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신과 나의 희곡
엘리너 와크텔 지음, 허진 옮김 | 2019-02-28 | 704쪽 | 28,000원
“나라의 보물”이라고 불리는 인터뷰어가 있다. 1990년부터 30년 가까이 CBC 라디오 프로그램 「라이터스 & 컴퍼니」를 진행해온 엘리너 와크텔. ‘캐나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선정되기도 한 그는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터뷰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뷰, 당신과 나의 희곡』은 엘리너 와크텔의 라디오 프로그램 「라이터스 & 컴퍼니」 25주년을 기념하여 그동안 가장 호평받은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작가들의 인터뷰는 그 자체로 뛰어난 한 편의 희곡이다. 지적이고 날카로운 대화는 마치 거장이 쓴 대사를 떠오르게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큰 선물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통찰과 유머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학의 세계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저·역자 소개 ▼
1987년 문학평론가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이래 CBC 라디오 프로그램 'Writers&Company'를 1990년부터 30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다. 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작가 및 저명인사와의 인터뷰를 엮어 『작가라는 사람』(전3권)과, 본서 『오리지널 마인드』(Original Minds)가 출간되었으며, 2011년에는 뉴욕 페스티벌 어워드에서 ‘월드 베스트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선정되는 등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 앤 그리핀의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조지 오웰의 『조지 오웰 산문선』,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집 『작가라는 사람』(전 2권),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 마틴 에이미스의 『런던 필즈』와 『누가 개를 들여놓았나』, 할레드 알하미시의 『택시』, 나기브 마푸즈의 『미라마르』, 아모스 오즈의 『지하실의 검은 표범』, 수전 브릴랜드의 『델프트 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
서문에 부쳐
조너선 프랜즌
에드위지 당티카
오르한 파묵
알렉산다르 헤몬
앤 카슨
도리스 레싱
힐러리 맨틀
W. G. 제발트
앨리스 먼로
J. M. 쿳시
이윤 리
셰이머스 히니
토니 모리슨
메이비스 갤런트
제이디 스미스
감사의 말
편집자 추천글 ▼
-그들이 보내는 삶과 문학으로의 초대장
“내가 아는 수많은 인터뷰어 중 최고다.”-줄리언 반즈
“엘리너 와크텔은 최고다. 그녀처럼 말하는 방식은 너무나 드문데, 그녀와 말을 하고 있으면 진정으로 지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조지 손더스
『인터뷰, 당신과 나의 희곡』은 엘리너 와크텔의 CBC 라디오 프로그램 ?라이터스 & 컴퍼니」(Writers & Company) 25주년을 기념하여 그동안 가장 호평받은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작가들의 인터뷰는 그 자체로 뛰어난 한 편의 희곡이다. 지적이고 날카로운 대화는 마치 거장이 쓴 대사를 떠오르게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큰 선물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통찰과 유머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학의 세계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이제 세계 최고의 작가 15인과 세계 최고의 인터뷰어가 보낸 문학으로의 초대장을 펼쳐 보자.
예술이 되는 인터뷰, 전설이 된 인터뷰어
“나라의 보물”이라고 불리는 인터뷰어가 있다. 1990년부터 30년 가까이 라디오 프로그램 「라이터스 & 컴퍼니」를 진행해온 엘리너 와크텔. ‘캐나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선정되기도 한 그는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터뷰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리너는 단순한 인터뷰어 이상이다. 그녀는 대화 속으로 걸어들어와 토론을 시작하고 맥락과 배경을 그려준다. 호기심, 자연스러운 유머, 선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라는 캐럴 실즈의 찬사는 엘리너 와크텔이 작가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가즈오 이시구로, 오르한 파묵, 올리버 색스, 수전 손택, 글로리아 스타이넘, 움베르트 에코, 놈 촘스키, 토니 모리슨 등 수많은 작가와 저명인사를 인터뷰한 엘리너 와크텔은 작가만이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라디오의 전설이다. 1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도 와크텔의 능력은 유감없이 드러난다. 상대에 대한 배려, 방대한 자료 조사, 어떤 상황에서도 예리한 질문을 뽑아내는 순발력은 인터뷰어로서의 교본이나 다름없다.
와크텔이 진행하는 「라이터스 & 컴퍼니」의 영향력은 캐나다에 국한되지 않는다. 「라이터스 & 컴퍼니」는 스튜디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사는 나라로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 중국, 러시아, 터키, 중동, 뉴질랜드, 칠레, 작가가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 그들이 만난 작가 중에는 유명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꼭 알아야 하는 무명 작가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열정은 필립 로스나 J.M. 쿳시처럼 인터뷰를 기피하기로 유명한 작가들마저 「라이터스 & 컴퍼니」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었다. 독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인 동시에 작가들이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작가가 실패할 때는 쓰지 않을 때뿐이다
사라예보 출신의 작가 알렉산다르 헤몬은 1992년 미국의 초청을 받아 저널리스트 문화 교환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그러나 초청 기간이 끝날 때쯤 고국에서 전쟁이 시작되는 바람에 정치적 망명을 해야 했다. 미국에 얼마나 머물지 알지 못한 채로 그는 영어를 배워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스스로에게 허락한 시간은 5년. 하지만 그는 3년 만에 준비를 끝낸다. 첫 단편집과 소설은 극찬을 받았고, 구겐하임 상과 맥아더 지니어스 지원금 50만 달러를 받으며 놀라운 성공을 거둔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었을까?
“저는 이저벨의 삶과 죽음에 대해 써야 할 상황에 처하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문학은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것에, 다른 방식으로는 이용할 수 없는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고,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방향을 택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방향을 피한다는 것은 다른 방향으로, 쉬운 주제를 다루는 반대방향으로 튼다는 뜻입니다.”(알렉산다르 헤몬, 231쪽)
딸 이저벨의 죽음에 대한 글을 회상하며 헤몬은 이렇게 말한다. 문학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며, 그것을 피하면 작가로서 실패하는 것이라고. 헤몬은 자신이 쓸 수 있는 것, 써야만 하는 것을 향해 용감하게 나아갔다.
25살도 되기 전에 첫 소설 『숨결, 눈길, 기억』을 발표해 크게 주목받으며 잡지 『미즈』가 뽑은 “21세기의 페미니스트 21인”으로 선정되기도 한 에드위지 당티카 역시 성역 없는 글쓰기를 보여준 작가다. 아이티 출신인 그녀는 자신의 소설에서 아이티의 현실을 담아내는데, 그 안에는 아이티 여성에게 가해지는 순결 이데올로기와 강간문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서술 탓에 당티카는 아이티계 미국인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이티 문화에서 여자들은 침묵하도록 배운다. 하지만 나는 써야 했다”(83쪽)라고 말함으로써 ‘말하는 주체’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겪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그것이 작가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우리 시대에도 문학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게 더 좋을 때에도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요. 강간을 당한 경우 사실을 이야기하면 남편에게 버림을 받을 텐데도 말입니다.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아이티 문화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과거의 침묵 앞에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위지 당티카, 83~84쪽)
삶의 모순과 상실이 우리를, 작가를 만든다
인생은 상실로 가득하다. 상실을 겪는 것이 삶이고, 상실에 익숙해지는 것이 성장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T.S. 엘리엇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 작가인 앤 카슨의 오빠는 1978년에 집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후 20년이 지나 다시 연락이 닿지만, 얼마 안 되어 오빠는 사망하고 만다. 카슨은 손으로 쓴 편지, 오빠의 사진, 그림과 시를 스테이플러와 풀로 붙여 만든 아코디언 같은 책 『녹스』를 만들며 오빠를 이해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오빠라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고, 오빠를 위한 비문이었다.
“사실, 오빠가 죽기 조금 전, 1978년 이후 처음으로 저에게 전화를 했거든요. 2000년의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이상하고 어색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알고 보니 오빠는 코펜하겐에 살고 있었고, 제가 그곳으로 가서 오빠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어떤 여자에게 전화가 와서 ‘당신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당신 오빠가 방금 저희 집 화장실에서 죽었어요’라고 말했지요.” (앤 카슨, 253쪽)
문학은 갑작스러운 상실과 불행을 삶으로 포섭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작가들의 삶에도 상실이 존재한다. 그들은 모두 20년 동안 만나지 못한 오빠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을, 부모님처럼 자신을 키워준 큰아버지를 가슴에 묻는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엘리너 와크텔은 아들을 암으로 잃은 토니 모리슨에게 그렇게 믿기지 않는 일을 어떻게 견디냐고 묻는다. 토니 모리슨의 대답은 삶을 기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직시하기 위해 문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국인들은 모두 행복이 필요한 것 같지만 저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슬프기 때문에 약을 먹지요. 하지만 슬레이드의 죽음은 지금 저라는 사람의 일부입니다. 제 아들이 저를 묻은 게 아니라 제가 아들을 묻었지요. 그뿐입니다. 저는 그 일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잊으려고 애쓰지도 않아요. 이제는 제 삶의 일부입니다.”(토니 모리슨, 598쪽)
작가들은 항상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누군가는 정치적 선언을 위해, 누군가는 자기 표현을 위해,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글을 쓴다. 그러나 그 모든 동기 안에는 어떤 맹목이 있다. “쓰지 않을 수 없어서 글을 썼다”라고 고백하는 작가들의 이야기 속에서 글쓰기의 핵심과 기능을 본다. 문학과 글쓰기는 우리가 삶을 대처하는 하나의 방식인 동시에 곧 그 결과다. 작가로서 일찍 성공하기도 하고 우연히 성공하기도 하고 너무 늦게 성공하기도 했지만, 이 책 속 작가들이 글로 이룬 성공은 결국 쓰는 것을 멈추지 않은 결과임을 우리는 확인한다. 삶은 곧 글이고 글이 곧 삶인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내내 놓치고 살았던 어떤 비밀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나라의 보물” 엘리너 와크텔이 우리에게 전하는 선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