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회고록
윌리엄 진서 지음, 신지현 옮김 | 2017-11-30 | 304쪽 | 14,000원
저널리스트이자 편집자였고, 대학에서 오래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쳤던 ‘작가들의 작가’ 윌리엄 진서의 자전적 글쓰기 지침서이다. 작가, 편집자, 강사, 여행가, 음악가로서 다양하고 흥미로운 삶을 산 윌리엄 진서가 우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치로 엮은 삶의 기록을 따라가면서 회고록을 쓰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문제―소재 선택, 어조, 문체, 태도 등―에 대한 명쾌한 해답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태어난 가정환경에서부터 시작해 학창 시절, 『뉴욕헤럴드트리뷴』에서의 기자 생활, 아내와 함께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있었던 일, 예일대에서 학생과 함께 지내던 시절, ‘이달의 북클럽’ 편집장 재직 시절, 음악가로서 살았던 시절의 에피소드 등 자신의 회고록을 실례로 제시하며 어떤 소재를 고르고, 버릴 것인지, 어떤 분위기나 어조로 쓰는 게 좋을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이 구체적 예를 통해 우리는, 대체로 질서 없는 우리 삶을 어떻게 문장으로, 문단으로, 글 한 편으로 조직해 내야 할지를 알게 된다.
저·역자 소개 ▼
미국은 물론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글쓰기의 고전 『글쓰기 생각쓰기』를 비롯해 『공부가 되는 글쓰기』, 『미국의 장소들』(American Places), 『미첼과 러프』(Mitchell & Ruff ) 등의 책을 썼다.
예일대학교 브랜퍼드 칼리지 학장으로 재직하며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쳤고, 뉴욕 뉴스쿨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 언론대학원에서 강의했다.
프리랜서 영어 번역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SC은행과 삼정회계법인에서 근무했다. 현재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과 동 대학 EICC 객원교수로 있으며, 『작가의 시작』, 『유도라 웰티의 소설작법』, 『남아 있는 날들의 글쓰기』, 『스스로의 회고록』, 『카테고리 킹』, 『회계는 필요 없다』, 『세계 석학들이 내다본 코로나 경제 전쟁』 (공역) 등의 책을 한국어로 옮겼다. 다른 사람의 글을 옮기는 일 말고 나의 목소리를 담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VACAY 캘리포니아 편에 에디터로 합류했다.
차례 ▼
1. 자동응답기의 메시지 ・ 11
2. 학창시절의 기억 ・ 21
3. 크나큰 세상의 경험 ・ 43
4. 즐거웠던 순간들 ・ 59
5. 장소에 대한 기억 ・ 85
6. 인물에 대한 기억 ・ 109
7. 기억의 회고 ・ 133
8. 대학 캠퍼스의 삶 ・ 157
9. 이달의 북클럽 ・ 187
10. 회고록 글쓰기 ・ 207
11. 신성한 이야기들 ・ 229
12. 과거의 재발견 ・ 249
13. 변화는 삶의 활력소 ・ 275
책 찾아보기 ・ 299
편집자 추천글 ▼
─내 삶의 이야기, 회고록을 쓰는 동안
나는 내 삶의 유일한 작가가 된다
작가가 아닐 때에도 ‘내 삶의 작가’로 살았던 윌리엄 진서의 자전적 글쓰기 지침서. 그는 편집자일 때도, 강사일 때도, 여행가일 때도, 음악가일 때도 항상 ‘작가’였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므로. 인간이 된다는 건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므로. 『스스로의 회고록』은 삶의 모든 과정이 어떻게 글이 되는지, 그렇게 삶이 글이 되는 과정에서 누구든 ‘내 삶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당구장 창업과 자서전의 상관관계
자서전과 당구장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올해 2월 국세청이 발표한 개인사업자 업종별 창업 증감률을 보면 당구장 창업이 8.73% 증가했다는 다소 뜻밖의 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때 이른, 혹은 원치 않는 은퇴를 맞이한 베이비붐 세대들을 떠올리게 한다. 회사생활이 곧 삶이었던 은퇴자들은 남는 시간을 어쩌지 못해 산으로, 당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렇게 살기에는 우리의 은퇴 후 인생이 너무 길다. “끝은 시작”이라는 말을 우리 개개인의 문제로 절실히 받아 안아야 할 때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일찍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맞은 일본의 경우, 인생의 마지막을 위한 활동이라는 뜻의 ‘슈카츠(終活)’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일 정도인 데다가 ‘나의 역사(自分史)’ 출판도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한 신문사의 기획으로 전직 기자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전기를 갖게 된 사람들은 “내가 살았다는 증거가 남게 돼 기쁘다”며 감격을 숨기지 못했는데 왜 아니겠는가.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증거, 내 삶의 파편이 어떤 식으로든 후세에 전해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슴 벅찬 일 아니겠는가.
인생의 1막이 지나고 주어진 2막이라는 시간은 결코 ‘남는’ 게 아니다. 무엇이든 그냥 아무거나 하면서 ‘때워’버리는 잉여가 아니다. 새로운 인생의 2막을 준비하고 시작할 수 있는 이 시간은 우리에게 선물과도 같다. 그동안 스스로를 보살피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삶을 돌아보라는 선물. 이 시간을 선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당구장에서 ‘때워’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삶을 배려하고 정리하는 데 할애하는 게 맞다. 우리 모두 스스로의 회고록, 자서전을 써야 하는 이유이다.
글쓰기는 민주적이다, 회고록은 더더욱
글쓰기는 특별한 사람만 한다는 의식이 아직도 존재한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내가 뭐 배운 게 있다고 글을 쓰냐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다. 하지만 가족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SNS에 사진과 함께 단 글 몇 줄이라도 올려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우리 삶의 작가가 되기에 충분하다. 내 생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해온 일들이고, 이제 글쓰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된다. 글쓰기만큼 민주적인 인간의 활동은 없고, 그중에서도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쓰는 회고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았던 증거’를 가장 소중하게 보존할 수 있는 사람, 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것과 실제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순간 걱정부터 밀려올지도 모른다. 뒤죽박죽 얽히고설킨 과거에서 어떻게 일관적인 내러티브를 끌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내러티브를 시작해야 할까? 어디서 멈춰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취사선택해야 할까? 어떤 구조로써야 할까? 내 글을 읽고 기분이 상하는 사람은 없을까?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글로 남기고 싶은 기억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심스러운 생각이 솔솔 피어오른다.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이야기를 쓴다 한들 사람들이 관심이나 가져 줄까? 내 이야기가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 아닐까?
자, 이제 이런 의심은 떨쳐 버려도 좋다. 작가란 무언가를 추구하는 존재다. 여러분도 글을 통해 무언가를 추구할 자격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집필하는 목적은 여러분에게 글을 쓸 자격과 그에 필요한 도구를 쥐어 주기 위해서다. (본문 19쪽)
내 이야기를 쓰는 일에 의미는 있는가
검색창에 ‘자서전’을 넣어본다. 자서전 쓰기, 준비와 실행에 대한 팁이 넘친다. 언뜻 쉬워 보인다. 일단 연대기를 구성해 보고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떠올려본다. 아 맞다,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열심히 적어 내려가다가 펜을 멈춘다. 이 이야기가 나한테는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전혀 흥미롭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생각이 가닿자, 갑자기 위축된다. 까짓 거 쓰기야 쓴다 쳐도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윌리엄 진서의 말마따나 “의심스러운 생각이 솔솔 피어오른다.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이야기를 쓴다 한들 사람들이 관심이나 가져 줄까? 내 이야기가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 아닐까?” ─이렇게 머뭇거릴 때 윌리엄 진서는 우리에게 응원을 잊지 않는다.
자서전, 회고록, 개인사.가족사 기록 등 글의 형식이 뭐가 되었든 스스로의 삶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성취한 일, 생각, 감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픈 욕구가 있다. 가족사 기록은 자녀, 손자, 손녀들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뿌리를 알려 주는 가치 있는 도구가 된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기억은 사라지지만, 글을 남기면 그 기억을 지킬 수 있다.(17쪽)
내가 살았다는 증거를 남기는 일, 자녀에게 나의 생각을 전해주는 일, 혹 나를 만나보지 못할 손주, 증손주들에게 나라는 사람을 글로 전하는 일. 이 일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무한한 언어의 세계에서 우리는 영원히 산다. 불멸을 꿈꾸는 인간이 발명해 낸 것이 아마도 텍스트이지 않을까.
회고록 쓰기의 비밀
결국 이 책은 회고록 쓰기 지침서다. 글쓰기 선생님 윌리엄 진서는 회고록을 어떻게 쓰는지 한번 살펴보자.
‘진실의 발명’이란 회고록 글쓰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바로 사실관계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여러분과 과거를 함께 했던 사람, 장소, 사건에 대해 열심히 디테일을 수집했어도 그 디테일만으로는 회고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디테일을 내러티브로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본문 213~214쪽)
윌리엄 진서는 말한다. 과거의 기록, 사진, 편지, 일기장 등을 뒤져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은 자신의 몫이고, 그 중 쓰고 싶은 이야기만 추리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버려도 좋다고. 우리는 신문기사가 아니라 ‘나의 회고록’을 쓰는 것이고 ‘나만의 서사’를 발견해 내는 것이 관건인 까닭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각자의 진실이 있다. 여러분의 목표는 여러분 자신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본문 152쪽)
『스스로의 회고록』은 회고록 쓰기 지침서인 동시에 윌리엄 진서의 회고록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가정환경에서부터 시작해 학창 시절, 『뉴욕헤럴드트리뷴』에서의 기자 생활, 아내와 함께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있었던 일, 예일대에서 학생과 함께 지내던 시절, ‘이달의 북클럽’ 편집장 재직 시절, 음악가로서 살았던 시절의 에피소드 등 자신의 회고록을 실례로 제시하며 어떤 소재를 고르고, 버릴 것인지, 어떤 분위기나 어조로 쓰는 게 좋을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이 구체적 예를 통해 우리는, 대체로 질서 없는 우리 삶을 어떻게 문장으로, 문단으로, 글 한 편으로 조직해 내야 할지를 알게 된다. 이것은 오로지 윌리엄 진서에게서만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이자 수확이다. 그러나 어쩐지 그 회고록 쓰기의 기술보다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인생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작가가 쓴 회고록을 읽고 싶어 할 독자는 없다”는 그의 말을 따라가 보면 결국 좋은 회고록을 쓰는 비법은 ‘나다운 삶을 사는 것’이라는 데에 가닿는다. 나다운 삶. 그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의 삶은 모두 저마다 나답다. 그러므로 우린 모두 좋은 회고록 작가가 될 사람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