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주의 철학에 대한 몇 가지 반성
에마뉘엘 레비나스 지음, 김동규 옮김 | 2025-11-11 | 160쪽 | 18,000원
레비나스에 따르면 히틀러주의는 영혼이나 정신과 같은 고차적 가치에는 무관심한 채, 오로지 신체의 해방을 추구한 일종의 정치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 더 나아가 그를 비호하며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당시 독일 사상가들까지도 예외 없이 신체적 힘을 강화하고 생존 의지를 극대화하는 것을 일종의 ‘최고선’으로 삼았다. 이는 단지 유럽을 지배해 온 정신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레비나스가 지적했듯 인간의 인간성 자체를 다시 문제 삼는 움직임이었다. 추상적이거나 고상한 가치를 거부한 채, 현실을 지배하려는 욕망은 신체적 힘의 과시와 생존 투쟁에서의 승리라는 야망만을 남겼다. 레비나스가 보기에는 히틀러 제국의 지배 이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저·역자 소개 ▼
1906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다. 1923년부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수학했고, 1928~1929년 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후설과 하이데거에게 현상학을 배웠다. 1930년 〈후설의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철학계에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소개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러나 점차 스승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국가사회주의의 출현과 2차 세계대전이 결정적 계기였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군에게 포로로 수용되기도 한 레비나스는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후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유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레비나스는 서양 철학과 전쟁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타자를 주체에 흡수해온 서양 철학의 전통이 상대를 말살하려는 전쟁과 전체주의에 길을 열어주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레비나스의 철학이 ‘타자성의 철학’, ‘평화의 철학’이라 불리는 이유다.
《초월과 인식 가능성》은 말년의 레비나스가 자신의 원숙한 사유를 펼쳐낸 책으로, 여기서 레비나스는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의미에서 초월을 급진화하여 다시금 타자로 향하는 길을 모색한다. 하늘의 지혜를 땅에서 구현하기, 즉 타산적인 삶을 초월한 성스러운 삶의 철학적 방향성을 탐구한 것이다.
레비나스는 이 책 외에도 《존재에서 존재자로》(1947), 《시간과 타자》(1948), 《전체성과 무한》(1961), 《존재 와 달리 또는 존재성을 넘어》(1974) 등 25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소르본대학교 교수직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후에도 강연과 집필 활동을 활발히 하다 1995년 12월 25일에 89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역자 김동규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객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총신대학교 신학과에서 신학을,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벨기에 루뱅대학교, 같은 학교 후설문서보관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에서 종교 철학, 종교학, 신학, 현상학을 연구했다. 주요 저작으로 《선물과 신비: 장-뤽 마리옹의 신-담론》, 《장뤽 마리옹》,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공저)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전체성과 무한》에서 ‘나(들)’의 다원주의〉, 〈진리의 초과, 주어진 자기: 마리옹의 아우구스티누스 해석에 대한 비판적 고찰〉, 〈상호성을 넘어서: 폴 리쾨르에게서 주어짐과 선물〉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장뤽 마리옹의 《과잉에 관하여》, 레비나스의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 《탈출에 관해서》, 《윤리와 무한: 필립 네모와의 대화》, 리처드 카니의 《재신론》 등이 있다.
차례 ▼
히틀러주의 철학에 대한 몇 가지 반성 7
에마뉘엘 레비나스
해설
원초적 악 27
미겔 아방수르
옮긴이 해제
전체주의의 폭력을 끊임없이 경계한
철학자의 첫 번째 철학적 성찰 119
편집자 추천글 ▼
다시 도착한 1934년의 편지
신체적 힘의 강화, 생존 의지의 극대화는
전체주의 세력의 이론적 토대일 뿐!
레비나스의 1934년 시론 『히틀러주의 철학에 대한 몇 가지 반성』은 피해자라는 가면을 쓴 전체주의자들에게 그가 보내는 일종의 반송 편지와도 같은 글이다. 이 책의 첫 해설자 미겔 아방수르가 지적하듯, 그것은 독일이라는 패전국을 힘으로 재건하려 했던 히틀러의 편에 선 하이데거에게 보내는 편지로도 읽힐 수 있으며, 동시에 피해자 지위를 방패 삼아 폭력을 일삼는 모든 이들에게 거울처럼 비추어 사용할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히틀러주의는 영혼이나 정신과 같은 고차적 가치에는 무관심한 채, 오로지 신체의 해방을 추구한 일종의 정치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 더 나아가 그를 비호하며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당시 독일 사상가들까지도 예외 없이 신체적 힘을 강화하고 생존 의지를 극대화하는 것을 일종의 ‘최고선’으로 삼았다. 이는 단지 유럽을 지배해 온 정신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레비나스가 지적했듯 인간의 인간성 자체를 다시 문제 삼는 움직임이었다. 추상적이거나 고상한 가치를 거부한 채, 현실을 지배하려는 욕망은 신체적 힘의 과시와 생존 투쟁에서의 승리라는 야망만을 남겼다. 레비나스가 보기에는 히틀러 제국의 지배 이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피해자 가면을 쓰고
힘의 팽창을 정당화하는 논리의 속살을 들여다보라!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이념 속에 자신을 피해자, 혹은 약자로 둔갑시키는 기묘한 전략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는 근대화와 근대 정신의 희생자가 자신과 독일 민족이라고 주장했고, 그 반대편에 선 수혜자는 유대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근대 자유주의와 그리스도교 이념에 맞서 힘과 생존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더 나아가 그 힘을 설득이나 전파가 아닌 팽창의 논리로 확장한 것이야말로 레비나스가 진단한 히틀러주의의 핵심이었다.
겉보기에 이런 단순한 사고방식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무익하고 해로운 것으로 낙인찍힌 듯하지만, 실상은 오늘날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압박하는 네타냐후가 내세운 투쟁의 주요 근거 또한 ‘생존’이다. 그는 “자국 영토 위에서 유대 민족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공언했다. 우리가 보기에 이스라엘의 생존은 더 이상 위협받지 않는 듯 보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약자로 규정하면서 힘의 팽창을 정당화한다. 레비나스가 생전에 이스라엘 내부의 폭력 정당화를 두고 비판했던 목소리—“모든 상황에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말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내세우는 것은, 가해자들[나치군]의 허리띠에 새겨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Gott mit uns)이라는 문구만큼이나 혐오스럽다”—는 이제 거의 기억되지 않는 듯하다.
자유와 인권 옹호 vs. 국익과 민족의 힘
그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만의 논리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 기반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주요 선동 대상이었던 백인 노동자들 또한 여성과 이민자 앞에서 자신들이 약자라고 주장한다. 이 틈을 파고든 전략 역시 ‘생존’과 ‘힘’의 논리였다. 가까이 한국 사회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드러난다. 내란의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이들이 내란의 수괴를 두둔하고, 물리적 힘으로 정세를 뒤집으려 했다. 법원에 대한 폭력 행사 또한 그들의 ‘생존 의지’를 드러내는 사례이다. 민주주의라는 기본 질서를 가까스로 지켜냈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 여전히 외국인을 혐오하고, 국내 정치를 ‘한일전’과 같은 민족 간 생존 대결로 규정하며, 인종적 힘의 결집을 기만적으로 꾀하는 전체주의적 생존 의지가 다른 얼굴로 살아 있는지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트럼프 정부가 조지아주에 파견한 한국 노동자들을 반인권적으로 구금한 사건에 분노한다. 이는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반인권적 행태에는 둔감한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인권보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정서적 틀을 따라 인종적으로 현실에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체주의로 회귀하려는 내란 세력에 맞선 것도 시민들의 자화상이지만, 자유와 인권 옹호와 국익과 민족의 힘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도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까?
전체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와 비판 정신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
이 모든 현실 속에서 레비나스의 1934년 시론은 여전히 강한 울림을 남긴다. 훗날 그는 히틀러주의에 ‘철학’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이는 적어도 그 당시 그것이 일종의 범속한 대중 철학으로 통용되었음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혐오와 배제, 폭력에 기대어 이를 증폭시키는 오늘날의 ‘대중 철학’은 무엇인가? 『히틀러주의 철학에 대한 몇 가지 반성』은 이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레비나스가 당대에 품었던 전체주의에 대한 경계와 비판 정신이 무엇이었는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1934년의 레비나스가 전체주의의 공포에 휩싸여 있는 2025년의 우리에게 보낸 시대를 초월한 편지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