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용 지음 | 2023-02-28 | 448쪽 | 28,000원
철학의 정원 55권. 다르마키르티의 주저 『프라마나바르티카』 중 제2장 ‘종교론’을 역안한 것이다. 2021년에 출판된 『인식론평석: 지각론』이 프라마나, 즉 인식도구 가운데 지각에 관해 번역·해설한 것이라면, 이 책은 종교적 차원에서의 프라마나, 즉 인식도구인 세존(불佛, 부처, 깨달은 자)에 관해, 왜 세존(부처)이 인식도구인가를 논하고 있다.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평석: 종교론』은 종교와 철학을 둘로 보지 않는다. 철학 없는 종교는 우리를 맹목으로 질주하게 하며, 종교 없는 철학은 공허로 몰아갈 수 있다. 이 책은 철학적 인식(도구)을 근거로 종교적 해탈(정신의 절대적 자유)을 지향하며, 종교적 해탈을 통해 철학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 가기 위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역자소개 ▼
부산대학교에서 인도 불교인식 논리학의 집대성자인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부산대학교에서 철학과 윤리를 강의하였다. 현재 ‘다르마키르티사상연구소’를 열어 다르마키르티 사상을 국내에 알리는데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그린비), 『깨달음과 자유』(메타노이아), 『인식론평석:지각론』(그린비), 『인식론평석:종교론』(그린비), 역서로 『무상의 철학』(산지니), 『인도불교의 역사』(산지니), 『대승기신론』(문장21), 『유마경』(메타노이아), 『불교인식론과 논리학』(운주사), 『근대일본과 불교』(그린비), 『티베트논리학』(불교시대사), 『불교인식론』, 『다르마키르티의 철학과 종교』(산지니), 『인도인의 논리학』(산지니), 『아포하』(그린비), 『불교란 무엇인가』(산지니), 『삼가구감』(메타노이아), 『인도철학강의』(AK) 등이 있다.
차례 ▼
책머리에 5
I. 프라마나의 정의 14
언어인식에 관하여 22
인식론개설 26
세존·프라마나설 55
II. 니야야학파의 신의 존재증명 비판 71
논리와 언어 84
신·작인설의 비판 91
III. 미망사학파의 성언량(聖言量) 비판 106
IV. 마음의 연속 입증 116
원인 없는 찰나생멸 171
윤회의 실상 190
정리학파 전일자설의 비판 203
바이셰시카학파의 형이상학설에 대한 비판 214
속 마음의 연속 입증 229
자성청정심과 수행 247
V. 세존의 교사다움 263
VI. 세존의 선서다움 272
VII. 세존의 구제자다움 280
VIII. 고의 원리 283
고제의 사상(四相) 312
IX. 집의 원리 316
X. 멸의 원리 329
XI. 도의 원리 344
아애와 윤회 351
무아와 해탈 392
바이셰시카학파의 해탈론에 대한 비판 399
자이나교의 고행설 비판 411
XII. 세존이 프라마나임을 총괄 420
『인식론평석』 종교론 해제 425
참고문헌 441
편집자 추천글 ▼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불(佛)을 찾아서
―인간은 본래 부처이며, 부처인 나를 인식하는 것이 곧 불교이다
인도불교철학은
다르마키르티의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
다르마키르티(600~660)는 인도불교철학의 집대성자이다. 서양철학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대철학과 종교의 집대성자라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중세철학의 집대성자이며, 칸트가 근대철학의 집대성자라면 니체는 현대철학의 집대성자이다. 동양철학에서 순자가 고대유가철학의 집대성자라면 주자는 신유학의 집대성자이다. 인도불교철학에서 바수반두가 초기불교와 부파불교 그리고 초기대승불교의 집대성자라면 다르마키르티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경량부(經量部) 그리고 중관불교와 유식불교의 집대성자이다. 여러 학문의 갈래들을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종합했다는 양적인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전환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상에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그는 명실상부하게 ‘불교로서의 철학’,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완성시켰다. 7세기 다르마키르티 이후의 인도불교철학은 그의 각주(脚註)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평석: 종교론』은 다르마키르티의 주저 『프라마나바르티카』 중 제2장 ‘종교론’을 역안한 것이다. 2021년에 출판된 『인식론평석: 지각론』이 프라마나, 즉 인식도구 가운데 지각에 관해 번역·해설한 것이라면, 이 책은 종교적 차원에서의 프라마나, 즉 인식도구인 세존(불佛, 부처, 깨달은 자)에 관해, 왜 세존(부처)이 인식도구인가를 논하고 있다.
부처가 인식의 도구라니!
인식도구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강을 건너는 뗏목, 언덕을 오르는 사다리, 지옥과 천국을 이어 주는 십자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부처가 인식도구’란 말은 곧 부처가 손가락, 뗏목, 사다리, 십자가라는 의미이다. 허나 불교에서는 ‘손가락과 달’, ‘뗏목과 건너가야 할 저곳’, ‘사다리와 올라가야 할 언덕’, ‘십자가와 천국’을 둘로 나누어서 보지 않는다. 인식, 즉 헤아림(量)이 ‘도구이자 목적’인 것이다.
자[繩]는 사물의 길이를 재는 행위를 위한 도구이자 행위의 결과이다. 되[升]는 사물의 양을 헤아리는 행위를 위한 도구이자 행위의 결과이다. 지각(pratyakṣa)은 직접인식이라는 행위를 위한 도구이자 행위의 결과이다. 추론(anumāna)은 간접인식이라는 행위를 위한 도구이자 행위의 결과이다. 부처(세존)는 해탈이라는 행위를 위한 도구이자 행위의 결과이다. 부처는 나의 깨달음을 위한 도구이자 도달해야 할 목표(결과)인 이상적 존재이다. 부처라는 프라마나는 해탈이라는 행위를 위한 도구이자 행위의 결과이다. 부처는 깨달음이며 깨달음은 해탈을 위한 프라마나이다.
깨달음(enlightenment)은 곧
해탈(absolute freedom)이다
부처가 프라마나인 것은 부처의 말씀이 인식도구가 되어 해탈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며, 부처 자신이 자비자다움과 교사다움과 선서다움과 구제자다움이라는 덕을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절집의 말로 한다면 부처의 삶 자체가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위로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의 실천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종교적 권위인 것이다.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평석: 종교론』은 종교와 철학을 둘로 보지 않는다. 철학 없는 종교는 우리를 맹목으로 질주하게 하며, 종교 없는 철학은 공허로 몰아갈 수 있다. 이 책은 철학적 인식(도구)을 근거로 종교적 해탈(정신의 절대적 자유)을 지향하며, 종교적 해탈을 통해 철학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 가기 위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