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문학선

루쉰 지음, 루쉰전집번역위원회 옮김 | 2018-10-05 | 480쪽 | 19,000원


중국 현대소설의 문을 연 루쉰의 소설과 산문모음집.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루쉰의 대표작 <광인일기>, <아Q정전>, <고향>, <희망>을 포함 37편을 한 권에 담았다. 


저·역자 소개 ▼

저자 루쉰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1881년 저쟝 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의 투옥과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난징의 강남수사학당과 광로학당에서 서양의 신문물을 공부했으며,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다. 1902년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 학교에서 의학을 배웠다. 그러다 환등기에서 한 중국인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그저 구경하는 중국인들을 보며 국민성의 개조를 위해서는 문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로 갔다. 도쿄에서 잡지 《신생》의 창간을 계획하고 《하남》 에 「인간의 역사」 「마라시력설」을 발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1909년 약 7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항저우 저쟝양급사범 학당의 교사를 시작으로 사오싱, 난징,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신해혁명 직후에는 교육부 관리로 일하기도 했다.

루쉰이 문학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18년 5월 《신청년》에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이다. 이때 처음으로 ‘루쉰’이라는 필명을 썼다. 이후 그의 대표작인 「아큐정전」이 수록된 『외침』을 비롯하여 『방황』 『새로 엮은 옛이야기』 등 세 권의 소설집을 펴냈고, 그의 문학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잡문(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화개집』 『무덤』 등을 펴냈으며, 그 밖에 산문시집 『들풀』과 시평 등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루쉰은 평생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분노하고 저항했는데, 그 싸움의 무기는 글, 그중에서 잡문이었다.

마오쩌둥은 루쉰을 일컬어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主將으로 위대한 문학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 혁명가”라고 했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루쉰은 1936년 10월 19일 지병인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발한 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 문학단체 조직, 반대파와의 논쟁, 강연 활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중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옮긴이 루신전집번역위원회

공상철, 김영문, 김하림, 박자영, 서광덕, 유세종, 이보경, 이주노, 조관희, 천진, 한병곤, 홍석표 


차례 ▼

들어가며: 실례지만, 우리 아는 사이 아닌가요? 7

1부  연과 실 25


1장 자유로우면서도 상식적인 글쓰기 27
스토리텔링•통제된 공상

2부  행동을 취하는 인물 53

2장 상상하자 55

3장 좋은 아이디어로 무엇을 할까 75
아무렇게나 적은 생각•일어날 뻔했던 일,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부정당한 사실들•비유로서의 이야기•주제에서 이야기로

4장 사건을 일으키자 105
문제를 일으키자•멜로드라마가 아닌 드라마를 쓰자•우연을 (반드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5장 다른 사람이 되자 135
내가 당신인 척해도 될까요?•“음, 그 여자는 어떻게 할까?”

3부  이야기와 책: 처음부터 끝까지 159

6장 이야기를 파악하고 책을 상상하자 161
이야기란 무엇인가? 「아버지와 나눈 대화」•「나는 다림질을 하며 여기 서 있다」•「어머니날 다음 일요일」•쓰이지 않은 소설•장편소설 상상하기•『미들마치』 자료집

7장 누가 왕비를 죽였을까? 독자가 책을 계속 읽게 하는 불확실함들 207
길이는 충분하지만 이게 장편소설일까?•왕비의 죽음•넓고 곧은 도로•경치 좋은 길•고가 고속도로•스위치백•아이들과 함께하는 물건찾기 게임

4부  말하기를 선택하자 251

8장 침묵과 이야기 253
말하지 않은 이야기•직접 서술과 간접 서술•정보를 주는 문장•미스터리•종이 위에서 생각하는 인물들•시간 순서의 혼동•불분명한 동기•쓸모없는 비현실적 요소•함축적 양식•안전을 위한 침묵•침묵당한 인물•이야기를 하자

5부  살아서 이야기를 하자 293

9장 생각을 바꾸자 295
환상•무엇을 해야 할까?•정말로 원하는 것을 알아내자•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당신 작품이 출판할 만큼 괜찮을까?•절망하지 말고 수정하자•독자를 찾자•독서를 통해 글쓰기를 배우자•어디서 출판을 시도해야 할까?•작품을 어떻게 투고할까?•안 되면 어떻게 할까?•자가 출판•부업 작가•행복해지자•글을 쓰자

감사의 말 361
앨리스 매티슨이 언급한 책들 363 

편집자 추천글 ▼

문학으로 철방을 두드린다.
당신이 깨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루쉰이 적막에 사로잡힌 채, 방에서 몇 년 동안 그저 때 지난 비문을 베끼고 있을 때 그의 친구 진신이가 찾아와 글을 써보라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쇠로 만든 방에 갇혀 잠이 든 사람들.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이들을 고래고래 소리쳐 깨우는 것이 맞는 일이냐 묻는 루쉰. 철방을 빠져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데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것이 오히려 미안한 일 아니냐 묻는 그에게 친구 진신이는 대답한다.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그렇다. 비록 내 나름의 확신은 있었지만, 희망을 말하는데야 차마 그걸 말살할 수는 없었다. 희망은 미래 소관이고 절대 없다는 내 증명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나도 글이란 걸 한번 써 보겠노라 대답했다. 이 글이 최초의 소설 「광인일기」다.”

중국 현대소설의 문을 열었다 평가받는 「광인일기」는 루쉰이 비애와 고통, 슬픔과 무료―적막!―를 느끼던 중 그 끝에서 태어난 글이다. 우리가 아는 ‘루쉰’이라는 필명이 이때부터 쓰였는데 이것으로 대문호 루쉰이 발명되었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식인시대의 문학

우리가 아는 「광인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사람을 먹어 본 적 없는 아이가 혹 아직도 있을까?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

루쉰이 말하는 식인은 중국의 구습이 지금의 중국인을 ‘잡아먹는’ 것에 대한 메타포다. 1918년에 아비가 제 아이를 잡아먹는 일이 2018년에는 멈췄을까? 지금 청년들은 집도 없고 직장도 없고 꿈도 없이 자본의 시대를 산다. 이들은 분명,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현실에 의해 잡아먹히고 있다. 루쉰의 「광인일기」는 당시 중국사회의 고발인 동시에 문학적 메타포인 동시에 미래를 예견한 작품일지 모른다.

“사천 년간 내내 사람을 먹어 온 곳.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도 그 속에서 몇 년을 뒤섞여 살았다는 걸. 공교롭게도 형이 집안일을 관장할 때 누이동생이 죽었다. 저자가 음식에 섞어 몰래 우리에게 먹이지 않았노라 장담할 순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이동생의 살점 몇 점을 먹지 않았노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젠 내 차례인데….”

희망도 절망도 없는 문학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한 것처럼.”

언뜻 맥 빠지는 말 같다. 하지만 이보다도 담백하고 힘있는 말이 또 없다.
우리가 보통 절망하는 이유는 희망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고병권의 말마따나 “희망 때문에 무슨 일을 하면 절망에 취약한 법”이다. 혁명시대에 문학을 하며, 스스로도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즉 글을 쓴 루쉰. 그는 그저 쓸 뿐이었다.
세상이 달라지기를 희망하지도 않았고 “인생은 현재 정말 고통”이라고 인식하며 그저 살아갈 뿐이었던 루쉰에게 그가 남긴 소설과 산문시는 곧 그의 육체와도 같았다. 삶을 생각하고, 또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지금, 루쉰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