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대도덕학  

그린비 고전의 숲 1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재홍, 장미성 옮김 | 2024-09-24 | 304쪽 | 25,000원


『대도덕학』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인간적인 좋음’이며, 이 책은 공동체를 위한 ‘정치적 좋음’을 탐구하고 있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논의에서 영원하고 신적인 좋음은 배제되며, 인간의 좋음인 덕의 활동과 사용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외적 좋음’ 역시 덕의 좋은 활동을 위한 가능성으로서 설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래도 좋음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고, 더구나 그것은 무조건적인 좋음이 아니라 우리에게서의 좋음이다. 신들의 좋음에 대해서는 아니니까”(『대도덕학』 1182b3-4). 관조와 같은 지적인 덕으로서의 행복, 그리고 행복을 지적인 덕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신적인 좋음’에 관해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경험 세계에 사는 우리 대중들에게는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또한 공동체를 위한 우리 모두의 목표는 덕에 맞게 행하는 활동이므로 『대도덕학』에서는 덕의 활동을 도울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외적 좋음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대도덕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음에 관한 여러 분석을 통해 최고의 좋음인 행복이 있다는 점을 긍정한 다음, 그 행복은 여러 좋음들의 구성들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즉 덕의 활동을 위한 가능성으로서 필요한 외적 좋음은 상식의 차원에 있는 것이며, 또 우리 경험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대도덕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행복론의 핵심은 혼의 좋음(덕)과, 신체의 좋음(건강, 외모 등), 그리고 외적 좋음인 재물이나 권력, 가문 등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이는 인간적인 좋음인 동시에 경제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즉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국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목표를 통해 성취된다는 점에 있다. 



저·역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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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BC 384년 그리스 북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국가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났다. BC 367년, 17세 때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 아테네로 건너와 플라톤 문하에 들어간다. 20년 동안, 이른바 ‘제1차 아테네 체류 시기’에 그는 오늘날 우리가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문제들을 익혀 나갔다.
BC 347년 플라톤이 세상을 뜨자 플라톤의 조카이자 상속인이었던 스페우시포스가 아카데미의 수장이 된다. 그러자 아리스토텔레스는 37세의 나이로 아테네를 떠난다. 이후 12년 동안의 ‘편력 시기’를 그는 아카데미에서 동문수학하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지냈다. 그가 맨 처음 찾아갔던 사람은 소아시아 아소스의 군주였던 헤르미아스였다. 그의 환대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과 학문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BC 345년 헤르미아스가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레스보스섬의 미틸레네로 옮겨 간다. 2년 뒤 그는 필리포스 왕의 부름을 받아 당시 13세이던 알렉산드로스에게 가르침을 베푼다. 마케도니아에 대한 아테네의 저항운동이 테베의 함락(BC 335년)으로 무산된 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야 학창 시절의 아테네로 돌아온다. 그의 ‘제2차 아테네 체류 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 12년 동안 리케이온에서 일한다.
BC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 아테네를 떠난다. 그는 일찍이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독배를 들게 만들었던, 신을 믿지 않는다는 혐의로 고발되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테네 사람들이 철학에 대해 두 번씩이나 죄를 짓지 않게 하겠다.” 소크라테스의 운명을 넌지시 내비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머니의 고택이 있는 에우보이아섬의 칼키스로 낙향한다. 그 얼마 후, BC 322년 10월 이름 모를 병을 앓다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내 피티아스 옆에 안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역자  김재홍
숭실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고전철학을 전공하고, 1994년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방법론에서의 변증술의 역할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캐나다 토론토대 ‘고중세철학 합동 프로그램’에서 철학 연구(Post-Doc). 가톨릭대 인간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임. 가톨릭관동대 연구교수를 거쳐 전남대 사회통합지원센터 부센터장을 지냈으며,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이다.

역자 장미성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플라톤 존재론 연구로 석사학위, 뉴욕주립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숭실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 희랍어·라틴어 고전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정암학당 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 Aristotle on Emotions in Law and Politics(공저), 역서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 논문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론」 등. 
차례 ▼

옮긴이의 말 5
일러두기 7

『대도덕학』은 어떤 책인가? 15
1. ‘책의 제목’에 대하여—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적 작품들 15
2. 윤리학 책들의 저작 순서 18
3. 이 책의 논의 구조상의 특징 20
(1) 문체상의 특징 21
(2) 내용상의 특징 25
4. 작품의 진위 문제와 관련해서 29

외적 좋음과 행복에 관하여 39
1. 행복이란 무엇인가? 39
2.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에우데모스 윤리학』에서 전개된 행복론 46
3. 『대도덕학』에서 설명되는 행복과 외적 좋음 54
4. 『대도덕학』이 남겨 준 윤리적 유산 73

제1권 77
I. 좋음의 규정 79
제1장 덕에 관한 선행 철학자들의 견해, 검토, 정치학과 좋음의 규정 79
제2장 좋음의 구분 (1)— 최고선과 행복 90
제3장 좋음의 구분 (2)— 최고선과 행복 95

II. 행복과 덕 98
제4장 행복과 덕 있는 삶 — 혼의 여러 부분 (1) 98
제5장 덕의 정의—혼의 여러 부분 (2) 102
제6장 성격에 관련된 덕과 쾌락, 습관화 106
제7장 성향, 감정, 능력, 성향과 중간임(중용) 107
제8장 감정과 중간임 108
제9장 모자람과 지나침, 덕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가? 109

III. 행위를 둘러싼 여러 요소 114
제10장 시원(원리), 덕은 자발적인가? 114
제11장 행위의 시원 115
제12장 자발성에 대하여 (1)—자발성의 본질, 욕망과 자발성 117
제13장 자발성에 대하여 (2)—바람, 자발성과 비자발성 118
제14장 자발성에 대하여 (3)—힘에 의한 강요와 강제에 대하여 (1) 120
제15장 자발성에 대하여 (4)—힘에 의한 강요와 강제에 대하여 (2) 121
제16장 자발성에 대하여 (5)—자발성과 사고 122
제17장 선택에 대하여 123
제18장 덕의 목적, 선택과 덕, 중간임과 목적 128
제19장 목적 131

IV. 성격과 관련된 여러 가지 덕 133
제20장 용기에 대하여 133
제21장 절제에 대하여 138
제22장 온화에 대하여 140
제23장 자유인다움의 후한 마음에 대하여 (1) 141
제24장 자유인다움의 후한 마음에 대하여 (2) 142
제25장 고매(원대한 마음)에 대하여 143
제26장 통 큼에 대하여 144
제27장 의분에 대하여 146
제28장 존엄에 대하여 147
제29장 궁리에 대하여 148
제30장 재치에 대하여 149
제31장 친애에 대하여 150
제32장 진실에 대하여 150
제33장 정의에 대하여 151

V. 지성에 관한 덕 171
제34장 사려와 혼, 사려와 이성, 사려와 지혜, 사려와 동기 부여, 사려와 행위 171

제2권 185
제1장 공평에 대하여 187
제2장 양식에 대하여 188
제3장 덕과 사려, 정의와 사려, 부정의한 행위와 자발성 189

VI. 자제력과 자제력 없음 196
제4장 자제력과 자제력 없음에 대하여 (1) 196
제5장 자제력과 자제력 없음에 대하여 (2) 197
제6장 자제력과 자제력 없음에 대하여 (3) 198

VII. 쾌락 220
제7장 쾌락에 대하여— 쾌락의 본질, 쾌락의 좋음과
최선에 관련된 논의에 대한 답변 220

VIII. 행복 235
제8장 행운에 대하여 235

IX. 덕의 완성 241
제9장 ‘지극히 훌륭하고 좋음’에 대하여, 완전한 덕 241

X. 올바른 이치 243
제10장 올바른 이치에 근거한 행위 243

XI. 친애 246
제11장 친애에 대하여 (1)—친애의 본질,
동등한 자와 동동하지 않은 자들에서의 친애, 친애의 세 가지 종류 246
제12장 친애에 대하여 (2)—호의, 마음의 일치(‘한마음’), 친애 263
제13장 친애에 대하여 (3)—자기애 (1) 267
제14장  친애에 대하여 (4)—자기애 (2) 269
제15장 친애에 대하여 (5)—자족과 친애 270
제16장 친애에 대하여 (6)—친구의 숫자 273
제17장 친애에 대하여 (7)—친애와 비난 274

참고문헌 277
찾아보기 285 


편집자 추천글 ▼

객관적 덕에서 비롯된 ‘최고선’이야말로
개인과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핵심인 ‘행복론’은 철학뿐 아니라 심리학, 정신의학, 신경의학 등 인간의 심리적 문제 치유(terapia) 영역에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오늘날의 행복은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하다’는 긍정적 자신감과 주관적 만족으로 대체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주관적 감정이 아닌 객관적인 덕과 관련이 있으며, 일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완전한 삶이자 최고선이다.

행복과 좋은 삶의 추구,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3부작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에 관한 중요한 저작으로 세 작품을 남겼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포함해서 『에우데모스 윤리학』과 『대도덕학』이 그것이다. 이 세 작품은 『정치학』과 더불어 실천철학적 작품에 속한다. 윤리학의 주된 관심은 인간의 ‘행복’(잘 삶/성공, eudaimonia)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따라 덕(아레테)을 잘 사는 삶(eu prattein)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좋은 삶을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하지만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좋음’을 파악하기 위해 학문적 훈련이나 형이상학적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잘 살기’ 위해서는 친애(philia), 쾌락, 명예, 부와 같은 ‘좋음’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윤리학을 공부해야만 하는 것이다.

‘개별적 좋음들’은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다. 개별적 상황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적절한 교육과 습관을 들임으로써 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개별적 상황 속에서 특정한 행위를 잘 선택하는 것은 이성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히 일반적 행위 규칙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개별적 경우에 우리의 행위를 선택하게 해주는 실천적 지혜인 프로네시스(phronesis)를 획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행위, 숙고, 감정, 사회적 관계를 아우르는 기술(technē)을 통해 개별적 상황에 적합한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잘 삶’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

『대도덕학』에서 ‘대’(magna)가 의미하는 것은?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어째서 ‘동일한 내용을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는 거의 같은 주제의 윤리학 관련 작품을 3종이나 남겼을까? 현존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전집』(Corpus Aristotelicum)에는 윤리학적 저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에우데모스 윤리학』 이외에 진작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대도덕학』과 짤막한 작품인 『덕과 악덕에 대하여』가 있는데, 마지막 작품은 위서(僞書)로 간주되고 있다. 『대도덕학』은 그중에서 물리적 규모로 따지면 세 번째 크기를 가지며, 전통적으로 『대윤리학』 혹은 『대도덕학』(Ēthika megala, Magna moralia)으로 불려 왔다.

『대도덕학』이라는 제목은 독특하다. ‘대’(magna)라는 말을 덧붙여 불렀기 때문이다. 『대도덕학』을 구성하는 두 권 전체가 포괄하는 영역은 『에우데모스 윤리학』을 구성하는 전체 여덟 권이 포괄하는 영역과 맞먹는다. 제2권이 도중에서 중단된 채로 전해지지만, 『대도덕학』 제1권이 다루는 주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제1권부터 제6권까지 다루고 있는 주제를 두루 포괄한다. 그 결과 이 책의 ‘각 권’(biblia, 두루마리)은 다른 윤리학 저서의 ‘각 권’보다 큰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처럼 『대도덕학』을 구성하는 한 권이 다루는 영역이 다른 윤리학 서적 한 권이 다루는 영역보다 크기 때문에, ‘크다’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에우데모스 윤리학』의 제목 속 ‘니코마코스’와 ‘에우데모스’는 저자라기보다는 편집자거나 작품을 헌정 받은 사람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대’(大)는 ‘나이가 많은’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니코마코스의’라는 형용사를 가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서적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인데, 『대도덕학』과 구별하기 위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小 니코마코스 윤리학』으로도 부른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인 ‘니코마코스’에게 헌정되거나 그를 교육하기 위한 책이며, 『대도덕학』은 ‘大 니코마코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 ‘니코마코스’에게 헌정된 윤리학 책이라는 것이다.

『대도덕학』의 논술에는 유감스럽게도 논지의 불분명함과 불철저함, 논리 전개의 서투름, 서술 방식에서 명료함의 결여가 있다. 이 책의 논리적 전개 부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에 쓴 윤리학이라는 책의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이외의 누군가에 의해 쓰였다고 하는 책의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저작 중
『대도덕학』만이 이전 철학자들을 철학사적으로 개관!

『대도덕학』이 다른 두 윤리학 저작과 다른 철학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중심된 주제는 ‘덕(aretē) 이론’ 및 ‘좋은 것’(agathon)들에 대한 고찰이다.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중심 개념인 행복 논의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차지하고 있는 행복 개념만큼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행복이 ‘외적인 좋음’(명예, 건강, 부 등)에 의존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는 이 책이 다른 윤리학 저작보다 행복을 위한 ‘외적 좋음’과 ‘운’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연구 영역에서 그 이전의 사람들이 해당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endoxa(통념)의 형식으로 살피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을 비판한다(『니코마코스 윤리학』 제7권 제1장, 『에우데모스 윤리학』 제7권 제2장). 그렇지만 윤리학 저작 중에서 이전의 철학자들에 대한 ‘철학사적’ 개관은 오직 이 책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른 두 윤리학에서는 그러한 역사적 개관을 찾아볼 수 없다. 또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에우데모스 윤리학』에서는 플라톤의 ‘혼의 삼분설’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으나, 이 책은 덕 이론의 토대가 되는 방법이 아니라 혼의 영양 섭취 기능이 윤리학과 무관하다는 맥락에서 혼의 삼분설을 언급하고 있다(제1권 제4장 1185a21 참조).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덕의 구성요소로서 행위와 감정의 양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이 책의 덕 이론에서는 감정의 측면이 강조되고 있으며, 덕은 감정의 ‘중간임’(중용)으로 파악되고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볼 수 있는, 행위와 감정에 수반하는 즐거움과 고통도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또 이 책에서는 감정(파토스)이 칭찬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우리는 감정에 따라서 칭찬받지도, 비난받지도 않는다”라고 분명히 밝힌다. 이 책에서는 감정이 직접적 가치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산술적 비례에 따른 시정적(diorthōtikon) 정의(『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 제4장 1131b25-1132b20)에 대한 논의가 나오지 않는다. 또한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2권 제1장에서 언급되는 ‘지성적 덕’(dianoētikē aretē)에 대한 논의도 찾아볼 수 없다. 지성적 덕에 관련해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기술(테크네)과 지식(에피스테메)을 구별하고 있으나 이 책에서는 양자가 구별 없이 사용된다. 특히 『대도덕학』은 ‘자제력 없음’(아크라시아)을 다루는 논의 방법이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기본적으로 다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악한 사람과 자제력 없는 사람이 명확하게 구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주제인 행복은 잘 살고 잘 행동하는 것이며, 이는 덕에 의해 결정된다. 소크라테스에게서 덕은 지적인 덕에만 한정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덕을 지적인 덕과 성격적 덕으로 나눠서 설명하면서, 지적인 덕을 성격적 덕의 활동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 『에우데모스 윤리학』에서는 행복은 지적인 덕과 성격적 덕의 활동이 결합할 때 가능하다고 설명된다. 그리고 『대도덕학』에서는 지적인 덕에 관한 설명을 성격적 덕의 설명에다 포함시켜 하나의 덕, 즉 성격적 덕의 활동만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과 공동체가 행복할 수 있는
아리스토렐레스 행복론의 정수

『대도덕학』의 주제가 ‘인간적인 좋음’을 다루고 공동체를 위한 ‘정치적 좋음’을 탐구하는 것이기에, 행복에 대한 논의에서 영원하고 신적인 좋음은 배제되며, 인간의 좋음인 덕의 활동과 사용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외적 좋음’ 역시 덕의 좋은 활동을 위한 가능성으로서 설명되고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외적 좋음과 행복을 구분하기 위해, 여러 다양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도덕학』에서는 외적 좋음의 가능성으로서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0권에서는 쾌락과 행복을 구분하기 위해 애썼다면, 『에우데모스 윤리학』과 『대도덕학』에서는 행복이 최고의 아름다운 쾌락과 동일한 것으로 기술된다. 이는 『대도덕학』이 『에우데모스 윤리학』과 노선을 같이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며, 특별히 지적인 덕을 생략했다는 사실은 공동체를 위한 ‘대중들에게 행복을 설명하기 위해 계산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점이야말로 오히려 플라톤의 색깔을 지우고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대도덕학』은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래도 좋음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고, 더구나 그것은 무조건적인 좋음이 아니라 우리에게서의 좋음이다. 신들의 좋음에 대해서는 아니니까”(『대도덕학』 1182b3-4)라고 말한다. 관조와 같은 지적인 덕으로서의 행복, 그리고 행복을 지적인 덕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신적인 좋음’에 관해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경험 세계에 사는 우리 대중들에게는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또한 공동체를 위한 우리 모두의 목표는 덕에 맞게 행하는 활동이므로 『대도덕학』에서는 덕의 활동을 도울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외적 좋음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대도덕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음에 관한 여러 분석을 통해 최고의 좋음인 행복이 있다는 점을 긍정한 다음, 그 행복은 여러 좋음들의 구성들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즉 덕의 활동을 위한 가능성으로서 필요한 외적 좋음은 상식의 차원에 있는 것이며, 또 우리 경험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도덕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행복론의 핵심은 혼의 좋음(덕)과 신체의 좋음(건강, 외모 등), 그리고 외적 좋음인 재물이나 권력, 가문 등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이는 인간적인 좋음인 동시에 경제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즉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국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목표를 통해 성취된다는 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