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이디스 워튼 지음, 최리외 옮김 | 2023-03-27 | 192쪽 | 14,500원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디스 워튼의 ‘소설 쓰기’에 관한 에세이다. 『순수의 시대』(1920)의 성공 이후 쓰인 이 책은, 현대소설의 뿌리와 그 발전, 소설의 구성, 인물, 상황과 작가로서 내려야 하는 선택 등 소설을 쓰기 위해 알아야 할 다양한 접근법들을 다룬다. 특히 그 시대의 ‘여성 작가’가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탐구하고 논의하였다는 점에서 현대문학사의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1925년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짚는 소설의 요소들은 여전히 중요하며 소설 창작을 둘러싼 물음과 명확한 관점들은 작가로서 막 발걸음을 내딛으려 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유용하다.

이디스 워튼은 발자크와 스탕달,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새커리, 조지 엘리엇, 플로베르, 스티븐슨, 조지 메러디스, 제인 오스틴 등 자신이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마르셀 프루스트에게는 본문의 마지막 장을 통째로 할애했다. 그 덕분에 ‘읽는 사람’으로서 소설의 세계를 거니는 독자들 또한 19세기 문학사의 대표작들에 자연스레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그리고 소설가처럼 생각하는 법을 습득함으로써 ‘무엇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가’에 대한 기준을 정립할 수 있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이디스 워튼 
1862년 1월 24일, 유서 깊은 전통을 지닌 뉴욕의 한 가정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1866년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이주해서 1872년까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1872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정식으로 학교에 다니는 대신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아버지의 서재에서 문학, 철학, 종교 서적을 탐독했다. 그리고 16세가 되던 1878년 처음으로 시집을 출간했다. 1880년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가족이 다시 유럽으로 떠났으며 1882년 아버지가 프랑스 칸에서 사망하자 어머니와 함께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1885년 23세의 나이에 열세 살 연상의 에드워드 로빈스 워튼과 결혼한 후, 그녀는 심각한 신경쇠약을 앓았다. 불행한 결혼생활, 사회적 지위와 작가적 야심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서였다. 신경쇠약을 치료할 겸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생활했으며, 소설과 유럽 여러 지역의 역사, 건축, 미술에 대한 글을 썼다. 그녀는 1913년 남편과 이혼하고 1937년 파리에서 사망할 때까지 20여 년을 프랑스에서 살았다. 그사이 몇 편의 단편과 몇 권의 단편집을 출간한 이디스 워튼은 1905년 『환락의 집』을 발표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녀는 그 소설에서 뉴욕의 본질에 대한 연대기를 쓰려 했다. 『환락의 집』이 친구로 지내던 소설가 헨리 제임스를 포함한 당대 미국 문단에서 큰 환영을 받음으로써, 평단의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모두 누리는 작가로 확고한 위치에 오른 것이다.
그녀는 헨리 제임스, 싱클레어 루이스 등과 친하게 지냈으며 1914년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로는 장 콕토, 앙드레 지드 등 유명한 문인들과 교류했다. 또한 시어도어 루스벨트와도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그녀는 프랑스 전선을 여덟 차례 방문하면서 전쟁의 참화를 묘사한 『싸우는 프랑스』를 출간했고 전쟁 구호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이 공로로 그녀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이후에도 몇 권의 소설책을 출간했으며 전쟁 후 1920년에 발표한 『순수의 시대』로 1921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23년 마지막으로 미국을 방문한 그녀는 전쟁소설 『전선의 아들들』을 발표했으며 1926년에는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평생 동안 소설, 단편소설, 시, 에세이, 여행기, 회고록 등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한 그녀는 병상에서까지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1937년 75세로 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순수의 시대』 외에도 『환락의 집』(1905), 『이선 프롬』(1911), 『암초』(1912), 『여름』(1917) 등이 꼽힌다.
 


옮긴이 최리외

서울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경기도에 살았다. EBS 다큐멘터리팀에서 작가로, 여성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벌들의 음악』『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Y/N』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오랜 시간 혼자 읽고 쓰며 이따금 독립잡지에 글을 실었다. 목소리가 지닌 가능성과 문학을 소리 내어 읽는 일에 관심이 많아 낭독이 포함된 퍼포먼스에 다수 참여했다. 정치학을 공부한 뒤 문학으로 행로를 틀어 영문학 박사과정에서 소리의 재현과 효과를 공부하고 있다. 번역하는 일을 사랑하고, 동네책방에서 독서모임을 열며 편지처럼 전달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차례 ▼

1장 소설이란 무엇인가 11
2장 단편소설 쓰기 39
3장 소설 구성하기 69
4장 소설 속 인물과 상황 131
5장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하여 155
저자가 이야기하는 작품들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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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를 가로질러 도착한 ‘모든 소설가들을 위한 책’,
현재진행형인 작가 이디스 워튼의
소설가처럼 생각하고 쓰는 법

★ 여성 최초 퓰리처상 수상 작가, 이디스 워튼의 소설론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The Writing of Fiction)은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디스 워튼의 ‘소설 쓰기’에 관한 에세이다. 『순수의 시대』(1920)의 성공 이후 쓰인 이 책은, 현대소설의 뿌리와 그 발전, 소설의 구성, 인물, 상황과 작가로서 내려야 하는 선택 등 소설을 쓰기 위해 알아야 할 다양한 접근법들을 다룬다. 특히 그 시대의 ‘여성 작가’가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탐구하고 논의하였다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1925년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짚는 소설의 요소들은 여전히 중요하며 소설 창작을 둘러싼 물음과 명확한 관점들은 작가로서 막 발걸음을 내딛으려 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유용하다.

이디스 워튼은 발자크와 스탕달,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새커리, 조지 엘리엇, 플로베르, 스티븐슨, 조지 메러디스, 제인 오스틴 등 자신이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마르셀 프루스트에게는 본문의 마지막 장을 통째로 할애했다. 그 덕분에 ‘읽는 사람’으로서 소설의 세계를 거니는 독자들 또한 19세기 문학사의 대표작들에 자연스레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그리고 소설가처럼 생각하는 법을 습득함으로써 ‘무엇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가’에 대한 기준을 정립할 수 있다.

누구나 소설의 불꽃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아무나 도롱뇽을 볼 수는 없다

당신이 지은 이야기가 작은 불꽃이라면, 그 속에는 독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고 하던 일을 멈추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가? 그것이 이야기의 ‘영혼’, 곧 도롱뇽이다. 이 책에서 이디스 워튼은 단편소설을 ‘번개와 천둥이 동시에 치듯 인상적인 도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장르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생한 도입부는 작가의 내면에서 수차례 변화와 통합의 과정을 거쳐 숙고되어야만 쓸 수 있다. 마치 불꽃 속에서 한순간 도롱뇽의 형상이 타오르고 포착되듯 말이다.

벤베누토 첼리니는 어린 시절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난롯가에 앉아 있다가 둘 다 불 속에서 도롱뇽을 보았다고 자서전에 썼다. 그때도 그 순간의 광경은 이례적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곧장 아들의 귀를 감쌌고, 그로써 그는 자신이 본 것을 결코 잊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중략) 이는 또 다른 요점으로 이어진다. 보여 줄 도롱뇽이 없다면, 독자의 귀를 막아 봤자 소용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핀 작은 불꽃의 중심부가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다른 무언가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리를 지르거나 흔들더라도 독자의 기억 속에 일화를 각인시킬 방법은 없다. 이야기를 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의미를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도롱뇽이다. (60쪽)

워튼은 또한 줄거리를 설정하고 등장인물을 이야기의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대화와 행동으로 몰아가는 대신,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축할 것을 강조한다(“가장 위대한 소설가들이 항상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질은 그들의 사람들을 살게 하는 것”). 여기서 우리는 성공적인 이야기가 반드시 성공적인 소설을 뜻하지는 않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서사를 따르기 급급한 꼭두각시가 아니라 영혼이 있는 인물을 창조할 것.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가장 적합한 분야에 자신의 기술을 적용하고, 충분한 시간, 인내심, 그리고 작품의 발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름다움조차도 질서정연하게”
소설의 본질과 방법을 넘나들며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에서 이디스 워튼은 소설의 본질을 꿰뚫는 유려한 비유와 소설 쓰기의 방법론 사이를 넘나든다. 또한 예술에 있어 일반적인 규칙들을 확립하는 것은 창작자에게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지나치게 숭상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의를 통해 소설가로서의 그녀의 균형 잡힌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어떤 예술도 그것으로부터 도출된 규칙에 갇히지 않는다고 할 때, 그 예술을 수행하는 이들이 방법을 찾고 과정을 추론하려 시도하지 않는 한 예술은 온전히 실현될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이 언제나 빠져나간다는 건 사실이다. 찾아내기도 힘든 밝은 날개를 지닌 채, 예술가의 가장 내밀한 안식처이자 탐구가 중단될 수밖에 없는 문턱이 자리한 신비로운 4차원의 세계에 둥지를 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세계에 다가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에서 비롯되는 창작물은 그 법칙과 과정 안에서 무언가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127쪽)

글을 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염없이 영감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일단 뭐라도 써 보는 것이 훨씬 유효함을 알고 있다. 쓰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 있다. 이디스 워튼이 전하는 소설이라는 예술의 의미와 방법에 대한 명확한 관점은, 독자로 하여금 그 규칙을 이해함으로써 영감을 기다리는 대신 언제든 쓸 수 있도록 돕는다. 정비공은 기계를 고치고 싶은 ‘마음’ 따위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연장을 챙기고, 고칠 뿐이다. 소설가라는 직업 역시 소설 쓰기를 위한 도구들을 잘 파악하고 갖춰 두어야만 한다.

“다만 부서질 수 있는 내면을 갖기”
나는 누구를 위해 쓰고 있나?

한 번의 비통한 사건으로 시인은 많은 노래를, 소설가는 여러 편의 소설을 얻게 될 것이다. 다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서질 수 있는 내면이다. (31쪽)

앞서 말했듯 ‘좋은 소설’이란 한순간 유행하는 공식이나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금세 성취되지 않는다. 이디스 워튼이 여러 번 강조하듯, 작가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소설을 쓰면서 어떤 특정한 성공을 바라고 의식한다면, 오히려 글쓰기의 미로에 갇혀 헤매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작가는 누군가를 위해서도, 단지 스스로를 위해서도가 아닌 ‘또 다른 자아’를 위해 써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안에 세상에 꺼내 놓을 만한 그럴듯한 이야기가 있을까? 이렇게 고민할 창작자들에게 이디스 워튼은 당신이 쓰는 소설의 주제가 반드시 거대하고 엄청난 의미, 비밀, 미스터리 등을 품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때론 아주 사소한 것 시작한 이야기가 그것이 뻗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불멸의 작품으로 거듭난다.

예술은 시도하지 않는 한 실현될 수 없다. 당신이 소설가가 되고 소설가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자신의 내면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것, 그리고 결국은 쓰는 것이다. 그 쓰기의 여정에서 의심이 피어날 때마다 이 책을 읽으며 소설가의 마음을 다져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