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선생이다
J. 김보영, 황시운, 한지혜, 홍희정, 김중일, 듀나 지음 | 2018-06-29 | 176쪽 | 11,000원
김보영, 황시운, 한지혜, 홍희정, 김중일, 듀나― 여섯 명의 작가가 쓴 나의 선생이 되어 준 책 이야기. 인생을 바꿔 놓은 계기가 되고 친구가 되어 준 작가들의 내밀한 책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삶에서 어떻게 책을 만나고, 그 책이 우리의 삶을 고양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진솔한 책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 역시 일상에서 책을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역자 소개 ▼
2004년 제1회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에서 〈촉각의 경험〉으로 중편 부문 상을 수상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후 꾸준히 중단편을 발표하는 가운데 첫 장편 《7인의 집행관》이 2013년 출간되었고, 이 작품으로 이듬해 개최된 제1회 SF 어워드에서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한 팬의 프러포즈를 위한 소설 청탁으로 집필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비롯한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 그리고 《저 이승의 선지자》가 한국 SF 작가의 작품으로는 최초로 미국 하퍼콜린스 출판사에 판권 수출되었다. 〈종의 기원〉 〈진화 신화〉 등을 수록한 단편집 《On the Origin of Species and other stories》는 미국에서 출간된 뒤 전미도서상 번역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같은 해 《Whale Snows Down》으로 로제타상 후보에도 올랐다.
“중단편의 신”라는 찬사(문목하 작가)를 받으며, 한국 SF의 기원이자 전범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로 2010년대 중반 이후 SF 열풍을 이끈 젊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화 〈설국열차〉의 시나리오 작업에 과학자문으로 참여했으며, 한국과학문학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장편소설과 중편소설로 《천국보다 성스러운》 《저 이승의 선지자》 《역병의 바다》 등이 있고, 소설집 《얼마나 닮았는가》 《다섯 번째 감각》 외 여러 작가와의 공동작품집 다수가 있다.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으며 날아올랐으나, 같은 해 봄, 달이 밝던 밤에 추락 사고를 당하며 날개가 꺾였다. 그날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끔찍한 통증 속에 남겨졌지만 느리게 읽고 쓰며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다. 장편소설 『컴백홈』, 소설집 『홈HOME』, 『그래도, 아직은 봄밤』 등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 『물 그림 엄마』, 산문집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썼다.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우유의식」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 소설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등을 썼다. 문학동네작가상,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197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 『가슴에서 사슴까지』 『유령시인』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김구용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을 받았다.
차례 ▼
기획자의 말: 책은 어쩌다 내 선생이 되었나 _ 임유진
내 선생이 된 소설 _ 김보영
(헤르만 헤세, 『데미안』)
나만의 속도 _ 황시운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달팽이 안단테』)
숨어 있기 좋은 책 _ 한지혜
(이주홍, 『못나도 울 엄마』)
최대한 오래, 깊게 _ 홍희정
(파트리크 쥐스킨트, 『좀머 씨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책 나의 사람 _ 김중일
(『표준국어사전』)
얼음 행성으로 돌아가다 _ 듀나
(어슐러 르 귄, 『어둠의 왼손』)
편집자 추천글 ▼
-‘독자 겸 작가’ 6인이 말하는
내 친구이자 선생이 되어 준 책 이야기
전철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과 잡상인 중 잡상인을 마주치기가 더 쉬울 것 같은 시대에, 아직도 책을 읽는 이 희귀한 ‘독자’라는 사람들은 유독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공신력 있는 조사를 거치지 않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것도 좋아하는 법이라 입이 근질근질하겠지만, 사회생활을 할 때 어제 본 드라마 얘기는 주변 사람에게 할 수 있어도, 어제 읽은 책 이야기 같은 걸 떠드는 건 좀 곤란하다. 남이 읽은 책 이야기라니, 어젯밤 남이 꾼 꿈 얘기만큼 맞장구치기 어려운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들은 주변인에게 책 이야기를 떠드는 대신, 남들이 쓴 ‘책에 대한 책’을 읽으며 동병상련을 느끼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 책을 좋아해서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책을 쓰게 된 ‘작가’라는 사람들은 얼마나 책에 대해 할 말이 많을까. 그래서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선생이 된 책은 무엇이었나요?”하고. 김보영, 황시운, 한지혜, 홍희정, 김중일, 듀나 등 ‘독자 겸 작가’ 여섯 명은 『책이 선생이다』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되고 친구가 되어 준 책에 대한 애정 어린 고백을 털어놓았다.
“그 책의 모든 문장이 나를 위해 쓰인 것만 같았다”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어둠 속에서 빛이 되어 준 책
책을 읽으며 저자가 오로지 나에게만 말을 거는 듯한 순간, 내 마음을 그대로 적어놓은 듯한 문장을 만나는 순간, 한 번만이라도 그 순간을 느껴 본 적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독자’이기를 멈출 수 없다. 소설가 김보영은 ‘내 선생이 된 책’으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꼽는다. 청소년을 위한 필독도서로 늘 선정되는 바로 그 책. 스스로도 대놓고 말하기 민망하다고 쓰면서도 그녀는 ‘인생의 책’으로 『데미안』을 꼽으며 “헤르만 헤세의 모든 저작으로부터 자아와 세계에 대한 탐구를 배웠다”고 주저 없이 말한다. 모든 관계가 버겁게 느껴지고 모든 말들이 상처로 다가왔던, 오직 글쓰기만이 해방구였던 열여덟 살짜리 여자아이가 글을 잃어버렸을 때, 야간 자율학습 시간 우연히 펼쳤던 『데미안』을 읽으며 “그 책의 모든 문장이 나를 위해 쓰인 것만 같은” 감각을 느낀다. 이후 그녀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섭렵하며 자신의 작품 곳곳에 그 흔적들을 새긴다.
소설가 황시운은 “내 삶을 부러뜨린 오월이 일곱 번 반복되는 동안, 나는 두 다리 없이 사는 법을 배웠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난독의 시간을 보냈다”며 불의의 사고 이후 자신의 삶을 술회한다. 그런 그녀에게 ‘기록해야만 한다’는 쪽지와 함께 선배가 보내준 책은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의 『달팽이 안단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이름도 모르는 병에 걸려 침대에서만 생활하게 된 저자가, 친구가 가져온 야생 달팽이를 1년 동안 관찰한 기록을 엮은 이 에세이집은 달팽이의 생태와 진화에 관한 충실한 기록임과 동시에 고통의 시기를 지나는 이의 처절한 생존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녀는 더 이상 전과 같을 수 없는, 사고 이후의 나와의 화해를 시도한다.
“내가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 게 고통스러워졌던 건 이길 수 없는 걸 이겨 내고 싶어 하는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표면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끊임없이 새 책을 내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그 안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동료들에 대한 질투와 그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이 내게서 책을, 소설을 앗아 간 것은 아니었을까. 베일리는 자신을 감염시킨 바이러스나 신경장애에 집착하는 대신 달팽이를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했다. 그러한 시간이 그를 살렸듯이, 상처 입은 모습 그대로의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나를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많지 않은 분량의 책을 두 달여에 걸쳐 읽으며 생각했다.”(본문 74쪽)
이러한 독서 체험은 그녀의 삶을 삼켰던 거대한 사건 못지않게 그녀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제공한다. 머나먼 미국에서 침대 바깥을 벗어나지 못했던 저자가 쓴 책이 한국에서 번역되어 출간되고, 그 책은 마땅히 만나야 할 독자를 만나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던 그녀의 마음속 어둠에 빛을 비춘다. 우리는 여기에서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은 책과 독자의 만남을 목격한다.
독자에서 작가의 삶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 준 책들
어린 시절 만났던 책에 대한 기억은 유난히 각별하고 애틋하다. 어릴 적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은 어김없이 그 책을 읽던 어린 ‘나’를 소환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가 한지혜에게 최초의 선생이 되어 준 책의 기억은 어린 시절 가족과 복닥복닥 살던 좁은 단칸방, 쥐가 출몰하던 낮은 다락방에 있다. 『소공녀』의 새라처럼 기적이 일어나길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나’에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잔혹한 진짜 세상을 보여 줬던 책, 이주홍의 『못나도 울 엄마』는 그녀에게 그저 꿈이고 판타지였던 책의 세계를 현실로 확장시킨 선생이었다.
시인 김중일의 책에 대한 첫 기억은 할아버지의 커다란 국어사전이다. 턱을 괴고 창밖을 응시할 때 할아버지의 팔꿈치 밑에 늘 놓여 있던 그 사전. 첫 한글 선생님이었던 할아버지에게 단어를 배우던 어린 시절을 지나 멋모르고 시를 짓기 시작했던 대학생은 시인이 된다. 그의 삶 곳곳에 놓였던 책은 그를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매력적인 인물 조형이 돋보이는 소설가 홍희정의 독서의 기록은 곧 관찰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목격한 것들을 쉬지 않고 노트 위에 적어 내려갔고, 그 기록들이 쌓여 이야기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그녀의 소설 쓰기의 시작점에 선생이 되어 준 책은 바로 파트릭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였다. 그녀는 『좀머 씨 이야기』를 통해 섬세한 인물의 세부 묘사에 대해, 최대한 오래, 깊게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배운다.
어떤 책은 완벽하지 않기에 선생과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소설가 듀나에게 SF의 방향성을 보여 줬던 책,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에 관한 글을 읽으며 우리는 작품이 가진 한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어떤 책에서도 배울 게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읽는다는 것은, 쓴다는 것은,
결국 가장 내밀한 나 자신과 만나는 일
이렇듯 책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이 책을 읽는 ‘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읽는다는 것은, 그리고 쓴다는 것은, 결국 가장 내밀한 나 자신과 만나는 일”(본문 50쪽)이라는 소설가 황시운의 말처럼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우리는 어린 시절의 나, 지금의 나,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한다. 그렇기에 『책이 선생이다』의 주인공은 책이 아니라 그 책을 읽은 ‘독자’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선생이 되어 준 책, 인생의 책을 떠올려 보아도 좋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이 책 자체가 인생의 책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읽기 전과 조금은 달라질 당신의 인생이 나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