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

유재건 지음 | 2016-08-20 | 464쪽 | 19,000원


출판경력 30년, 출판문화공간 엑스플렉스의 유재건 대표가 묻는다. '출판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또, '출판이란 무엇이 아닌가'. 하루가 멀다 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달라지는 사람들의 콘텐츠소비 방식. 저자는 출판계 모두가 '위기'로 정의내린 이 시기를 '기회'로 보고 있다.

저자는 마케팅의 고전 필립 코틀러의 <마케팅원리>를 바탕으로 마케팅의 기본원칙과 전략을 출판에 접목시키고, 출판의 미래가 가능하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내.외부환경이 비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일 때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에 더해 '무엇이 아닌가'를 물음으로써 기존의 것을 부정하는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유재건
2014년 9월 지속가능한 출판모델을 만들어보려고 출판문화공간 엑스플렉스를 열었다. 다양한 글쓰기, 책쓰기, 출판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1부 리그에서 5부 리그까지 공존하는 두터운 출판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고 꿈이다. 30년 가까이 출판을 하면서 출판이 인간의 삶을 행복으로 이끈다는, 직관에 기댄 근거없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 믿음의 증거를 찾아서 지난 3년 동안 "출판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를 찾아다녔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보통의 글쓰기" "보통의 책쓰기"를 고무, 찬양, 선동하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정작 본인은 책을 왜 안 내냐는 농담성 비난도 이 책의 출판에 한몫했다. 한국출판인회의 출판사업위원장과 그린비출판사 대표를 역임했다.  
차례 ▼

프롤로그
1. 정말이지 지금 당장 연필 하나가 꼭 필요해
2. 오늘 저녁 파티 잊지 마!
3. 당신의 사랑이란 뭐죠?
4. 부엌 식탁을 경험한다는 것
5. 사람들은 계속해서 지나가고 있어
6. 나는 변화하고 있었다
7. 런던 유령
참고문헌 

편집자 추천글 ▼

제 22회 한국출판평론·학술상 평론부문 우수상 수상작

양치기와 기사,
어느 실패와 모험담

1.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다. 거짓말이었다. 놀라서 뛰어왔던 사람들은 다시 돌아갔다.
또다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다. 또한 거짓말이었다. 사람들은 다시 돌아갔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다. 사실이었지만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양치기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양을 모두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황망한 양치기만 남았다.

2.
한 기사가 모험을 떠났다. 책을 너무 읽어 정신이 조금은 이상해진 라 만차의 기사. 자신의 상상 속 여인을 찾아헤매고, 풍차와 싸운다. 그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불가능한 꿈 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순수함과 선의로 사랑”을 하는 자다. 믿음을 갖고 별에 닿고자 한다. 그의 모험이 진짜냐 아니냐는 나중 문제다.

3.
모두가 위기와 불황을 말하는데, 행복과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30년 가까이 출판을 하면서 출판이 인간의 삶을 행복으로 이끈다는, 직관에 기댄 근거없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말하는 사람. 출판문화공간 엑스플렉스의 유재건 대표다. 지금, 이 소용돌이야말로 우리의 상상력과 시도가 필요한 때라고 말하며 『출판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를 출간했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고, 한계는 확장의 계기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확장은 한계를 부단히 지워나가는 과정이고, 따라서 한계가 없다면 확장도 없다. 위기를 발명해내고 그것을 넘어선다는 것은 성공을 끊임없이 연장해나간다는 얘기와도 같다. 성공에 안주하는 한 그것은 필연적으로 위기를 불러오고, 결국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출판은 존재론적으로 위기와 더불어서만 성립하는 업종이다. 지식과 사유를 다루는 미디어가 출판인데, 지식이나 사유가 매번 스스로를 진부하게 만듦으로써 새롭게 갱신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출판이 성립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위기적’(critical) 상황으로 몰아넣지 않고서 출판이 어떻게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겠는가.
출판은 존재론적으로 위기산업일 수밖에 없다고 했을 때, 임계점이나 임계상태(criticality)는 ‘결정적 순간에 딱 한번 찾아오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살면서 우리가 ‘매번, 매순간 만들어내야’ 하는 어떤 것이 된다.”(본문 452~453쪽)

4.
지금도 “단군 이래 최대 불황.”
10년 전에도 “단군 이래 최대 불황.”
20년 전에도 “단군 이래 최대 불황.”
출판이 불황이 아닌 적이 있었던가? 단군 이래, 오로지 최대 불황만을 외쳐오던 양치기들이 전자책과 인터넷과 모바일과 디지털, 클라우드…라는 진짜 소용돌이 속에서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속에서 소용돌이로, 그 아수라로 기꺼이 뛰어들자고 말하는 웬 한 명의 기사.

“지금 출판은 대격변(revolution)을 맞고 있다. 다시(re-) 소용돌이(volution)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소용돌이는 가벼운 것은 밖으로 밀어내고 무거운 것은 빨아들인다. 소용돌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다.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한 상태에서 구명튜브와 함께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공포에 떨면서 배의 마스트에 몸을 묶다가는 배와 함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본문 7쪽)

출판은 사양산업이고,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 속에서, 출판의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 기사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불가능한 꿈 속에서 순수함과 선의로 출판을 사랑한다. 매번 한계에 부딪쳐도 개의치 않고 실패를 또 다른 실패로 연장하며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이 낙관주의 기사에게 ‘실패기’는 곧 ‘성공기’에 다름 아니다.

5.
삶의 개별요소는 문화를, 우리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 요소들은 또한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제한하기도 하고 돕기도 한다. 우리의 외연과 내연을 형성하는 기술과 요소들은 우리 삶을 보존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한다. 디지털과 웹이 이룩한 모바일 혁명은 우리를 자유롭게도 하는 동시에 우리를 기기와 네트워크에 예속시키기도 한다. SNS와 스마트폰이 정확히 그렇다. 그러나 어떤 것도 나쁘기만 하지 않고 어떤 것도 좋기만 하지도 않다. 우리의 딜레마는 다만 지금이 전환기라는 것. 아날로그이기엔 확실히 늦었고 전자적이기만 하기엔 아직 조금 이르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미래에도 출판은 있고, 미래의 출판은 지금 바로 여기에 파편으로, 잠재성으로 존재한다. 필요한 건 콘텐츠와 네트워크. 미래의 출판을 가능하게 하는 건 바로 지금의 어떤 시도들이다. (출판사 공동 플랫폼▶본문 448쪽 참조; 출판사 경험마케팅▶ 본문 286쪽 참조)
새로운 세계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그 세계는 분명 있다. 우리가 상상을 멈추지 않는 한 그 세계는 마침내 현실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현실화되는 게 잠재성이라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건 가능성이다. … 현실성으로서의 출판이 지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분명한 건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으로 해서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로고스(이성·논리)가 한계에 부닥쳤을 때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뮈토스(신화·이야기)가 필요했던 것처럼, 현실이 한계에 부닥쳤을 때 요구되는 것이 가능성으로서의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가능성일 뿐이지만, 가능성이 잠재성이 되고 그것이 다시 현실성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20세기 이전에는 인간이 달에 착륙한다는 것은 단지 상상일 뿐이었지만, 그 가능성이 각종 기술 발달을 추동하여 잠재성의 형태로 축적되었다가 현실화의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마침내 현실성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본문 80~81쪽)

6.
밤송이를 하나 받아들고, 그것이 인생이라 여기며 쩔쩔매고 있다가 겨우 밤송이를 까고, 진갈색 껍질을 벗기고 속살의 부드러운 감촉을 즐기며, 또 그것이 인생인가 싶었다는 60년생 어느 작가의 고백을 읽은 적이 있다.
언어를 쓰기 때문에 인간은 위대해졌지만, 그만큼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다. 그 불완전함을 채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인간의 삶은 더 충만해진다. 그런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출판이라는 산업은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을 하면서 행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60년생 출판인의 이야기를 우리는 지금 『출판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에서 듣고 있다. 늘 위기이고, 늘 어렵다 말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것이 출판이 성립하는 이유이고 또 그것이 자신을 늘 새로워지게, 행복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이 책은, 출판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과 비판 속에서 마침내 출판 그 자체에 질문을 던진, 출판경력 30년차의 기사가 마케팅의 조상이라고까지 불리는 필립 코틀러의 『마케팅 원리』를 가지고 그만의 답을 찾아간 어떤 모험담이다. 진정 이 척박하고 비관적인 세계에서 새로움을 창안하고 혁신하는 것을 그의 의무로 삼은.
기적 없이도 출판의 혁명은 가능하다. 다만, 생각하고 상상하고 시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는 출판의 ‘비평가’(critic)가 되어야 한다. 촉발된 위기 속에서 비평가의 섬세한 시선은 현실의 표층(종이책, 전자책)을 뚫고 내려가, 출판이 딛고 서있는 토대(근본)를 묻는 지점으로까지 가닿는다. 출판의 비평가는 그 깊고 섬세한 시선으로 출판의 토대 밑을 떠받치고 있는 ‘출판의 힘’을 발견해냄으로써 매번 새로운 토대와 형식을 발명해내는 것을 자기 임무로 하는 존재다.”(본문 454~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