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이펙트
케이트 글래스먼 지음, 세실리아 콘차 파 엮음, 포터헤드 16인 신지현 옮김 | 2016-01-25 | 496쪽 | 16,500원
포터헤드(*해리포터 팬들을 지칭하는 공식용어)가 쓰고 포터헤드가 옮긴 우리 시대의 마법사 이야기. 이 책은 미국 세인트 캐서린 대학교 영문학과 교과 중 하나로 개설된 '해리포터' 수업의 결과물로,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이 해리포터를 신학.종교.역사.의학.사회.심리학 등의 스펙트럼으로 분석해 낸 비평글 모음집이다. 미국의 15인의 포터헤드들이 글을 썼고 국내에서는 번역자 공개모집을 통해 선정된 16인의 포터헤드가 번역을 맡았다. 팬들의, 팬들에 의한, 팬들을 위한 신개념 팬전의 탄생이다.
저·역자 소개 ▼
세인트 캐서린 대학에서 영문학과 여성학을 가르친다. 모더니즘, 미국문학, 페미니즘 이론, 현대 미국 문화에서의 소설 등에 대해 글을 쓰고, 연구하며, 또 가르치기도 한다.
김수연 : 초등학교 4학년, 해리를 처음 만난 이후 바로 포터헤드가 되어 버림은 물론, 뮤지컬, 패러디, 팝 컬처의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첫 걸음을 떼게 되었다. 해리가 어린 나에게 알려준 것은 마법 주문뿐이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존중, 약자에 대한 믿음과 우리의 도덕적 관념에 대한 흑백 논리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연성 권력의 힘이 문화간의 차이를 극복한다고 믿는 지금의 나에게, 해리포터는 꿈의 초석이 되어 주었다.
박나리 : 중고생 시절까지도 올빼미가 호그와트 입학장을 물고 날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수능 준비를 하면서 마침내 그런 헛된 기대를 버렸다. (망했어, 이제는 설령 입학장이 날아온다고 해도 호그와트 입학시험 보는 것보다 수능시험 보는 게 더 쉽겠어라며.) 남들 보기에도 썩 나쁘지 않은 ‘원서 읽는 고등학생’ 콘셉트를 잡고 영어 공부를 하며 해리포터로 의무와 취미를 동시에 만족시켰다. 비록 완벽하게 익히게 된 단어가 ‘빗자루’ ‘마법봉’ ‘두꺼비 눈알’ 따위라고 해도…. 이후 대학과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며 해리포터 불어판을 완독하여 한국어판, 영어판, 불어판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현재 불어 출판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영지 : 큰 작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글을 쓰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지금의 나에게 해리포터는 여전히 희망을 주는 책이다. 조앤 롤링은 가난 속에서 하나의 돌파구처럼 글을 써내려 갔고, 결국 그녀 한 사람의 상상력은 그녀를 구하고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 글을 쓴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녀와 그녀의 책을 생각하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게 된다.
김은혜 롤링과 같은 불문학 전공생. 해리포터를 읽으면서 롤링의 상상력과 유머감각을 닮고 싶었다(지금도 론이 민달팽이를 토하는 마법은 현실세계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해리포터가 처음으로 내게 보여 준 서양의 문화, 전설 속 괴물들과 신화의 여정은 내가 서양문학을 더 공부할 수 있게 한 자극제였음에 틀림없다.
전재연 : 손에 꼽을 수 있는 몇 가지에만 애정을 쏟으며 살고 있다. 문학, 음악, 영화 같은 것에 특히 마음을 두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문학을 전공하며 갈수록 답 없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읽고 쓰는 일에 막막한 삶의 돌파구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러므로 좋은 책을 접할 때면 늘 설렌다. 만약 해리포터처럼 재미까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노서영 : 2005년 『혼혈왕자』가 출간됐을 때, 나는 고3이었다. 내가 문제집을 풀 동안 수시에 붙은 친구들은 『혼혈왕자』를 읽었다. 당장에라도 읽고 싶었지만 참았다. 몇 날 며칠을 그것만 붙잡고 있을 게 분명해서였다. 수능을 치르고 난 뒤 읽기로 하고, 대신 집에 있던 『불사조 기사단』을 조금씩, 계획한 공부 분량을 채웠을 때 상으로 읽었다. 해리포터의 힘으로 무사히 고3을 마친 나는 그해 원서를 냈던 대학 중 가장 좋은 학교의 영문과에 합격했다.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영화 「마법사의 돌」을 돌려보던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해리포터는 내 인생의 중요한 시절을 함께했다. 이제는 어른이 된 해리포터 팬들의 이야기가 한국의 팬들에게도 전해지도록 해리포터의 팬이자 친구로서 도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홍성호 :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한 사람이 만든 이야기지만, 수억 명의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 냈다. 독자들은 해리포터를 읽으며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고, 긴 여행에서 돌아온 뒤엔 옛날과 달라져 있었다. 해리포터의 세계에서 해리의 과감함을, 헤르미온느의 지혜를, 덤블도어의 현명함을, 스네이프의 용기를 배우고 난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해리포터를 읽던 어린 소년이던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앞으로 계속 나이를 먹어 가겠지만, 해리는 나의 어린 시절 꿈과 희망을 가지고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부디 해리가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최수원 : 해리포터 시리즈는 끝났지만, 나는 나와 같은 팬들의 수많은 사랑과 재창조 속에 그 마법 세계가 계속해서 존재할 것임을 믿는다. 대학생이 된 지금도 해리포터는 내게 단순한 소설을 넘어 선과 악에 대한 고찰이며 인생을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원동력이다. 꼭 시간을 돌린 것처럼, 내가 책을 펼 때마다 해리는 11살로, 15살로, 17살로 돌아가며 그때의 ‘나’를 상기시킨다. 이렇게 나와 함께 나이를 먹으며 마음속에 평생 간직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설렘을 만들어 준 책에 감사한다.
김주현 어린 시절의 내게 롤링은 친근하고 현실적이면서도 놀라울 만큼 환상적인 우리 옆 마법 세계를 보여 주었다. 나는 곧 해리포터에 푹 빠져, 내 삶 속에도 마법의 출입구나 신비한 동물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공상하며 기다렸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나타나 주지 않았지만, 해리포터 시리즈와 함께한 15년은 내게 진짜 마법이었다. 위즐리에 웃고 스네이프에 울고. 빨리 다음 내용을 알고 싶다고 원서를 읽다가 영어까지 배웠다. 해리포터에겐 항상 고마운 마음이고, 바다 너머 팬들과 한국의 팬들이 소통하는 데 역자로서 도울 수 있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류소현 : 해리포터 시리즈의 배우들과 나란히 성장한 해리포터 세대이다. 시리즈별로 책을 모아 여러 번 읽고 또 읽다 보니 자연히 해리포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톰 리들의 유년시절이 화목했다면 볼드모트는 탄생하지 않았을까?’ ‘그때 그 캐릭터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게 해리포터는 읽을수록 새로운, 더 폭넓게 읽을 수 있는 마법의 책이다.
신지현 : 전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해리포터. 그 엄청난 열풍에도 불구하고 허무맹랑하고 유치한 동화라는 선입견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았으나, 대학교 기말고사 시험 기간 머리를 식힐 겸 부담 없이 책을 읽다 전공 책보다 해리포터를 더 열광적으로 읽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처럼 해외 직구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 책이 발간되기 몇 달 전부터 아마존에서 선주문을 하고 비싼 국제배송료를 내면서 책을 수입해다 읽었다. 남들보다 먼저 읽었다는 사실에 괜히 뿌듯해하고, 영화도 개봉하자마자 보고 또 보던 옮긴이의 내년 (또는 언젠가) 목표는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서 버터맥주를 맛보는 것.
심상원 : 고등학교 때,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학교가 호그와트와 흡사해 ‘대그와트’로 불리고 3년 내내 입고 다닌 코트가 해리포터 주인공들이 입던 마법사 망토와 비슷했던 점이었다. 대학교 때에는, 해리포터 영화에서 가장 좋아했던 헤르미온느 역의 엠마 왓슨과 동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리엔테이션 때 내 바로 앞줄에 앉아 있던 그 아이를 보면서 ‘굉장히 많이 닮은 아이’인 줄만 알았는데, 내 청소년기를 함께했던 바로 그 ‘헤르미온느’였던 것! 해리포터 시리즈는 단순히 내가 심심할 때 읽는 책이 아니다. 자라는 내내 나와 함께한 영어 선생님이며 상상 속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아주 중요한 존재이다.
김나현 : 해리포터가 보여 준 용기, 정의, 우정, 사랑은 마법 세계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머글 세계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가장 숭고하고 진실한 마법들이다. 그리고 실제로 해리를 통해 배운 그 가치들을 내 삶 속에 녹여 낼 때 그 마법들은 현실을 바꾸는 놀라운 힘을 보여 주었다. 해리포터를 읽던 열한 살 소녀는 어느 새 이십 대 후반이 되었다. 머글의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마법을 사용한다. 현실 앞에 움츠러들 때면 용기의 마법을, 유혹의 순간엔 정의의 마법을, 이기심이 자라날 땐 우정의 마법을, 그리고 모든 아픔과 상처 앞에서는 사랑의 마법을. 옷장 속에 헤르미온느의 지팡이와 해리의 안경을 갖고 있는 나를 누군가는 아직도 꿈에서 못 깬 어린이라고 부를지라도 나는 해리포터의 영원한 팬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이정은 : 나이 열다섯, ‘외고 입시’라는 디멘터에게 쫓기던 나는 ‘해리포터’라는 패트로누스를 만났다. 영화 수백 번 돌려보기, 대사 외우기는 기본. 소설책과 함께 잠들고 함께
K. 애덤스(K. Adams)를 멘토와 슈퍼바이저로 삼아 NAPT에서 공인문학치료사와 공인저널치료사 과정을 공부하였고, 애덤스의 ‘저널치료 짋’ 기법을 교육할 수 있는 공인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2007년에는 공인문학치료사(CAPF)와 공인저널치료사(CJF)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NAPT에서 Seeds of Joy Award를 수상하였으며, 문학치료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사회공헌대상(사사투데이) 등을 수상하였다.
프리랜서 영어 번역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SC은행과 삼정회계법인에서 근무했다. 현재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과 동 대학 EICC 객원교수로 있으며, 『작가의 시작』, 『유도라 웰티의 소설작법』, 『남아 있는 날들의 글쓰기』, 『스스로의 회고록』, 『카테고리 킹』, 『회계는 필요 없다』, 『세계 석학들이 내다본 코로나 경제 전쟁』 (공역) 등의 책을 한국어로 옮겼다. 다른 사람의 글을 옮기는 일 말고 나의 목소리를 담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VACAY 캘리포니아 편에 에디터로 합류했다.
차례 ▼
서문
감사의 말
들어가며
나의 해리포터 이야기
1부 _ 머글 연구
1장. 해리포터 현상
2장. 정전을 장전하기
3장. 해리포터의 가상 세계
4장. 마법사, 머글, 그리고 타자
5장. 해리포터 세대
나의 해리포터 이야기
2부 _ 어둠의 마법 방어술
6장. 새로운 세계의 창조
7장. 죽음을 정복하는 것이란
8장. 가장 사악한 마법
9장. WWHPD
10장. 덤블도어 의심하기
나의 해리포터 이야기
3부 _ 변신술
11장. 해리포터와 마법 유전자
12장. 마법과 심리학
13장. 톰 리들을 위한 간호계획
14장. 문학의 숫자점
15장. ‘특별한 삼총사’의 성적인 기하학
부록1 _ 해리포터 수업계획서
부록2 _ 한국 포터헤드의 이야기
후기 _저자들의 대화
후주 | 참고문헌 | 옮긴이 소개
편집자 추천글 ▼
아이들은 사랑한다,
아이들은 가르친다
- 이것이 해리포터 효과다
“모든 새로운 세대가 앞선 세대를 필요로 하지 않고, 앞선 세대들을 믿지 않고, 그들의 가치를 믿지 않고, 자기들 스스로 그 세대를 다시 발견한다는 일종의 법칙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로맹 가리, 1980년 인터뷰 중에서
어디에서부터 망가졌는지 모르는 이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비판하는 것. 그것은 젊은이들의 의무가 아니다. 자신들의 젊음을 발견하고, 자신들만의 가치를 찾고, 스스로가 속한 세대를 발견하는 것— 젊은이들이 할 일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받기에 젊음은 좀 억울하다. 이미 주어진 이렇다 할 공동의 가치도, 신념체계도 없는 이 젊은 세대는 잉여나 포기라는 말로 수식되기보다는 오히려, 그 가치체계의 공백을 발명과 창조로 채워나갈 전혀 새로운 사람들인 것을. 좋아하는 것들을 신중히 선택해나가는 그 새로운 사람들은,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된다(「저자들의 대화」, 471쪽 참조). 해리포터를 읽고 자라 이제 대학생이 된 해리포터 세대, 그들은 한편으로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입학장을 물고 올 부엉이를 기다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사랑하는 것-해리포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바로, 연구하고 이야기하고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다. 이 책 『해리포터 이펙트』는 미국 세인트 캐서린 대학교 영문학과 교과 중 하나로 개설된 ‘해리포터’ 수업의 결과물로,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이 해리포터를 신학.종교.역사.의학.사회.심리학 등의 스펙트럼으로 분석해 낸 비평글 모음집이다. 미국의 15인의 포터헤드[*해리포터 팬들을 지칭하는 공식용어]들이 글을 썼고 국내에서는 번역자 공개모집을 통해 선정된 16인의 포터헤드가 번역을 맡았다. 팬들의, 팬들에 의한, 팬들을 위한 신개념 팬전의 탄생이다.
고시원과 마법 세계, 진짜는 무엇인가
장면#1
남자가 웅크리고 있다. 20대의 취준생인 이 남자는, 고시원 쪽방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변변한 살림은커녕 화장실조차 딸려 있지 않은 조그만 방. 미래를 꿈꾸며 바늘귀 같은 취업관문을 통과하려 애쓰는, 많은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삶의 조건. 몇 해 동안 내내 뉴스와 신문에 기사화되는 한국 젊은 세대의 모습이다. 가난과 패배주의는 20대의 또 다른 이름이라도 된 듯, 어른 세대들은 마치 질 나쁜 농담 같아 보이는 젊은이들의 삶을 잉여, 혹은 3포나 7포라는 말로 규정한다.
장면#2
복도를 가로지르며 소리를 지른다. “말도 안 돼! 케드릭이 죽다니!” 그러자 다른 한쪽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누군가 묻는다. “어, 해리포터? 너 지금 몇 페이지 읽어?” -즉각적으로 네트워크가 생기고, 친구가 생긴다. 또는, 해리포터 오디오북을 듣던 엄마가 딸에게 전화를 걸어 “도비가 지금 막 죽었어”라며 울음을 터뜨린다. -이야기의 공간, 대화의 공간은 이렇게 열린다(459~460쪽).
장면을 넘어서
누구의 삶이라도 그렇듯, 젊은 세대의 삶 역시 고시원과 신조어 몇 개로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다. 이놈의 세상, 도무지 안 되는 게 많고 할 수 없는 것도 많지만, 그러나 좋아하고 잘하는 것도 많다. 취업을 준비 중인 20대, 이력서에는 쓸 수 없는 것들-위키피디아 해리포터 항목을 편집하고, 해리포터가 좋아서 영상자막을 만들고, 해리포터 한국판/영어판/불어판을 다 읽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이 사실은 그들을 설명해 주는 것들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무언가에 대한 사랑(덕력)은 불가능한 일들을 현실로 만든다. 마법은 책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닌 말로, 해리포터의 마법이 아니라면 cat의 철자도 쓰지 못하던 학생이 주한외국공관에 일을 할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추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이윤정, 「한국 포터헤드의 이야기: 세상을 향한 창을 열어 준 해리포터」, 433쪽).
아이들은 자라고, 아이들은 사랑한다.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는 법을 자기들 나름으로 익혀 가며 그들은 세계와 관계 맺는다. 마법을 믿는 한, 진짜가 아닌 것은 없다. 의심하는 해리에게 덤블도어 교장은 말했다. “물론 이것은 네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란다, 해리.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대체 왜 그게 현실이 아니란 말이냐?”
해리포터 효과:저자가 되거나 주인이 되거나
읽기와 쓰기의 마법
해리포터는 단순한 문학작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시리즈 1권~3권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 1위에서 3위를 차지하는 일이 79주간 지속되자, 시리즈의 다음 권 4권이 나오기 전 뉴욕타임스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해리포터용[아동도서] 항목’을 별도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다른 책들도 순위에 진입할 수 있게 하는 것(1장 「해리포터 현상」, 52쪽). 이 항목 지정에 대한 논란은 논외로 하고, 이 자체만으로 해리포터가 사회에 특정 ‘효과’를 미치고 있었음이 명백하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 외에도 해리포터와 조앤 K. 롤링이 만들어 낸 효과는 다름 아닌, 아이들을 읽고 쓰게 만들었다는 것. 물론 그 전에도 아이들은 책을 읽었다. 하지만 해리포터를 읽는 것 같은 식은 아니었다. 미국 십대 90% 이상이 커서 “저자가 되고 싶다”는 조사결과를 온전히 해리포터 덕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해리포터가 독자를 저자로 만든 그 기여도는 해리포터 다음 권을 기다리는 몇 년 동안 팬들이 해리포터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들이 직접 쓰는 것뿐이었다(466쪽)는 팬들의 고백을 참조하더라도 유추가 가능하다.
방대한 양과 종류의 팬픽션은 독자를 문학의 세계로 초대한 셈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수업까지 가능하게 했다. 세실리아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학생들로부터, 팬들로부터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럴 때, “진짜 마법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이 우리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으로부터.”(39쪽)
주인이 되는 아이들
팬픽, 렉시콘(어휘집) 등을 통해 아이들은 인물의 삶을 상상하고 공백을 채우고 세계를 만들어 나가면서 다른 차원의 읽기와 쓰기를 경험한다. 이입을 하고 상상을 하고 구조를 만들며 자기 게임의 주인이 된다.
“롤링은 그간 아동 문학에 등장했던 사회.정치.역사적 맥락에 조종당하는 수동적 주인공 캐릭터 대신 해리와 그의 친구들, 나아가 독자들에게 ‘주체성’을 부여했다. 작가는 교육학 박사인 헨리 지루가 “세상을 다르게 상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 힘을 해리에게 부여하고 이를 어린 독자들에게도 선사한다. 드루 채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롤링의 소설은 아이들이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문화, 어린이들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그들의 삶을 구성하는 관계와 제도의 네트워크를 깨닫게 되는 문화를 그린다”라고 말한다. … 마법 세계의 어른들이 누군가를 향한 충성심에 마비.세뇌되었거나 제도의 노예가 되어 있을 때에도 해리와 친구들은 제도 밖에 선 채 마법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편하는 상상을 할 수 있다. 해리포터의 아동.청소년 독자들은 주인공 캐릭터를 통해 ‘주체적 삶’이란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어린 독자들에게 그들 자신이 가진 힘을 억누르도록 강제하는 사회적 구조에 무조건 순응하지 않고 맞설 수 있도록 주체성과 자립심이라는 값진 씨앗을 심었다.” (트레자 로사도, 「해리포터 세대」, 122~123쪽)
해리포터 속에는 100% 선도, 100% 악도 없다. 많은 것들이 회색지대에 있고, 많은 것들이 모호하다. 독자는 개인의 가치기준에 따라 상황과 인물을 판단한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의심의 대상이 된다(10장 「덤블도어 의심하기」). 최고의 악당이 누군가에게는 치료하고 보살펴 주고 싶은 어린이로 보인다(13장 「톰 리들을 위한 간호계획」). 이렇듯 여러 가지 읽기가 가능한 것은 좋은 작품이 공통으로 갖는 특성이다. 조앤 롤링이 독자를 위해 열어 둔 열린 공간, 다양한 독법이 가능한 이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경험하고 어른이 되었다.
TV 포장 박스 속에 들어가 하루종일 해리포터를 읽던 꼬마가 대학에 가서 해리포터에 대해 글을 쓰고 수업을 하기까지 한다. 문학의 세계를 경험한 그 아이는 문학잡지를 만들기까지 한다. —아이들이 자라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 모두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해리포터 효과이다.
사랑의 발명: 덕밍아웃과 덕업일치
스스로를 ‘오덕’이라 일컫는 게 취향과 능력에 대한 증명이 되는 시대다. 또한 오덕(너드)이란,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하느냐의 문제다. 해리포터를 너무 사랑한 포터헤드들의 집필과 번역과 편집으로 탄생한, 덕밍아웃의 결과물인 이 책은 해리포터에 대한 학술적 접근뿐만 아니라 ‘해리포터를 처음 만난 순간’ ‘내가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이유’…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가득하다. 대상을 사랑하는 방식을 통해 덕을 증명한 그들. 해리포터의 팬들은 아직도 주문을 외우고, 호그와트 입학장을 기다리고, 9와 3/4 승강장을 찾는다. 일상에서 마법을 기다리고, 사랑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 덕업일치를 소망하면서 하루하루 더 나은, 더 좋은 사람이 된다. 해리포터 영화에서 스네이프 교수 역을 맡았던 배우 앨런 릭먼의 사망 소식 후 해리포터 팬들은 9와 3/4 승강장을 그를 기리는 곳으로 만들었다. 사랑을, 사랑의 방법을 지금도 발명해 내고 있는 이 팬들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멈춘 적이 없다.
무언가를 진짜로 좋아하는 것은, 그걸 제대로 읽어 낸 이후에 비로소 가능하다. 해리포터를 읽어 내고 그에 열광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이제 스스로의 삶을 읽어내고, 그 이후에 우리의 삶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잉여나 포기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사랑을 발명해 내는 젊은 세대를, 자신들의 세대에서 마법을 만들어 낼 그들을 우리는 기다린다. 우리 세대의 마법사는 해리포터이기도 하지만, 바로 우리 자신이기도 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