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혜련 지음 | 2024-10-04 | 424쪽 | 25,000원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전염병과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 등으로 급변하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매체와 인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은 정보 제공을 넘어 지식 생산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예술 영역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매체의 개념과 철학에 대한 사유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이 책은 ‘혼종화된 철학’으로서의 21세기 매체철학을 통해 매체, 공간, 인간, 예술 간의 복합적 관계를 탐구하고, 비판적 매체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술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저·역자소개 ▼
차례 ▼
머리말 5
들어가는 글: 디지털에서 포스트 디지털로 17
1. 왜 ‘21세기 매체철학’인가? 17
2. 왜 ‘포스트 디지털’인가? 20
3. 포스트 디지털 매체의 특징은 무엇인가? 26
4. 어떻게 포스트 디지털 매체 시대에 혼종화를 다룰 것인가? 30
I. 매체와 공간 41
1장. 매체-공간적 전회 43
1. 다양한 문화적 전회들 43
2. 매체적 전회 49
3. 공간적 전회 57
4. 매체적 전회와 공간적 전회의 만남 61
2장. 현실 공간의 혼종화 67
1. 혼종화된 도시의 등장 67
2. 다공적 도시 72
3. 확장된 도시 81
4. 혼종화된 도시에서의 산책자 87
3장. 매체 공간의 혼종화 93
1. 환영 공간에 대한 오래된 꿈 93
2. 매체적 환영 공간 97
3. 장소가 된 매체 공간 110
4. 혼종화된 매체 공간에서의 산책자 117
4장. 혼합현실과 헤테로토피아 123
1. 또 다른 현실 공간 1232. 현실 공간에서의 헤테로토피아 126
3. 매체적 헤테로토피아 134
4. 디지털 헤테로토피아에서의 디지털 페르소나 142
II. 매체와 인간 149
1장. 혼종화된 주체 151
1. 기술적 키메라의 등장 151
2. 혼종화된 몸 156
3. 디지털 자아의 혼종된 정체성 166
4. 휴먼에서 포스트 휴먼으로 176
2장. 원격현전 시대에서의 소통과 관계 맺기 181
1. 호모 커뮤니쿠스(homo communicus)의 운명 181
2. 소통 형식과 정보 전달 186
3. 원격현전 공간에서의 소통 191
4. 접속과 접촉 사이에서 201
3장. 지각의 매체화와 탈매체화 207
1. 지각의 재평가 207
2. 장치의 발전과 지각의 변화 213
3. 매체에 의한 지각의 확장과 축소 222
4. 지각의 탈매체화 230
4장. 탈문자적 사유와 간헐적 사유 239
1. 매체와 사유 방식의 변화 239
2. 기록 매체와 담론 체계 244
3. 이미지로 사유하기 255
4. 간헐적 사유 262
III. 매체와 예술 267
1장. 매체와 이미지 269
1. 새로운 매체와 이미지 생산 269
2. 이미지의 기술적 재생산 276
3. 이미지의 디지털적 변형 282
4. 이미지 존재 방식의 혼종화 290
2장. 매체 예술과 장소성 295
1. 탈장소화 또는 장소 특정적 295
2. 매체 예술과 장소 302
3. 디지털 매체 공간에서 미술관으로 308
4. 특정 장소에 설치된 매체 예술 315
3장. 매체 예술과 수행성 321
1. 디지털 매체 기술과 퍼포먼스의 만남 321
2. 매체성과 수행성 328
3. 신체적 현전과 매체적 현전 335
4. 공간에서의 현전과 분위기 지각 343
4장. 매체 예술의 수용 방식 353
1. 관조에서 관여로 353
2. 행위를 통한 상호작용 360
3. 장치 작동에 의한 상호작용 368
4. 감성적 주체의 지각 작용 379
맺음말 389
참고문헌 396
편집자 추천글 ▼
“매체의 확장은
곧 인간의 확장이다”
매체와 인간의 공통된 운명을
읽어 내는 사유의 모험
변화의 소용돌이,
인공지능과의 공진화 시대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을 경험했다. 매체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변화는 매우 극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변이와 연속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한쪽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인간을 대신해 거의 모든 자리에 등장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메타버스’가 등장했고 이 새로운 공간에 대한 논의는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윽고 인공지능, 챗GPT가 곧바로 논의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과거 디지털 매체가 그러했듯이, 인공지능이 모든 분야의 논제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물론 철학도 예외는 아니다. 그 이전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인문학적 담론들은 다수 존재했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인공지능과의 공진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인공지능이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넘어, ‘지식’을 생산하고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고 여겨졌던 예술 영역에서마저 이미 인공지능의 활약이 눈부시다.
이런 상태라면, 앞으로 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한 세기를 묶어서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질지 모른다. 매체를 둘러싼 상황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매체가 ‘새로운 매체’로 논의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벌써 ‘포스트 디지털’에 대한 논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매체는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새로운 매체’에서 ‘오래된’ 또는 ‘낡은’ 매체가 된다. 그러나 매체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낡은 매체가 되었다고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지금은 새로움과 낡음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둘이 밀접하게 혼종화되고 있다. 낡음은 새로움의 내용이 되기도 하고, 또 새로운 매체의 주된 형식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왜 지금 매체철학이 필요한가?
그런데 혼종화되는 것은 매체만이 아니다. 매체를 중심으로 공간, 인간 그리고 예술 등등 모든 것들이 혼종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21세기 포스트 디지털 매체 시대의 특징은 바로 이러한 혼종화에 있다. 혼종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체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혼종화 현상의 중심에는 매체가 있고, 또 매체도 계속 혼종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매체와 새로운 매체가 서로 혼종화되듯이, 매체철학 또한 혼종화된다. 즉 과거 매체에 대한 사유는 지금의 첨단 매체에 대한 사유에도 적용된다. 물론 매체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사유 틀은 지금의 매체적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공지능은 또 다른 매체다. 본래 인간도 매체였다. 그리고 이제 인간은 매체의 매체가 되었다. 매체적 관점에서 이 둘을 다루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이전의 매체와 인간 그리고 인공물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다. 결국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매체에 대한 사유가 필요할 때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21세기의 초반인 지금, 다소 성급히 21세기 매체철학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1세기의 끝에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 있을지, 인간이 온전히 존재해 있을지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연 ‘철학’이라는 학문조차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또는 ‘철학함’이라는 행위가 여전히 가능할까? 철학이 소멸되거나 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철학함’이 진행되지는 않을까?
이러한 판단이 전혀 근거 없는 우려는 아닐 것이다. 기본적으로 ‘철학’은 ‘철학함’이라는 행위를 의미하며, ‘철학함’의 기본은 생각하기이다. 그런데 생각하는 행위는 지금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다. 매체가 변하면, 인간의 존재 방식, 사유 방식 그리고 문화예술을 표현하는 방식 모두 변화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매체를 넘어 인공지능을 둘러싼 담론이 대세가 되었지만, 앞으로 또 어떤 매체가 등장할지 전혀 예측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이에 대해 어떻게 사유할지 또한 전혀 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사유’라는 행위도 사라질지도 모른다. 인간도 포스트 휴먼 또는 트랜스 휴먼으로 진화되고 있는 지금, 인간의 사유 방식도 함께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미 사유의 기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억’이 ‘기록’으로 대체된 지 오래되었으며, 경험과 정보와 지식을 기록하던 뇌의 기능이 축소된 지도 오래되었다. 각종 기록 장치가 인간의 뇌를 대신하게 되면서, 뇌는 신체와 분리되어, ‘외재화된 뇌’가 되고 있다. 21세기가 끝날 무렵 상황이 어떻게 변화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 전에 일단 ‘21세기 매체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에 대해 정리하고 이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인간의 황혼기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21세기의 매체철학은 ‘혼종화된 철학’이다
이 책에서 시도한 ‘21세기 매체철학’은 일종의 ‘혼종화된 철학’이다. 저자는 전통적 의미의 철학으로서 매체에 대한 개념적 작업에 몰두하기보다는 매체, 공간, 인간,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매체가 가져온 변화를 중심으로 ‘사유하기’를 선택했다. 혼종화된 철학은 철학의 확장이다. 일상에서 이미 혼종화가 다양한 영역과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금, 혼종화된 철학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특히 매체철학은 혼종화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포스트 디지털 매체 시대에서 혼종화되지 않는 영역은 없다. 그중 특히 변화가 도드라지게 보이는 영역이 바로 공간, 인간 그리고 예술이다. 이 책 또한 그 요소들을 따라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물론 변화의 핵심은 ‘혼종화’이다.
I부 1장은 매체와 공간 그리고 매체 공간과 현실 공간의 혼종화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에 속한다. 혼종화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디지털 매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매체적 전회’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일상 공간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공간 이론들을 ‘공간적 전회’라는 이름으로 정리한 후, 이 둘이 혼종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관해 설명한다. 그다음 구체적인 공간의 혼종화 현상을 현실 공간의 혼종화와 매체 공간의 혼종화로 나누어 각각 분석한다. 이 두 주제는 사실 동일한 현상을 도시의 측면에서 또 매체의 측면에서 본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4장에서는 확장된 도시 공간과 혼종화된 매체 공간이 이제 하나의 혼합 현실이 되었고, 이 자체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하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가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II부의 주제는 매체와 인간이다. 마샬 맥루언(Marshall McLuhan)의 말처럼, “매체의 확장은 곧 인간의 확장”이다. 공간의 변화는 그 공간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도 변화시킨다. 저자는 이러한 전제를 수용하면서, 특히 인간의 몸이 실제로 어떻게 확장되는지 그리고 이 확장이 인간의 지각, 소통 그리고 사유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한다.
마지막 III부에서는 매체와 예술을 문제를 다루었다. 새로운 기술과 이를 토대로 한 예술은 늘 논쟁적 주제가 되었다. 최근 예술과 관련해 가장 빈번하게 접하는 문제의식은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을 예술로 인정할 수 있는가?’이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은 이미 90년대 디지털 매체예술이 등장했을 때, 특히 예술과 매체 간의 관계 설정이 문제가 되었을 때 제기되었다. 즉 그 당시에도 앨런 튜링의 물음, 즉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기계가 예술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미 디지털 매체가 예술 영역에 깊이 관여했을 때, 기계가 생산한 예술을 인간이 인정하고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21세기 융합적 매체 연구의 필요성
21세기 매체철학은 일종의 융합적인 매체학이다. 이러한 매체학은 모든 매체 연구의 일원화가 아니라 오히려 각각의 고유한 매체 연구를 기반으로 해서 매체학이라는 큰 우산 아래 모이자는 것이다. 서로 이질적인 것들을 강제적으로 또는 단지 필요성에 의해서 융합하자는 것이 아니다. 매체학이라는 큰 영역 안에서 각자 매체를 연구하며, 각각의 방법론을 기반으로 해서 다양한 매체 현상과 매체예술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매체 현상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는 담론, ‘비판적 매체학(Kritische Medienwissenschaft)’이 필요한 때다. 때를 놓치기 전에,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아올라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매체가 인간의 인식,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매체의 역할을 보다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21세기의 매체철학』은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단순히 기술을 받아들이는 대신, 인간 존재와 경험의 본질을 탐구하고 매체가 우리의 사고와 행동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 스스로 또 하나의 매체인 인간으로서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제공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