세월호 이후, 그것에 대해 시를 쓰고, 노래하고, 연극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의 불가능성과 그로 인한 자괴감을 토로하는 것은 그리하여 세월호 시대를 사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일종의 윤리적 의례가 되었다.

이 책 『재난의 예술』은 세월호 참사 이후 침묵과 절제라는 시대적 표현에 담긴 예술의 위기를 살피고, 이 위기로부터 선연히 드러나는 주체의 타자에 대한 상호의존성과 책임감을 다시금 되새기며, 이를 통해 ‘표현 불가능성’이라는 위기의 수사 너머로 예술이 어떻게 재난의 시대를 위로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본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최종철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현대미술을 강의하는 교수다. 2012년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서 「재현할 수 없는 것을 재현하기: 후기 사진 시대 사진의 윤리학」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10여 년간 재난 예술에 관한 다양한 글들을 국내외 저널에 발표했다. 『언더 블루 컵』(현실문화, 2023), 『로절린드 크라우스』(커뮤니케이션북스, 2024) 등을 번역, 저술했다. 
차례 ▼


들어가며 ◌ 8

I. 사월, 세월 그리고 ‘보고 싶다’는 것에 관하여
1. 가만히 있으라 ◌ 15
2. 살아서 보자 ◌ 16
3. 잊지 않겠습니다 ◌ 19
4. 눈이 멀어 있었다 ◌ 21
5. 본다는 것 ◌ 22
6. 촛불, 눈을 밝히다 ◌ 25
7. 이미지, 구원의 지표 ◌ 27
8. 가만히 있지 말라 ◌ 30

II. 만년의 양식, 포스트 세월호 시대의 예술 작품
1. 재난의 예술 ◌ 36
2. 만년의 양식 ◌ 39
3. 말할 수 없음 —「보이스리스」 ◌ 43
4. 볼 수 없음 —「아이들의 방」 ◌ 47
5. 들을 수 없음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읽기」 ◌ 53
6. ‘손상된 삶’에 깃든 구원의 광휘 ◌ 58

III. 홍성담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그 불편함의 미학적 정당성
1. 세월오월 ◌ 68
2. 불편한 그림들 ◌ 77
3. 카니발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 91
4. 그림이 벨 수 있는 것과 벨 수 없는 것 ◌ 107
후기 ◌ 110

IV. 세월호의 귀환, 그 ‘이미지가 원하는 것’
1. 이미지는 무엇을 원하는가? ◌ 119
2. 살아 있는 이미지 ◌ 121
3. 이미지의 힘 ◌ 124
4. 메두사 효과 ◌ 127
5. 세월호 이미지에 대한 애호와 공포 ◌ 132
6. 이미지의 복제와 구원의 영적 전례들 ◌ 137
7. 이미지의 승리 ◌ 142
8. 질문의 끝과 시작 ◌ 144

V. ‘예술의 종말’ 그리고 ‘종말의 예술’
1. 예술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 151
2. 예술의 종말 ◌ 160
3. 칸트적 전회 ◌ 163
4. 종말의 예술 ◌ 166
5. ‘변용’의 밤 ◌ 174

도판 목록 ◌ 181

편집자 추천글 ▼

재난에 처한 이미지와 예술
그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하는가?

“이미지는 …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가 부재하는 동안
그 삶의 흔적을 간직하려는 욕망의 환상적이고 유령적인 흔적이다.”
W. J. T. 미첼

세월호 침몰은 그 충격과 고통의 외연이
이미지에 의해 확장된 특수한 시각적 사태다!


『재난의 예술』은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10년간 우리의 문화와 예술에 발생한 중대한 변화를 분석한 책이다. 이른바 ‘포스트 세월호 시대’라고 불리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 문화가 세월호 참사의 뼈아픈 교훈을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반성하며 변화의 계기로 삼아왔는지,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던 다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상태인지, 세월호의 아픈 이미지들이 전하려 했던, 그러나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말해지지 못한 고통과 구원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인지 같은 때늦은 반성과 물음 속에서 흩어져 있던 다섯 편의 글이 하나로 묶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물리적 재난인 동시에, 이미지에 의해 그 충격과 고통의 외연이 확장된 매우 특수한 시각적 사태였다. 세월호 참사가 과거 다른 대형 재난들과 구분되는 ‘이미지 재난’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 즉 세월호 침몰의 전 과정이 미디어에 의해 생중계되었다는 점, 우리가 그 미디어 이미지들을 수동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재난의 목격자인 동시에 공범자가 되고 말았다는 점, 그리고 나아가 올바른 애도의 과정을 통해 그 재난과 결별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오랫동안 미디어를 통해 반복되는 재난의 이미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됨으로써 감각적 삶에 심각한 외상을 입었다는 점에 기인한다.

재난적 세계 속, 야만에 대한 저항이자
상상력의 불가능성에 대한 고백인 ‘예술의 중단’


이러한 참사의 시각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세월호를 재현하는 일, 혹은 그것을 이미지화하는 일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세월호 이미지들이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약속에 필연적인 조건임을 수긍하는 동시에 그러한 이미지들이 야기할 사회적 혼란과 해악을 염려하기 떄문이다. 이미지의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불)가능성에 대한 질문들이 재난 이후 우리 사회의 (그리고 모든 재난적 세계들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지만 정작 우리는 그러한 가능성/불가능성에 대한 각자의 신념 밖으로 여전히 그 어떤 합의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이후, 시를 쓰고, 노래하고, 연극을 만들고, 그림 그리는 것의 불가능성과 그로 인한 자괴감을 토로하는 것은 세월호 시대를 사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일종의 윤리적 의례가 되었다. 예술가들은 당대의 거대한 고통을 자신의 예술 안에 욱여넣고 그 세계와 함께 침몰하거나 그럴 수 없다면 예술의 한계와 위기를 고백함으로써 혹은 눈물과 침묵 외에 그 어떤 표현도 온당치 않다고 말함으로써 표현의 중단에 대한 면죄를 청한다. ‘아우슈비츠 이후 시의 불가능성’을 고백한 유럽의 지식인들처럼 예술의 중단은 ‘야만에 대한 저항’이며 ‘절대적인 공포 앞에 상상력이 처하게 되는 필연적인 불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이러한 고백들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침묵과 절제라는 시대적 표현에 담긴 예술의 위기
그럼에도 예술은 어떻게 재난을 위로하는가?


따라서 재난의 예술은 ‘재난에 대한’ 예술인 동시에 ‘재난스러운’ 예술, 표현을 상실한 불능과 위기의 예술, ‘예술의 재난’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재난을 재현하려는 욕망과 그처럼 불온한 욕망에 대한 냉철한 반성 사이에서 움튼다. 모리스 블랑쇼(『재난의 글쓰기』, 1980)의 말대로, 재난의 예술은 “글쓰기의 거부를 통해 완성되는 글쓰기’와 같은 것으로, 이를 통해 예술가가 아닌 “재난 스스로, 재난의 본질적인 표현인 망각과 침묵 속에서 말하게 한다”. 재난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예술의 주제이자 형식이 되는 것이다.

이 책 『재난의 예술』은 세월호 참사 이후 침묵과 절제라는 시대적 표현에 담긴 예술의 위기를 살피고, 이 위기로부터 선연히 드러나는 주체의 타자에 대한 상호의존성과 책임감을 다시금 되새기며, 이를 통해 ‘표현 불가능성’이라는 위기의 수사 너머로 예술이 어떻게 재난의 시대를 위로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본다. 그것은 단지 침묵하자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가 스스로를 가라앉히고 죽음으로써 보여 준 그 파국의 형식으로 시대를, 사회를, 그리고 우리 자신을 비춰 보자는 요청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엮인 이 책은 어느새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듯한 세월호 참사의 상처와 아픔이 결코 단 한 번도 완전히 잊힌 적이 없으며, 눈에 잘 띄진 않아도 여전히 우리의 시대에, 우리의 예술에, 그리고 우리 각자의 마음에 심중한 변화의 계기가 되어 왔음을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