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유전자 정치  우생학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12

앤 커·톰 셰익스피어 지음, 김도현 옮김 | 2021-03-05 | 480쪽 | 28,000원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우생학적 횡포를 나치 때나 같은 과거의 일로 치부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 책 『장애와 유전자 정치』는 우생학이 첨단 유전 기술과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념과 만나 더욱 세련되고 암묵적인 시스템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폭로한다. 유전질환에 대한 치료법은 부재한 상태면서 사전 판별을 권유하는 것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맞춤 아기’ 등의 ‘더 나은 육종’을 위한 기술은 장애인을 어떤 사회적 위치에 점찍을 것인가? ‘장애’가 그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유전자’ 탓인가? 이 모든 성찰이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앤 커 Anne Kerr
영국 글래스고대학교 사회과학 및 정치학부 학장. 과학기술학(STS), 의료사회학, 젠더 연구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 『유전학과 사회: 질병의 사회학』Genetics and Society: A Sociology of Disease(2004)이 있다. 

저자  
톰 셰익스피어 Tom Shakespeare 
영국의 사회과학자이자 장애인 활동가로, 생명윤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로 『장애학의 쟁점』Disability Rights and Wrongs(학지사, 2013)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 『철학, 장애를 논하다』Arguing about Disability(그린비, 2020)가 있다. 

역자  
김도현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의 발행인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노들장애인야학 부설 기관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연구 활동가로도 일하고 있다. 《차별에 저항하라》,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장애학 함께 읽기》, 《장애학의 도전》 등을 썼으며,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 《철학, 장애를 논하다》, 《장애와 유전자 정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차례 ▼

감사의 말 5
추천사 혹은 참회문: 우생세, 능력주의를 넘어서기를 원한다면 7

1장 _ 서론 19

2장 _ 우생학의 등장: 영국과 미국 35
사회적 혼란: 초기 우생학의 배경 37 | 초기 유전학, 과학, 의학 39 | 우생학 운동과 대중적 지지 45 | 우생학 법률과 실천: 시설 수용과 단종수술 57 | 결론 63

3장 _ 나치의 인종학 67
당시의 지적 분위기 68 | 나치의 등장 73 | 단종수술 77 | 안락사 82 | 아동 안락사 89 | 비공식적 안락사 92 | 가해자들 97 | 악의 평범성 105 | 항의자들 107 | 결론 114

4장 _ 사회민주주의 사회들에서의 우생학 119
우생학으로의 행로 122 | 스칸디나비아의 우생학 프로그램 131 | 우생학에 대한 반대 144 | 결론 148

5장 _ 개혁 우생학: 193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151
우생학의 개혁 153 | 분자유전학을 향하여 164 | 우생학적 단종수술과 차별의 지속 176 | 새로운 사회생물학의 등장 180 | 결론 187

6장 _ 신유전학의 등장 189
인류유전학에서 재조합 DNA까지 190 | 초기의 유전자 치료 및 배아 연구 195 | 초기의 임상유전학 200 | 인간게놈프로젝트 203 | 유전자 특허 취득 213 | 유전자 치료와 약물게놈학 219 | 재생산 복제를 향하여 222 | 임상유전학의 성장 225 | 행동유전학에서 행동게놈학으로 233 | 구래의 우생학과 새로운 우생학 236

7장 _ 문화로서의 유전학 241
문화적 표상들 242 | 유전화의 영향 256 | 사회적 다윈주의와 행동유전학 263 | 결론 277

8장 _ 사회적 맥락 내에서의 선택 283
재생산 선별 검사 프로그램의 목적은 무엇인가? 287 | 사람들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 294 | 불확실성과 위험성 307 | 아는 것이 힘인가, 아니면 모르는 것이 약인가? 313 | 선택권은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321

9장 _ 선택의 결과들 329
진정 더 나은 아기를 선택하게 되는가 330 | 유전적 최하층 계급인 것을 오히려 반겨야 하는가 339 | 감시사회를 향하여 353 | 결론 367

10장 _ 게놈학에 대한 규제 369
규제력을 지닌 생명윤리 373 | 국제적・국내적 수준에서의 조약과 의정서 378 | 국가 차원의 비법정 자문 기구 383 | 직업 행동강령 387 | 시장 네트워크 389 | 시민 참여 398

11장 _ 결론 405
회고 408 | 숙고 416 | 정책 활용론 421

옮긴이 해제: 생명권력과 우생주의, 그리고 장애인의 생명권 429
참고문헌 449
찾아보기 468 
편집자 추천글 ▼

‘장애’가 나의 문제가 될 때,
우생주의 권하는 사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 앨라배마주는 인공호흡기 지원 시 중증장애인과 인지적 장애인을 후순위로 할 수 있다는 지침을 발표했고, 이탈리아의 의료 지침 역시 단기간에 치료 가능한 건강한 환자를 우선순위에 두고 장애를 고려해 의료 자원을 할당할 것을 주문했다. 독일 나치 정권에서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된 후 전후에 종료되었다고 생각한 우생학, 그것은 과연 과거의 일이기만 할까?

우생학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에 미국과 이탈리아가 장애인을 대하는 방식에서 보이듯, 사회는 선택의 기로가 명확한 현상을 다룰 때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에서도 소록도 강제수용소의 한센인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단종수술이 시행된 바 있고, 「모자보건법」을 통해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해 왔다. 이뿐만 아니라 지금도 발달장애인들에게 불임수술이 암묵적으로 권장되고 있다.

이 같은 몇 가지 단편적 사례만 보더라도 우생학은 결코 반세기 이전 과거에 속하는 일로만 간주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의 부제 ‘우생학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의 뒤에는 ‘계속 이어진 우생주의’가 생략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장애와 유전자 정치』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생학이라는 용어가 더 이상 쓰이지는 않지만, 오히려 더욱 세련되고 시스템화된 형태로, 개인의 선택을 가장한 ‘소비자 우생학’ 내지 ‘뒷문으로 이루어지는 우생학’의 형태로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같은 현대적 우생학이 “현재 널리 퍼져 있는 재생산 구조의 발현적 속성”이라고 말한다. 비유하자면 이는 뇌와 의식 간의 관계와 비슷하다. 의식이 뇌의 어느 곳에서 생성되는지 그 부위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대단히 복잡한 인간 뇌의 여러 요소들의 결합이 의식을 하나의 결과물로 생산”하는 것처럼, 현대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통치 시스템과 재생산 시스템 속에서 우생주의가 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첨단 유전학 기술이 대중에게 익숙해진 이후 ‘우월해’ 보이는 사람을 향해 “유전자가 좋네”, “유전자 잘 물려받았네” 등의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곤 한다. 이때 장애인은 암묵적으로 ‘나쁜 유전자’의 산물 정도로 취급되며,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게 아니라 차별받기에 장애인이 된다는 인식을 희석하고 만다.

국제적 우생학 연구의 성과와 논의의 집대성

‘유전자 정치’라는 개념 아래 장애와 우생학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여러 장점과 미덕을 지닌다. 우선 국제적 우생학 연구의 풍부한 성과와 문헌들을 바탕으로 영국, 미국, 독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북유럽의 우생학까지도 매우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정리해 내고 있다. 예컨대 스웨덴은 1922년 전 세계 최초의 국립 우생학 연구기관인 국가인종생물학연구소를 설립한 나라였고, 1935년 단종법 제정 이후 1975년까지 약 6만 3000건의 단종수술이 이루어졌다. 이는 미국에서 1907년부터 1974년까지 시행된 6만 5000건과 맞먹는 수치로, 나치 독일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인구당 가장 많은 단종수술이 이루어진 나라가 스웨덴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이 같은 우생학 역사가 이 책의 전반부를 구성한다.

7장 이후의 후반부에서는 20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한 인간게놈학(human genomic)의 성장과 그 영향을 고찰하고 있다. 게놈학은 흔히 ‘유전 암호’라고 불리는, 게놈의 염기서열과 그 특징을 밝혀내는 작업을 기본으로 한다. 진단 검사나 대규모의 선별 검사 프로그램을 통해 질병과 연관된 유전자를 발견하는 작업이 핵심이지만, 유전자 치료 및 약물 치료의 발전 또한 큰 중요성을 갖는다. 저자들은 이러한 발전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사회적 결과, 그리고 그런 발전이 수반하는 유전학, 장애, 질병에 대한 문화적 이해 및 표상을 고찰하면서 매우 통찰적인 논의들을 제시한다.

“새로운 유전학 지식은 새로운 딜레마를 야기한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삶에서 유전학의 힘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유전 정보가 그들의 재생산 선택권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게 해야 하는가? 다른 누군가가 그 정보에 접근해서 유전질환을 지닌 사람들을 차별하는 데 그것을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향후 갖게 될 질환에 대해 알아봐야 무슨 소용인가? 사람들은 유전적 위험성을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가?” (8장 「사회적 맥락 내에서의 선택」 중에서)

그렇다면 이러한 신우생학의 시대에 어떤 실천이 필요한가? 저자들은 결론에서 유전 정보에 근거한 차별 및 프라이버시와 관련하여 좀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규제를 제창하고, 경미한 유전질환이나 행동 형질에 대한 산전 검사의 개발을 중단하고, 그와 관련된 정보가 간접적으로 입수 가능한 경우라 하더라도 그냥 무시하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윤리적으로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우리는 장애가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가 될 때 어느새 우생학자가 되어 버리곤 한다.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될 것임을 미리 알아 버렸다면, 우리 소위 정상인들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 장애인을 안 보이게 할 수 있다면…. 데이터 활용에 대한 법과 규제, 윤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그 답을 계속 찾아 나가야 할 것이며, 그 노력의 일환으로 이 책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