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빛일지라도, 우리는 무한

변지영 지음 | 2024-11-28 | 240쪽 | 17,000원


마테 블랑코의 ‘무한의 인식론’과 시몽동의 ‘무한의 존재론’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관계 맺음,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의 탄생을 조망한다. 두 학자는 아주 다른 분야에서, 매우 개성 강한 이론을 제각기 펼쳤지만 수렴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무한’이다. 무의식을 탐구한 마테 블랑코의 이론이 ‘무한의 인식론’이라면, 생성의 관계론을 펼친 시몽동의 개체화론은 ‘무한의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존재의 한가운데 무한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통제와 질서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이 책은 우리 존재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거대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며, 삶의 복잡성과 파편화 속에서도 근원적으로 연결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을 안내한다. 무의식과 관계, 생성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독자들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무한함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저·역자 소개 ▼

저자 변지영 
작가, 임상·상담심리학 박사. 마음의 원리를 연구하고 수행하면서 책 쓰고 강의한다. 차의과학대학교 의학과에서 조절초점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경과학의 최근 발견들을 토대로 심리학 이론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과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뇌과학이 밝힌 인간 자아의 8가지 그림자』를 번역했다. 지은 책으로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미래의 나를 구하러 갑니다』, 『내 마음을 읽는 시간』,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좋은 것들은 우연히 온다』 등이 있다. 
 
차례 ▼


머리말 _ 7
이 책을 읽기 전에 _ 13

이냐시오 마테 블랑코 _ 16
질베르 시몽동 _ 18

1부 연결에 대한 열망, 연결에 대한 공포
1장 • 가설 _ 25

2부 이냐시오 마테 블랑코: 무한의 인식론
2장 • 물처럼 와서 바람으로 가는 우리는 _ 63
3장 • 제3의 무엇 _ 115

3부 질베르 시몽동: 무한의 존재론
4장 • 생겨나는 것들 사라지는 것들 _ 137
5장 • 하나의 호흡 _ 187


편집자 추천글 ▼


우리는 왜 우울한가? 우리는 왜 불안한가?

임상·상담심리학 박사인 변지영이 블랑코·시몽동과 함께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다. 작가이기도 한 변지영은 가볍고 경쾌한 에세이적 글쓰기로 심리학과 철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인간 존재의 무한함과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우리 존재 한가운데에는 무한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무한으로 이해하는 무의식, 관계, 그리고 존재

이 책은 “무한”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심리학적, 철학적 여정을 안내한다. 저자는 이냐시오 마테 블랑코(Ignacio Matte Blanco, 1908~1995)와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 1924~1989)이라는 두 학자의 독창적인 이론을 중심으로 무의식과 생성, 그리고 관계의 역동성을 탐구한다. 두 학자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존재를 움직이는 동력이자 근원적 토대로 ‘무한’을 주목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마테 블랑코의 무한

칠레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이자 정신의학자 마테 블랑코는 프로이트가 정의한 무의식을 넘어서 ‘무한집합으로서의 무의식’ 개념을 제시했다. 그가 말한 무의식이 프로이트, 융의 무의식과 어떻게 다른지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신분석이론에서 무의식을 자기만의 언어와 체계로 설명해 낸 학자는 프로이트, 융, 마테 블랑코 세 사람 정도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무의식은 억압된 생각, 감정, 욕망 등이 저장된, 철저히 개인적인 영역에 해당한다. 그는 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거나 불편한 내용들이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으며, 이러한 무의식적 내용들은 꿈, 말실수, 행동, 신체 증상 등을 통해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프로이트에게 무의식은 의식화해야 하는, 이겨내야 하는 어둠의 영역인 것이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융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융은 무의식을 더 포괄적이고 심오한 개념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집단 무의식은 개인을 넘어서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무의식적인 정신 구조를 의미한다. 융에 따르면, 집단 무의식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경험과 기억들이 축적된 영역이며 원형(archetypes)이라 불리는 보편적인 심상과 상징 들을 포함한다. 이 원형들은 인간의 꿈, 신화, 종교적 상징에서 나타나며,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무의식적인 패턴으로 작용한다.

한편 마테 블랑코는 의식과 무의식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무의식이 비합리적이거나 혼돈스럽다는 일반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무의식이 일정한 패턴과 규칙을 따르는 체계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꿈이나 적극적 상상 등 무의식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이 성장하고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던 융과는 달리, 마테 블랑코는 무의식을 직접적으로 만나거나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보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무의식은 우리의 일상적인 논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를 직접 경험하거나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의식에 드러난 영향과 표현을 통해 일부를 짐작할 뿐이다. 즉, 마테 블랑코는 무의식이 인간 정신의 본질적인 부분이지만, 무의식을 직접 대면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블랑코는 의식으로 알아낼 수 없는 영역, 하지만 우리를 끊임없이 혼란에 빠뜨리는 무의식을 우리 존재의 본질이라 보았다. 득도한 수행자와 정신분열 환자에게는 큰 공통점이 있다. 자기와 타인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이 둘은 어떻게 다를까? 그는 이것을 매우 체계적인 방식으로 설명해 낸다. 수학적 논리로 우리의 무의식을 분석하고 풀어내는 데 평생을 바쳤던 마테 블랑코는, 철저히 무의식을 위한, 무의식을 향한, 무의식 중심의 논리를 펼친다. 왜 우리 정신세계가 대체로 무의식적일 수밖에 없는지, 꿈에는 왜 시간이 없는지, 해묵은 감정은 왜 수십 년이 지나도 지금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지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정신분석가가 과연 있을까? 마테 블랑코가 유일할 것이다. 그의 무의식 이론은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 있어 더 깊고 체계적인 통찰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질베르 시몽동의 무한

한편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은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로, 질 들뢰즈, 브뤼노 라투르, 베르나르 스티글러에게 영감을 준 개체화론의 창시자로 유명하며 기술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상가다. 시몽동이 평생 품었던 화두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존재자들이 생겨났는가?’였고, 그가 도달한 대답은 ‘관계’였다. “관계로서의 존재는 최초의 것이며 원리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시몽동의 철학 세계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생성을 실체와 동등한 반열에 올려놓은 관계의 존재론, 생성의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논리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개념이 전개체성이다.

시몽동은 존재를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관계 맺으며 개체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그는 모든 생성이 아페이론, 즉 전개체성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보았다. 이는 단순한 잠재력이나 가능성의 상태가 아니라, 개체화가 일어나기 이전의 잠재적 무한의 상태로, 새로운 존재가 관계를 통해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원천이다. 이 전개체성은 한정되지 않은, 끝없는 가능성을 포함한 무한한 근원으로서 인간과 세계의 생성 과정을 이끈다.

그는 개체가 단순히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전개체성에서 시작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우리 안에 아직 정해지지 않은, 규정되지 않은 전개체성이 우리를 끝없이 관계로 나아가게 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도록 촉진하는 힘이다. 끊임없이 무한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 우리 내부에 이미 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 안의 무한이 우리를 끝없이 관계로 나아가게 한다. 시몽동의 이론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세상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졌을 때 그것은 ‘무한’이 착수한 일을 ‘관계’가 마감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엄마, 혹은 아빠가 되고 회사원이 되거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의 전개체성, 곧 무한 덕분이다.

시몽동의 개체화론은 인간이 단순히 고정된 존재로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존재로서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자신을 창조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이 무한한 전개체성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와 생성을 추구하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다. 시몽동의 사유는 인간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과 역동성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며, 전통적인 존재론을 넘어 “생성, 변화, 관계 맺음”의 철학을 발전시켰다. 이를 통해 그는 인간과 세계의 근본적인 구조를 이해하고자 했으며, 현대 철학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무한의 인식론 × 무한의 존재론

이 책은 마테 블랑코의 ‘무한의 인식론’과 시몽동의 ‘무한의 존재론’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관계 맺음,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의 탄생을 조망한다. 두 학자는 아주 다른 분야에서, 매우 개성 강한 이론을 제각기 펼쳤지만 수렴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무한’이다. 무의식을 탐구한 마테 블랑코의 이론이 ‘무한의 인식론’이라면, 생성의 관계론을 펼친 시몽동의 개체화론은 ‘무한의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존재의 한가운데 무한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자기 안의 무한을 깨달을 때 우리는 유한자(필멸자)의 한계와 니힐리즘을 극복하고 약동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가 무한을 깨닫는 순간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우리는 지금-여기에서 특이적 존재가 됨으로써 “흔한 일부”가 아니라 “유일한 전부”가 될 수 있다.

생명은 문제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문제 삼는다. 그 이유는 자신 안에 양립 불가능한 채로 남아 있는 모순들, 긴장들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문제는 자신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신을 문제 삼는 활동은 자신을 넘어 관계로 나아가게 한다.
새로운 무언가가 되기 위해 관계가 있다. 관계가 무의식적이고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의식이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안의 무한이자 무의식, 전개체성이 하는 일이다. 우리 안의 무한은 관계와 생성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

통제와 질서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이 책은 우리 존재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거대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며, 삶의 복잡성과 파편화 속에서도 근원적으로 연결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을 안내한다. 무의식과 관계, 생성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독자들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무한함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