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철학 개요 새로운 관점에서 본 문화생성사
철학의 정원 46
에른스트 카프 지음, 조창오 옮김 | 2021-12-17 | 360쪽 | 28,000원
카프 이전까지 기술은 단지 제품 생산의 관점에서 도구적으로 대상화되었다. 그러나 카프는 인간의 신체 기관이 기술 제작의 원상 또는 모델이 된다는 '기관투사' 이론을 통해 기술적 대상은 인간의 신체의 복제이며, 따라서 기술이란 인간의 절대적인 자기생산이자 자기 표현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문화적 관점을 통해 그동안 문화를 위한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던 기술은 인간의 자기인식, 자기의식을 위한 통로로 재인식된다. 기술에 대한 체계적이고 철학적인 이해를 제공함으로써 현재의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저·역자 소개 ▼
1808년 독일 바이에른 주 루트비히슈타트(Ludwigsstadt)에서 태어난 기술철학자이자 고전문헌학자, 지질학자이다. 역사와 지질학을 담당하는 교사로 재직하며 역사적인 측면에서 본 지질학, 지질학적 관점에서 본 역사 등에 관한 교재를 썼고, 『비교 일반 지질학』(Vergleichende allgemeine Erdkunde, 1845)을 간행했다. 또한 자유주의자로서 『구성된 독재체제와 헌법적 자유』(Der constituirte Despotismus und die constitutionelle Freiheit, 1849)라는 책을 썼으나 독일 정치적 상황이 어두워짐에 따라 1849년에 미국 텍사스로 망명 형식의 이민을 가게 되었다. 망명 시기 동안 독일에서 간행되는 최신 서적들을 탐독했으며 특히 헤겔의 저작을 연구했다. 1865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다시 독일 뒤셀도르프로 돌아와 사강사로서 교육 활동에 전념했다. 그 후 『비교 일반 지질학』 개정판(1868)을 내고, 최초의 기술철학 저작인 『기술철학 개요: 새로운 관점에서 본 문화 생성사』(1877)를 출판했다. 카프의 이 저작으로 기술철학이란 분과가 생겨났고 1900년대 초반부터 1950년 무렵까지 고전적 기술철학의 르네상스가 발흥했으며, 그 이후 현대적인 기술철학이 전개될 수 있었다. 1896년에 87세의 나이로 뒤셀도르프에서 사망했다.
역자 조창오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로이파나 대학교에서 『현대의 멜랑콜리적 구성과 상징. 헤겔의 현대비극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울산대 철학과 객원교수, 부산외대 만오교양대학 조교수, 남부대 교양학부 조교수를 거쳐 현재 부산대 철학과 조교수로 있으며 연구 중점은 미학, 사회철학, 기술철학 등이다. 저서 『예술의 종말과 현대예술』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박물관 이론 입문』, 『늙어감에 대하여』 등이 있다.
차례 ▼
I. 인간학적인 기준 27
스스로 파악한 인간의 몸•인간은 사물의 척도다•생리학의 역사와 세계사•생리학과 심리학•이원론과 그 정당성•중세와 근세에서 인간학적 기준•모순 관계이면서 친구 관계에 있는 자연연구와 철학•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인간•인간중심적 관점•유기적 발전이론•발생학적 기초법칙•인간이 만든 외부세계•정리
II. 기관투사 57
예술과 학문에서 ‘투사’ 표현의 혼란스러운 사용•문화사적인 기초에서 기관투사의 탐구•선사시대 인간과 그 근원소질•첫 번째 도구와 첫 번째 노동•인간 노동의 계열로서의 역사
III. 첫 번째 도구 69
기관과 도구•도구의 도구로서의 손•도구는 본보기인 기관의 연장이며 이 기관의 힘을 도구가 임의적으로 엄청나게 강화함•원시적인 손도구, 일종의 기관 자체의 현상•언어의 빛 속에서 도구의 탄생•도구, 무기, 기구•발견, 발명•도구의 발전과 기관의 발전•조작성 형식 및 기관의 운동법칙을 기계 장비에 무의식적으로 전이함•유기체 설명을 위해 기계를 회고적으로 사용함•기계학의 기초법칙•생리학에서 기계학의 언어
IV. 사지척도와 척도 95
사지와 그 차원인 사지척도•길이척도, 길이척도를 공간 및 신체로 전이함•손과 셈법•가장 중요한 척도인 피트•피트와 현대 척도 및 무게체계와의 관계•발걸음 측정과 도구를 통한 측정•달력
V. 장비와 도구 105
가장 원시적인 망원경•렌즈, 돋보기, 눈 수정체의 무의식적 복제•카메라 옵스큐라, 다게레오 타입•시력 보조를 위한 기구는 시각 과정 연구를 위한 도구로 사용됨•기관투사의 중요한 사례로서의 색수차 제거•보청기, 청진기•모노코드와 현악기•『소리감각론』•코르티기관, 귀의 축소판 하프•기관투사 관점에서 본 고대 화음 상징학의 진리•투사하는 기관과 투사된 기관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조화는 알레고리적인 유사성을 배제한다•해부학 및 생리학 용어, 기술 작품의 짝: 기술의 기계작품은 유기체의 모방이다•발성기관은 오르간의 중심부분으로 투사됨•언어 활동•심장작동을 펌프 기계작동을 통해 설명함
VI. 골격의 내적 구조 133
골격의 질서, 일정한 구조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원상•이 발견 과정의 서술•해면뼈 및 인간 대퇴골 위쪽 끝 구조, 이는 (골격과 유사한) 크레인의 이론적 누름 및 당김 과정과 일치함•파울리의 다리지지대는 누르기와 당기기 이론에 기초함, 골격도 이에 기초를 두고 있음•엔지니어가 다리를 건설하는 것처럼 자연은 골격을 형성함•골격은 살아 있는 조직으로 간주해야 함•기관투사의 발견 관계•자연연구의 기계론적인 규율화•학문은 유기체 속 모든 작용인에 대해 기계 속에서 그 유비를 찾으려 함•현실적 경험의 개념과 가치
VII. 증기기관과 궤도 149
기계의 기계•증기기관과 인간 유기체를 비교함으로써 힘 보존을 감각적으로 명확히 함•인간의 기계화와 기계의 인간화 등 격을 낮추는 기계론적 세계상•기계적 완성의 실현은 유기적 발전이론과 일치한다•발명에서 무의식과 의식의 상호적인 작용•궤도가 증기기관에 복속됨, 기관차와 철도•철도체계의 유기적 원상으로서 혈관계
VIII. 전신 161
학문의 측면에서 전신체계와 신경계의 평행론•신경은 케이블 장치다•혁신의 비밀, 그것의 역학적 원상을 통해 해명됨•갈바니 장치와 그것의 완성•기계가 감각적으로 만질 수 있는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즉 사용된 세밀한 소재에 따라 정신의 투명한 형식이 되는 지점에 있는 전신•유기적 원상과 기계적 복제의 내적 근친성에 관한 인식의 진보는 자기의식의 진보다•회고
IX. 무의식 175
기관투사는 무의식에 참여함•무의식과 자기의식•『무의식의 철학』과 『영혼학』•잘못된 의인화의 길•자기정의로서의 정신•자기 신체의 앎은 인간에 관한 모든 사유의 기초다
X. 기계기술 185
『이론적 기구학』 기초 위에서의 기계 개념•대우요소, 기구학적 계열, 기계의 발전단계로서의 변속기•마찰 점화기, 첫 번째 기계•운동과 힘의 관계•힘 마감과 대우 마감•힘 마감이 대우 마감과 연쇄 마감을 통해 해소되는 과정이 바로 기계 완성의 진보다•기계의 일반적인 발전에서 무의식•힘이 증대되고 운동이 풍부화되는 동시에 새로운 힘 원천의 발견과 발명이 이루어진다•기구학적 기호•기구학적 분석•동력기계, 작업기계•기구학적 종합•신체적 유기체, 기계기술의 모든 특수한 형식들의 보편적인 원상, 견본•이상적 기계•『인간 기계』에서의 진리와 오류•유기적 운동이 기계로 무의식적으로 전이한 것을 보여 주는 기계 기구학•전이의 도움으로 원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식론의 의식적 과제가 된다
XI. 형태론적 기초법칙 223
인간 신체 비율에 관한 새로운 이론인 황금 비율의 유래와 설명•예술, 철학, 자연과학의 측면에서 이 이론의 옹호•기초법칙은 인간 형태 전체를 요구함•골격구조와 근육은 서로를 구성한다•균형, 비례, 표현 또는 특성•인간의 직립 형태의 닫힘 모양•비례 구분지점과 그것의 경계•척도, 균형, 대칭으로서의 황금 비율•척도와 기준의 구별•지체에서 기초 관계의 검증•신비적인 뉘앙스•팔과 손•수공업과 공예•미국 도끼, 완전한 손도구의 유형•수공업, 인공물•단위수와 계열수, 모든 유기적이고 기계적인 형성의 원칙•공예 영역에서 완전한 도구 유형으로서의 바이올린, 의복, 집, 건축•회고
XII. 언어 285
소리언어와 문자언어는 본능적인 창조물이다•필체와 인쇄문자•언어와 사유에서 번갈아 교체하는 작용 원칙•언어소리 형태화의 질료•도구로서의 언어•모음과 자음의 형성 문자의 시작과 알파벳의 발전•자모: 어원학적 기초의미•특성으로서의 문자기호•필사본 수집•보편문자•청각장애인 수업의 결과•언어 대용물•기관투사 법정 앞에 선 우리 내적 존재의 복제인 언어
XIII. 국가 313
언어 유기체와 국가 유기체•단어와 행위•인간의 책임의 영역인 국가•인간 본성의 공통적인 것 또는 외적인 것•신체 유기체는 참된 국가적 생의 원상이다•노동분업과 신분의 구분•국가 형성에서의 자연기초법칙•‘사회적 육체의 구성과 생’•역사적 국가와 이상적 국가•수단으로서의 국가와 목적으로서의 국가, 국가 이념•신체 구성과 국가 구성 발전사의 생각•사유의 신체적 고유성•노동 개념•국민경제학의 옛 스승들•조직화의 노동과 노동의 조직화•직업 활동 구현에 대한 국가의 권리•우편제도, 소통의 국가적 형식•현대의 운명과 철도•직업단체의 유기적 형성을 위한 원상인 군대 헌법•군비축소, 정치적 반성운동•군사학교와 그것의 학문과의 관계•군대 규율과 기계 규칙•국가와 기계의 원상•기계는 인간 문명의 강화된 짝이다•국가의 소재•감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통일인 국가•학문적 탐구의 시작과 끝•열리지 않은 통일과 채워진 통일•도덕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양심•자유주의•인간의 모든 것인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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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술철학’ 논의의 출발점이 된 고전을 만나다
‘우리는 아직 기술을 모른다’
기술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최초의 저작 기술은 우리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대상’이다. 핸드폰은 우리 삶의 형식을 바꿨고, 냉장고는 인류의 건강 상태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러나 기술은 여전히 매우 접근하기 힘든 대상이기도 하다. ‘기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명확한 답변을 하기 어렵다. 기술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구조화하고 있음에도 정작 우리는 기술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바로 여기에 기술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기술은 산업 혁명 이후 전면에 드러나면서 학문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 기술을 다뤘던 분과는 기술학(Technology)이라는 경제학이었고 기술이란 곧 제품 생산 활동 전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 19세기 독일의 기술철학자 에른스트 카프가 기술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 즉 기술을 도구로만 보려는 관점을 비판하는 책을 출간하는데, 그것이 바로 1877년에 출간된 『기술철학 개요: 새로운 관점에서 본 문화 생성사』이다. 그는 이 책에서 ‘기술철학’이라는 표현을 최초로 사용했으며, 기술을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철학적 탐구의 대상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초기 기술철학을 성립시켰다.카프의 『기술철학 개요』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기술철학의 논의에서 간과되어 왔다. 그 이유로는 현재 기술이라는 주제가 기술사회학, 과학기술사의 측면에서만 주로 다뤄질 뿐 ‘기술철학’이라는 분과에서 다뤄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정을 들 수 있다. 또, 고전문헌학자인 카프의 독일어가 매우 읽기 힘든 데다가 각종 공학용어가 포함되어 철학 전공자가 모두 소화해 내기 어려운 내용들이 있다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카프 저작의 최초 한국어판인 이 책은 한국어를 통해 카프의 기술철학을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고, 그의 직접적인 표현을 최대한 풀어서 전달하려 했다. 기술에 대한 거대 서사를 제시하는 카프의 논의는 한국의 기술 담론이 더욱더 넓은 맥락에서 이루어지기 위한 든든한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
‘기관투사’ 이론으로 전개하는 기술철학,
문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
카프는 기술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 즉 기술을 도구로만 보려는 관점을 비판하며 기술을 인간의 ‘자기 표현’으로 고찰한다. 인간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기술적 도구를 제작한다. 여기에서, 표면적인 차원만을 제작 활동의 전부로 착각함으로써 기술의 도구적 개념이 발생할 위험이 도사린다. 그러나 카프는 이러한 제작의 의식적 차원 뒤에 숨겨진 무의식적 차원을 발견하고 이를 부각시킨다. 의식적인 제작 활동 이면에는 ‘무의식적 기관투사’ 과정이 존재한다. 무의식은 인간의 신체 기관을 제작의 원상 또는 모델로 제공하지만, 인간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거듭된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인간이 제작한 기술적 도구는 자신의 신체 기관이 무의식적으로 투사된 대상이다. 즉 기술적 대상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기 신체의 복제이자 그 표현이다.‘기관투사’ 이론을 통해 카프는 기술에 대한 문화적 관점을 제시한다. 기술이란 인간의 ‘절대적인 자기생산’이며, 기술적 대상을 통해 인간은 자기를 인식한다. 기술에는 손도구, 기계, 컴퍼스, 현미경, 피아노, 전신, 타자기뿐만 아니라 언어, 국가도 포함된다. 이러한 기술적 대상들이 모여 문화를 형성한다. 기존의 문화철학에 따르면 문화는 고차원적 정신의 자기 객관화의 산물이고 기술은 이러한 객관화를 위한 보조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카프는 기술에 대한 도구적 관점을 폐기하고, 문화 전체를 기술적 산물로 보는 문화적 관점을 제시한다. 기술은 곧 문화요 인간의 자기 표현이며, 기술철학은 곧 문화철학이다. 기술은 인간의 자기인식, 자기의 의식을 위한 통로이다. 궁극적으로 카프는 과거의 문화철학을 기술 개념을 통해 새롭게 변모시키고자 했다.기술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으로 그 의미를 구하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물론이고 기술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아우르는 카프의 이 책은, 하루가 다르게 기술과 관련된 새로운 경험을 해 나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철학적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