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라이크먼 지음, 김재인 옮김 | 2023-07-10 | 200쪽 | 17,000원
들뢰즈 연구의 권위자로 일컬어지는 존 라이크먼의 저작으로서, 2005년에 출간되었던 『들뢰즈 커넥션』의 새로운 번역이다. 이 책은 미셸 푸코가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철학적인 지성’이라 불렀던 질 들뢰즈의 사상을, ‘연결’, ‘실험’, ‘생각’, ‘다양체’, ‘삶’, ‘감각’이라는 6개의 키워드를 지표 삼아 재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그의 전 저작을 종횡무진하며 들뢰즈 철학의 전모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저·역자소개 ▼
컬럼비아대학 미술사학과와 고고학과의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연구 분야는 미술사, 건축, 대륙철학이다.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대미술을 다룬 잡지 Artforum의 객원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Post-analytic Philosophy(1985), The Deleuze Connections(2000), Rendre la terre legere(2005) 등이 있다.
역자 김재인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들뢰즈의 비인간주의 존재론」(2013)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이다. 니체와 들뢰즈 등 현대 철학의 본래 주제와 함께 예술철학과 기술철학 작업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2017), 『생각의 싸움』(2019), 『뉴노멀의 철학』(2020), 『AI 빅뱅: 생성 인공지능과 인문학 르네상스』(2023) 등이 있고, 들뢰즈와 과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2014)와 『천 개의 고원』(2001) 등을 번역했다.
차례 ▼
옮긴이 서문 | 들뢰즈의 철학에서 연결의 문제 - 5
들뢰즈 저작 약어표 - 10
1장 연결들 - 17
2장 실험 - 34
3장 생각 - 54
4장 다양체 - 77
5장 삶 - 115
6장 감각 - 158
옮긴이의 들뢰즈 관련 문헌 - 197
편집자 추천글 ▼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세계에 대한 믿음'이다"
철학이 창조할 수 있는
무수하고 독창적인 삶의 연결들에 대하여
『들뢰즈, 연결의 철학』(The Deleuze Connections)은 들뢰즈 연구의 권위자로 일컬어지는 존 라이크먼의 저작으로서, 2005년에 출간되었던 『들뢰즈 커넥션』의 새로운 번역이다. 이 책은 미셸 푸코가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철학적인 지성'이라 불렀던 질 들뢰즈의 사상을, '연결', '실험', '생각', '다양체', '삶', '감각'이라는 6개의 키워드를 지표 삼아 재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그의 전 저작을 종횡무진하며 들뢰즈 철학의 전모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어떠한 지도도 확신도 미리 존재하지 않는 여행
"우리는 항상 연결들을 만들어야 한다!"
들뢰즈의 철학은 한마디로 연결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 또한 그의 사상처럼 많은 연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결들을 제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떤 무제한의 평면 안에서 우리는 "항상 어떤 특이점에서 다른 특이점으로 이행하고, 그다음엔 그것을 또 다른 것과 연결"한다. 그리고 그렇게 철학'을' 연결하고 철학'과' 연결하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철학의 목적은 곧, "우리가 더 이상 연결을 만들 수 없거나, 만들지 않거나, 만들기를 원하지 않는, 우리 자신과 세상의 슬픈 상태 안의 '어리석음'과 싸우는 것이다".
라이크먼은 『건설들』(Constructions)이라는 저작에서 철학과 건축, 예술, 도시계획 간의 새로운 연결지대를 창조하려 시도한 바 있다. 그리고 『들뢰즈, 연결의 철학』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러한 연결의 시도들이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 그것의 함의는 무엇인지 자세히 밝힌다. 결국 이 책은 들뢰즈의 사상을 이론적으로 딱 떨어지게 정립하거나 철학의 역사에서 들뢰즈가 어떤 위치인지를 밝히려는 따위의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이나 정체성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들, 스스로 자신의 해석학적 나침반을 내던지고 자신의 담론을 버려둔 채 떠나는 그런 종류의 여행을 하려는 이들"을 위한 지도책이다.
생각하기란 판단(심판)하기가 아니라 실험하기이다
들뢰즈에게 철학을 배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경험, 곧 실험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결코 어떤 특정한 방법이나 교리나 학파가 필요치 않다. 들뢰즈에게 철학은 당도, 교회도, 아방가르드도 없다. 다시 말해, "연결들을 만들려면 지식, 확실성, 혹은 심지어 존재론도 필요 없고, 오히려 아직 무엇인지 완전히 확신하지 못할지라도 무엇인가가 산출될 것이라는 신뢰가 필요하다".
들뢰즈는 우리로부터 세계를 빼앗는 것이 사회들 속의 '제어'라고 여겼으며 따라서 세계에 대한 믿음과 철학과 세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경험론적 개종'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경험론은, 어떤 최초의 요소나 초월론적 요소도 없고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그 어떤 앞선 것에도 내재하지 않는, '순수 내재성'을 상정하는 일종의 철학적 실험주의이다. 이러한 들뢰즈의 경험론은 그를 동시대 프랑스 학자들과 구별 지었고, 그가 현상학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했다.
'다양체 만들기'라는 삶의 문제에 대하여
들뢰즈에 따르면 철학이란 '다양체'의 논리다. 여기서 그의 다양체라는 아이디어를 '여럿'이나 '잡다', '다양함' 같은 전통적 관념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다양체는 단리 논리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거나 행해야 하는 무엇으로서, 이 잠재성을 인정하는 것은 곧 삶에 대한 긍정이자 우리를 새로운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예술의 위대한 문제들로 데려간다.
우리 자신과 서로를 "다양"하다고, 혹은 "다양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많은 또렷한 동일성이나 자아(인격, 뇌의 모듈 등)를 지녔다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우리 자신을 동일성과 동일시의 견지에서, 혹은 설사 다수거나 "분열"되어 있을지라도 또렷한 인격이나 자아라고 이해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말인즉슨, 우리는 어떤 "순수한" 종, 인종, 심지어 젠더로 전적으로 나뉘지 않으며, 우리의 삶은 사실 그런 어떤 순수한 계급이나 유형의 "개인화"로 환원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동일시나 재인지라는 "다수파" 기준이나 모델이기 전에 우리의 "소수자" 우리의 "생성"을 지니듯, 또렷한 종 혹은 지층 혹은 계급에 들어맞기 전에 우리는 일종의 불특정 군중 혹은 "다중"을 구성한다. 다양체는 잡다함이 아니며, 다양체를 만드는 일은 '삶'에 대한 또 다른 착상을 요구한다. (본문 117~118쪽)
들뢰즈의 논리는 생각과 삶 자체의 관계들을 다룬다. 실제 들뢰즈가 철학 전통에서 뽑아내려는 것은 정확히 삶에 대한 '실천적' 문제다. 이것이 바로, 철학을 어떻게 나의 삶과 '연결'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들뢰즈를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