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형이상학1
신지영 지음 | 2025-02-28 | 288쪽 | 20,000원
‘차이’는 들뢰즈라는 걸출한 프랑스의 철학자로 대표되는, 현대를 해명하는 핵심 개념이다. ‘이데아’나 ‘형상’ 등을 언급하는 이전의 형이상학이 아니라, 현대의 과학과 기술에 걸맞은 합당함을 갖췄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차이형이상학이다. 『차이 형이상학 1』은 궁극적으로는 들뢰즈 형이상학의 정수인 『차이와 반복』에 이르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서, 니체를 거쳐 19세기의 과학을 충실하게 자신의 철학에 반영하고 있는 베르그손을 통해 고전적인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현대에 대한 탐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저·역자 소개 ▼
deleuze.gnu.ac.kr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프랑스 리옹 3대학교에서 들뢰즈의 윤리와 미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철학과에 재직 중이다. 최근 『들뢰즈의 드라마론』((사)한국대학출판협회 선정 2022년 올해의 우수도서), 『들뢰즈의 정치-사회철학, 통제사회에 던지는 질문』(2024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을 쓰고, 들뢰즈의 『대담, 1972~1990』을 번역 출간했다. 『들뢰즈로 말할 수 있는 7가지 문제들』, 『내재성』, 『들뢰즈 개념어 사전』,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해설과 비판』 등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차례 ▼
서문 7
가. 형이상학의 필요성 — 7
나. 20세기의 형이상학자, 들뢰즈 — 16
1. 플라톤에서 니체로 전환된 형이상학 29
가. 플라톤 — 30
⑴ 실체에서 사건으로 — 30
⑵ 일자로부터 순수한 다수성으로 — 41
나. 니체 — 49
⑴ 니체에 대한 기존의 몇 가지 해석 — 49
⑵ 니체에 대한 들뢰즈의 해석 — 53
2. 19세기와 20세기 과학의 종합 63
3. 몸 95
가. 지각 — 99
⑴ 지각은 인식을 준비하는 것인가 — 99
⑵ 지각은 행동을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 102
⑶ 지각은 질문 — 106
⑷ 지각은 감산 — 109
나. 내부와 주관 — 112
⑴ 의식적 지각의 탄생 — 115
⑵ 지각에 대한 상식의 소박한 신념 — 118
다. 감응, 영혼의 다양한 움직임 — 119
⑴ 감각, 정념, 감응적 감각 — 119
⑵ 고통/통증douleur은 왜 하필 그 순간 나타나는가? — 123
⑶ 감응은 지각에 끼어든 불순물 — 128
4. 몸과 마음을 잇는 다리: 기억 131
가. 습관과 기억 — 133
나. 뇌, 운동중추인가 기억중추인가 — 142
다. 연합의 원리의 불충분성 — 145
라. 몸과 마음의 계열 — 147
마. 기억은 뇌에 보존되는가 — 152
바. 그래도 다시 묻는다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 155
5. 정신 159
가. 정신은 물질과는 별도로 존재하는가 — 159
나. 주의작용attention — 162
다. 분석과 종합 — 166
라. 원뿔, 기억의 형상 — 170
6. 실재와 사실 175
가. 실재 ― 현실적, 잠재적, 가능적, 실재적 — 175
나. 실재성과 원인 — 181
다. 사실에 대한 지각과 실재에 대한 직관intuition, 미분과 적분 — 190
라. 명석clear 판명한distinct 관념 VS 명석 혼란한confuse 관념/ 애매obscure 판명한 관념 — 202
7. 시간 207
가. 현재 — 210
나. 순수 기억 — 212
다. 과거와 미래, 정신과 물질 — 216
라. 시간의 함수 — 220
8. 개체와 개체화 223
가. 성격과 무의식 — 223
나. 개체와 개체화의 문제 — 226
⑴ 개체화의 문제에 대한 중세인의 고민 — 228
⑵ 둔스 스코투스의 개체화 문제 — 235
⑶ 들뢰즈가 발전시킨 스코투스의 유산 — 242
9. 물질과 정신의 문제 257
가. 사유와 연장 — 257
나. 양과 질 — 261
다. 구별은 존속하지만 결합union은 가능하다 — 269
라. 들뢰즈: 생명, 유기적 생명과 비유기적 생명 — 275
참고문헌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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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철학의 모색
‘차이’는 들뢰즈라는 걸출한 프랑스의 철학자로 대표되는, 현대를 해명하는 핵심 개념이다. ‘이데아’나 ‘형상’ 등을 언급하는 이전의 형이상학이 아니라, 현대의 과학과 기술에 걸맞은 합당함을 갖췄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차이형이상학이다. 『차이 형이상학 1』은 궁극적으로는 들뢰즈 형이상학의 정수인 『차이와 반복』에 이르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서, 니체를 거쳐 19세기의 과학을 충실하게 자신의 철학에 반영하고 있는 베르그손을 통해 고전적인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현대에 대한 탐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I의 도입으로 인간은 더 행복해질까? 장기적으로는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세상에 균형이 도래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AI를 탑재한 인간들 사이에 능력의 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주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예를 들어 유능한 경력직은 지금보다 수십 배의 연봉을 받게 되는 반면, 아직 숙련되지 않은 인력이 담당할 만한 일은 AI로 대체되어 인간 신입사원은 아예 뽑지 않아 일자리가 사라지는 광경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능력과 부의 격차는 더 극단화될 것이다. 과연 AI가 할 수 있는 것과 변별되는 인간의 능력은 무엇일까? 현기증 나는 기술의 격변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갈팡질팡하며 불안의 상태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과연 빠르게 기술을 연마하고 그것을 숭배하는 것만이 우리를 구원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공지능 앞에서 중요한 것은 그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된다. 우리의 질문에 따라 그가 가져다줄 정보의 수준도 달라지게 된다.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결국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산발적인 정보와 마주치는 대신 일관된 논지를 통한 깊이 있는 사고를 연마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책을 읽는 행위이고 결국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은 철학의 정수로서, 철학이 다루는 그 모든 주제들의 근본을 파고들어 가는 학문이다.
베르그손과 들뢰즈의 철학적 연관성,
현대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형이상학
흥미롭게도 우리는 과학과 철학의 만남을 논할 때 주로 18세기 뉴튼 역학에서 20세기 양자물리학으로 건너뛰곤 한다. 그 결과 19세기 생물학이 가져온 패러다임의 전환은 철학사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왔다. 현대인들은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e)나 인간주의(Humanisme)를 쉽게 비판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등장했으며 우리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관점마저 또 다른 형태의 인간중심적 사고에 갇혀 있다. 예를 들어, 종차별주의를 비판하며 동물권을 옹호하는 이들조차 흔히 인간과의 친밀도에 따라 보호 대상을 선별하는 모순을 보인다. 이는 생물학과 신경생리학의 혁신적 발견들이 우리의 자기 이해와 세계 인식에 가져온 근본적 변화를 충분히 성찰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들뢰즈는 베르그손의 철학에서 서양 철학이 오래전 잃어버린 ‘생성의 형이상학’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발견했고, 이후 그 철학적 과업을 이어받았다. 베르그손이 마주한 당대의 과학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상징하는 생물학의 혁명적 전환과, 인체에 대한 의학과 생물학의 획기적 발견들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저서는 19세기의 과학적 성과를 철학적으로 소화한 베르그손의 사상을 통해, 들뢰즈로 대표되는 20세기 '차이의 형이상학'을 예견한 생성의 형이상학의 면모를 탐구하고자 한다.
1장은 현대철학의 임무를 ‘플라톤주의의 전복’이라고 보았던 니체와 플라톤을 비교하며 고전형이상학으로부터 현대형이상학으로 넘어가는 단초를 제시한다.
2장에서는 뉴튼 역학의 완성 이후 그리고 양자역학 이전, 생물학의 시대인 19세기에 주목해 진화론과 신경생리학, 전자기장의 발견 등은 철학에 어떤 형태의 변화를 요구했는지 살펴본다.
3~5장에서는 지각, 감응, 행동의 관점에서 ‘몸’을 검토하며 몸과 마음을 잇는 다리로서의 ‘기억’, 그리고 베르그손을 통해 인간 ‘정신’에 대해 해명한다.
6장에서는 실재와 사실은 어떻게 다른지, 7장에서는 철학에서 시간 개념을 어떻게 사유해 왔는지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베르그손을 검토한다.
8장에서는 보편자를 규명하기보다는 ‘개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두는 현대의 형이상학을 위하여 보편에서 개인으로 그 관심이 서서히 옮겨 가기 시작하던 중세로부터 라이프니츠, 시몽동, 들뢰즈로 이어지는 현대의 논의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9장에서는 신경전달물질과 전위차, 전자기장 등의 과학적 발견이 물질과 정신의 문제에 들어오면 이 문제가 어떻게 변환될지를 질문하며 베르그손의 심신론을 들여다본다.
언어는 존재의 집─인간 운명의 근거 짓기
▶‘차-이’의 존재사건
하이데거에 따르면, 언어의 기초는 이름(Name)이고, 이름은 어원적으로 “알려지게 함”을 뜻한다. 명명함(Nennen)이란 그런 ‘이름 부름’이다. 그리고 부름(Rufen)은 “더 가까이 가져옴”을 뜻하는데, 이때 부름을 통해 호명된 것은 “부재 속에 간직된 현존”(『언어에로의 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호명된 것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처럼 있지는 않지만(부재하지만), 호명되기 이전과는 달리 어떤 방식으로든 없는 것은 아니기(현존하기) 때문이다. 명명함으로써 우리는 부재 속에 간직된 현존을 가까이 가져온다.
이와 같이 언어를 통해 명명되는 것은 우선 사물과 사방이다. 후기 하이데거에게 사물은 모아들일 수 있는 ‘빔’(das Leere; 空)을 뜻한다. 사물을 ‘빔’으로 파악함으로써 하이데거는 무엇인가 규정되기 이전의 풍요로운 의미의 보고(寶庫)로서 사물을 해석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런 사물이 결국 모아들이는 것, 그 비어 있음에 담는 것은 바로 사방(四方)이다. 사방이란 후기 하이데거에서 ‘세계’를 뜻하는 용어로서, 땅과 하늘 사이의 자연과 그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신적인 것들’ 그리고 존재와 무(無)의 심연을 이해하는 ‘죽을 자들’이 서로 어울리며 형성하는 통일적인 세계를 뜻한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따르면, 사물은 의미지평인 세계를 (자기 속에 숨기고 간직하면서) 몸짓하기만 하고, 세계는 사물에게 어떤 의미를 베풀어 준다. 이렇듯 사물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숨기려 하고, 세계는 그 의미를 밝히려 한다.
하이데거에게 언어는 차-이의 언어이다. 차-이는 세계와 사물 ‘사이’의 중심으로서, 양자를 가르는 동시에 이어 주는 “유일한 차원”이다. 그것은 한갓 다양한 차이들의 유개념이 아니다. 모든 차이들을 낳는 근원적인 차이, 즉 ‘차이가 있다’는 사태 자체를 말한다. 이런 차-이가 먼저 존재사건으로 일어난다. 그후에 ‘추후적으로’ 세계와 사물은 규정되고, 이후 존재자들의 의미가 정해진다. 차-이는 또한 디아포라, 즉 차이들을 통일적인 하나 속에 억제·비축하는 ‘품어 냄’이기도 하다. 때문에 한 사물의 의미는 개념적으로 영구히 확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미는 생성하는 차이들의 억제를 통해 잠정적으로 결정된 것일 뿐이며, 끊임없이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시짓기와 사유하기의 ‘사이’는 바로 이런 ‘차-이’의 존재사건, 그 “존재사건이 말하는” 근원적인 ‘언어’인 것이다.(『언어에로의 도상』 참조)
지식의 바다에서 지혜 찾기,
지금 우리에게는 형이상학이 필요하다
이 시대가 던지는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차이 형이상학 1』은 베르그손에서 시작되어 들뢰즈로 이어지는 ‘생성의 형이상학’을 통해 고전적 형이상학의 한계를 넘어, 우리 시대의 근본적 질문들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어 준다. 단지 방대한 지식의 축적과 처리를 넘어서는 진정한 지혜의 함양, 기술이 제공하는 수많은 답변들 속에서 올바른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능력, 그리고 그 질문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성찰할 수 있는 통찰력.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진정한 지혜일 것이다. 형이상학은 바로 이러한 지혜의 탐구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길잡이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