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역자소개 ▼
BC 384년 그리스 북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국가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났다. BC 367년, 17세 때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 아테네로 건너와 플라톤 문하에 들어간다. 20년 동안, 이른바 ‘제1차 아테네 체류 시기’에 그는 오늘날 우리가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문제들을 익혀 나갔다.
BC 347년 플라톤이 세상을 뜨자 플라톤의 조카이자 상속인이었던 스페우시포스가 아카데미의 수장이 된다. 그러자 아리스토텔레스는 37세의 나이로 아테네를 떠난다. 이후 12년 동안의 ‘편력 시기’를 그는 아카데미에서 동문수학하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지냈다. 그가 맨 처음 찾아갔던 사람은 소아시아 아소스의 군주였던 헤르미아스였다. 그의 환대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과 학문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BC 345년 헤르미아스가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레스보스섬의 미틸레네로 옮겨 간다. 2년 뒤 그는 필리포스 왕의 부름을 받아 당시 13세이던 알렉산드로스에게 가르침을 베푼다. 마케도니아에 대한 아테네의 저항운동이 테베의 함락(BC 335년)으로 무산된 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야 학창 시절의 아테네로 돌아온다. 그의 ‘제2차 아테네 체류 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 12년 동안 리케이온에서 일한다.
BC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 아테네를 떠난다. 그는 일찍이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독배를 들게 만들었던, 신을 믿지 않는다는 혐의로 고발되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테네 사람들이 철학에 대해 두 번씩이나 죄를 짓지 않게 하겠다.” 소크라테스의 운명을 넌지시 내비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머니의 고택이 있는 에우보이아섬의 칼키스로 낙향한다. 그 얼마 후, BC 322년 10월 이름 모를 병을 앓다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내 피티아스 옆에 안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역자 김재홍
숭실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고전철학을 전공하고, 1994년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방법론에서의 변증술의 역할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캐나다 토론토대 ‘고중세철학 합동 프로그램’에서 철학 연구(Post-Doc). 가톨릭대 인간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임. 가톨릭관동대 연구교수를 거쳐 전남대 사회통합지원센터 부센터장을 지냈으며,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이다
차례 ▼
책을 내면서—변명을 위한 변명
일러두기
아리스토텔레스와 관상학의 역사적 연원—관상학과 의학
아리스토텔레스 관상학의 정의— 「논고 A」와 「논고 B」의 대조 검토
아리스토텔레스와 고대 관상학자들의 보고
체액 이론: 힙포크라테스
‘짝퉁 아리스토텔레스’와 폴레몬의 관상학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레노스의 관상학과 체액 이론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그리고 세모니데스
소크라테스의 관상에 대한 일화
테오프라스토스의 『성격 유형들』과 『관상학』
칸트와 헤겔의 관상학에 대한 견해
아리스토텔레스 생물학 저작에 관련해서
아리스토텔레스 생물학 저작에서의 관상학에 대한 간략한 논의
논고 A
제1장
관상학 연구의 토대: 신체와 혼의 상호 의존성
관상학 연구의 세 가지 전통적 방법:
(1) 동물의 비유, (2) 인종적 비교, (3) 감정 상태와 얼굴 표정의 유비
얼굴 표정으로부터의 방법 (3)에 대한 비판
동물 비유 방법 (1)에 대한 비판
새로운 원칙을 통한 동물 비유 방법의 개선
다른 개선책들: 영속적인 특성들만이 징표로써 사용될 수 있다.
제2장
관상학의 정의: 대상의 정의, 징표의 원천, 징표들의 더 분명한 의미
(1) 관상학의 대상에 대한 정의
(2) 징표의 원천
(3) 징표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
관상학의 새로운 방법: 논리적 징표 추론의 새로운 철학적 방법의 도입
징표 표지의 세밀한 선택에 대한 예증들
제3장
그 밖의 다른 여러 징표들: 22가지의 성격 유형
논고 B
제4장
전제: 신체와 혼의 상호적 영향과 동시적 영향
고유한 특징과 공통적 특징 간의 구별
관상학자의 능력: 실천적 훈련, ‘전체 인상’으로부터의 추론적 방법
징표의 선택에 대한 추론의 방법
제5장
일반적인 종적 차이: 남성적 원형과 여성적 원형
남성적 원형으로서의 사자
여성적 원형으로서의 표범
제6장
인간과 관련한 징표 목록들
중요한 징표의 종합: 징표 범위의 전체 인상, 종차, 위계질서
해제— 관상학의 철학적 토대에 대한 비판적 검토
책의 저자와 책 제목에 대하여
작품의 구조: 두 논고는 동일 저자의 작품인가?
「논고 A」의 구조 분석
「논고 B」의 구조 분석
「논고 A」의 내용 분석
관상학의 성립 전제: 『분석론 전서』 제2권 제27장에서의 ‘관상학의 방법론’ | 관상학의 토대와 그 토대에 대한 비판 | 관상학 연구의 세 가지 전통적 방법 | 동물의 비유 | 인종의 비유 | 외형적 현상의 근본 성격에 근거한 방법 | 얼굴 표정으로부터의 방법에 대한 비판 | 동물 비유 방법에 대한 비판 | 새로운 원칙을 통한 동물 비유 방법의 개선책 | 다른 개선책들: 영속적인 특징들만이 징표로써 사용될 수 있다 | 관상학의 정의: 대상, 징표의 원천, 징표들의 더 분명한 의미 | 관상학의 새로운 방법: 논리적 징표 추론의 새로운 철학적 방법의 도입 | 징표 표지의 세밀한 선택에 대한 예증들
「논고 B」 작품의 내용 분석
전제: 신체와 혼의 상호적 영향과 동시적 영향 | 고유한 특징과 공통적 특징 간의 구별 | 관상학자의 능력: 실천적 훈련, ‘전체 인상’으로부터의 추론적 방법 | 징표의 선택에 대한 추론의 방법 | 일반적인 종적 차이: 남성적 원형과 여성적 원형 | 「논고 B」에서 ‘중간’의 철학적 의미—피의 속성과 관련해서
부록
참고 문헌
찾아보기 러두기 4
내용 요약 5
해제 ◆
‘가정경제학’과 ‘오이코노미아’ 15
책의 구성과 내용 19
제2권에 대하여 21
폴리스란 무엇인가? 23
오이코노미아와 ‘정치경제학’ 30
크세노폰의 『가정경영론』과 그 역사적 배경 34
오이코노모스의 역사적 시원 36
각 권의 구성과 집필 연대 및 집필 내용 41
제3권에 대하여 46
‘오이코노미코스’와 여성의 교육 51
라틴어 판본에 대한 짤막한 언급 52
‘오이코노미코스 문학’의 수용과 영향 53
제1권 ◆
제1장 가정관리술과 정치학의 차이 59
제2장 집의 구성 요소와 농업 61
제3장 남녀의 결합과 역할—결혼의 사회적 도덕적 기능 63
제4장 아내와의 교제에 대하여 67
제5장 노예 69
제6장 재산 관리—가장의 업무와 집의 구조에 대하여 72
제2권 ◆
제1장 다른 종류의 재정—왕, 총독, 국가, 개인의 재정 77
제2장 군주들이 재산을 획득한 다양한 방책들 81
제3권 ◆
제1장 남편과 집에 대한 아내의 의무 119
제2장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 124
제3장 결혼의 호혜적 관계와 충성심 127
제4장 부부의 일치와 행복 131
참고문헌 134
찾아보기 137
편집자 추천글 ▼
외양으로라도 알아내고픈
인간의 성격 특성에 대한 학술적 보고
가장 영향력 있는 관상학 작품이자
서양 관상학의 시원인 아리스토텔레스 『관상학』
서양에서 관상학은 인상학과 골상학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개념이었다. 관상학은 “외적 신체의 생김새를 관찰해서 개인의 성격을 평가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관상학에 해당하는 헬라스어 phusiognōmonika는 phusis(자연, 본성)와 ‘알다’, ‘판단하다’, ‘해석하다’를 의미하는 gnōmōn이 결합하여 생겨났다.
서양 고대에 쓰인 가장 영향력 있는 관상학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으로 알려져,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 모음집’에 실려 전해지는 『관상학』일 것이다. 이 책은 서양 관상학의 전형이 되었고, 이후 저술된 관상학에 관한 대부분의 저작은 이 작품을 언급하지 않고는 생겨날 수 없었다. 로마 시대의 폴레몬의 작품과 그 밖의 여러 작품, 심지어 의학자 갈레노스가 쓴 ‘혼의 기능(힘)은 신체의 기질(혼합)을 따른다’라는 책이란 작품의 첫 문장까지도 저 작품에 의존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관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작(眞作)이 아니다. 뤼케이온 학원의 전통을 이어받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기원전 3세기경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은 그의 책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관련 있는 이 관상학 책을 두고 “그의 여전히 중요한 책”이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신체적 표현을 성격 특징 및 사고의 습관과 연결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상적 삶의 요구와 필요에서 시작된 서양 관상학
질병의 원인 및 심리 상태를 인간의 외관으로 파악한 의사들
서양의 관상학은 본래 이론적 탐구 목적에서가 아니라 일상적 삶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관상학이 본격적인 학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철학자들이 관상학을 이론적으로 탐구하면서부터였다는 것이다. 인간의 ‘윤리적 성격’에 대해 관심을 가진 철학자들은 ‘인간의 성격과 생김새’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모종의 연관성을 이론적으로 따져보았을 것이다.
철학과 의학이 겹칠 수 있는 영역은 인간 본성의 정신적 측면과 신체적 측면이 상호 관련되는 영역이다. 바로 이 지점이 철학과 의학이 관상학을 통해 연결되는 지점이다. 의사들은 관상을 통해, 즉 인간의 외관(外觀)을 읽어 냄으로써 질병의 원인과 그의 심리적 상태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 연구’에 기반하고 있는 이 책은 인간의 성격을 동물들의 삶의 방식 차이, 활동 방식 차이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얼굴’(metōpon)을 가지며 웃을 줄 아는 동물이라고 간주한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혼(프시케)과 관련한 성격 유형의 흔적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한다. 예를 들면 길듦, 난폭함, 온순함, 거칢, 용맹함, 겁 많음, 두려움, 대담함, 교활함 같은 것들인데, 이로써 인간 성격과 동물 성격 간의 유비, 암컷과 수컷의 신체적 차이에 따른 성격의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상 행위를 통한 판단은 옳거나 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힘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은 관상학
동서양 문화를 통틀어 살펴본 인간 행동의 뿌리 깊은 공통점은 인간이 외부 대상 세계에 대한 관찰과 타인에 대한 ‘관상’에 기반하여 움직였다는 점이다. 신화시대에는 그 점이 역동적 기제로 작동했다. 신화가 지각한 것은 외적 대상에 대한 객관적 성격이 아니라 ‘관상적 성격’이었다. 신화적 지각은 인간의 감정적 기질로써 세계를 파악하고 이해한다. 즉 외적 대상이 다정하다거나 악의에 차 있다거나 친밀하거나 무섭거나 기분 나쁘거나 마음을 끄는 황홀한 것이거나 징그러운 것이거나 때론 위협적인 것으로 지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감정적 분위기는 사물 자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에 근거한 이러한 경험의 형태는 과학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변함없다. 감정에 근거한 ‘관상적 태도’는 문명화된 생활에서도 본래의 힘을 상실하지 않은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 §568에서 “의미는 관상”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의 형식’은 관상학적 지각과 이해를 통해 형성된다. 그러한 세계가 예술의 세계, 행위의 세계, 표현의 세계다. 매일의 경험 속에서 ‘의미’는 우리의 삶의 형식에 섞여 짜인다. 그는 인간의 ‘내적 과정은 외적 기준들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한다. 이는 칸트가 말한 ‘외면에 의해 내면을 판단하는 것’에 상응하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
칸트는 관상학적 판단은 필연적으로 지각된 인간과의 직관적 접촉에 의존한다고 했다. 개념의 견지에서, 일반적 원리나 기술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직관(관상적 지각)에서 벗어나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칸트는 관상학이 ‘풍속이나 예의, 습관에 대한 취미 교양의 기술’에 불과하므로 학문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에서 칸트는 “관상학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형태(sichtbare Gestalt)에 의해 한 사람의 성향이나 사유 방식을 판단하는 기술로, 결과적으로 외면에 의해 내면을 판단하는 것”이라 규정하면서도 관상학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관상에 기초한 인간의 성격 판단은 한낱 ‘취미판단’(Geschmacksurteil)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풀면,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매일 관상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서 살아가지만 그러한 판단이 곧 옳거나 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관상학적 판단이 맞는다면 ‘인간은 마땅히 생긴 대로 살아야만’ 하고, 관상, 즉 인간의 생김새가 곧 그 사람의 운명을 규정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인종적 편견에 기반한 사건들, 아시아인과 흑인에 대한 편견도 그 뿌리를 찾다 보면 서양 관상학의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관상학은 대중들 사이에서 취미와 취향으로 살아남았다. 우리의 합리적 사고가 그 기능을 멈추고 어떤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사로잡힐 때, 관상학적 사고가 언제든 인간 문화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