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와 장애의 통치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11
셸리 트레마인 엮음, 박정수·임송이 옮김 | 2020-12-21 | 528쪽 | 29,000원
미셸 푸코는 한국에 1990년대에 소개되어 일반대중에게도 알려진 철학자다. 그러나 푸코의 철학이 ‘장애’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푸코의 저서가 번역되고, 푸코에 대한 개론서가 쓰이고, 푸코에 대한 강의와 논쟁이 펼쳐지는 동안 ‘푸코’와 ‘장애’를 연결하여 논의한 책이나 담론이 없었던 것은 푸코의 저서가 지닌 장애와의 연관성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의아한 일이다.
푸코의 철학을 통해 ‘장애’를 고찰한 『푸코와 장애의 통치』의 출간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 책은 ‘정신지체’, ‘손상’, ‘결함’ 등을 갖고 있다고 간주된 이들을 둘러싼 정치, 법률, 제도, 담론을 푸코의 개념과 사유로 분석하고 있다. 각 챕터를 담당한 장애학 연구자들은 임상의학, 광기, 정신분열증, 교육학, 감옥에 대한 푸코의 역사적 연구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배제와 통합의 실천들, 교육학, 건강 담론들을 서로 관련지음으로써 푸코의 텍스트와 사유가 지닌 현재적 가치를 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저·역자 소개 ▼
토론토 대학 미시소거 캠퍼스 철학과 교수이다. 요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1998년,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와 세계장애협회(World Institute on Disability)에서 애드 로버츠 박사 후 과정 연구 장학금을 받았다. 산전 검사와 선별 검사에서 손상의 구조, 줄기세포 연구의 생명정치학, 성윤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며, 『푸코와 페미니스트 장애 철학』(2017)을 썼다.
역자 박정수
서강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문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생활하며 프로이트, 푸코, 들뢰즈를 즐겨 읽었다. 지적인 성과보다 요리, 농사, 가드닝에서 뚜렷한 소질을 보였으며, 그래피티나 현장인문학을 통해 활동가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동안 쓴 저서로는 《현대 소설과 환상》,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 《매이데이》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How To Read 라캉》,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등이 있다. 2015년 수유너머 연구자 생활을 마감한 후 ‘장판’(장애운동판)으로 들어왔다. 2016년부터 인터넷 언론사 ‘비마이너’ 기자로 활동했고, 2017년 ‘노들장애학궁리소’ 창립 후 장애학 연구 활동가로 지내고 있다. 또한, ‘노들장애인야학’의 철학 교사, 노들야학 백일장 심사위원,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심사위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활동감사 위원으로 활동했다. 최근 관심사는 ‘장판’에서 ‘그리스 비극’ 읽기다. 노들야학 철학 수업 때 두 학기 동안 그리스 비극을 강독했다. 〈오이디푸스 왕〉을 강독할 때, 다리 개수로 ‘인간’을 정의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평생 두 다리로 걸어본 적 없는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생각이 많아졌다. ‘비극’에 담긴 디오니소스적 운명애가 장애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 몇 번 더 수업하면서 탐구해볼 생각이다. 생계활동으로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현대문화론’ 강의를 하고 있으며, 아내에게 임금을 받으며 가사노동을 하고 있다. 최근 ‘안양’으로 이사 와서 생애 처음 경기도 주민으로 지내고 있다.
차례 ▼
감사의 말·5
서문·11
서론_푸코, 통치성, 그리고 비판적 장애 이론-셸리 트레마인·21
I부_인식론과 존재론
주체화된 신체: 마비, 재활, 그리고 운동의 정치학-마틴 설리번·52
푸코의 유산·53 | 의료화된 신체, 의료화된 주체·56 | 입원: 의료권력에의 예속·58 | 거동 장애 다루기: 총체화 국면·62 | 유순한 신체 생산: 신체관리의 테크닉·65 | 의료권력과 저항·69 | 유순한 신체-주체: 신체 관리의 진행 중인 효과들·72 | 결론·74
이성의 기호들: 리비에르, 조력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주체의 위기-니르말라 에르벨스·76
이성의 시대 안에 있는 비일관성: 주체성의 위기·79 | “저자란 무엇인가?”: 조력 커뮤니케이션과 행위주체의 문제·85 | 결론: 침묵 너머를 보기·95
학습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돌봄 서비스의 진실, 권력, 그리고 윤리학-스콧 예이츠·101
지역사회 돌봄·102 | 푸코의 영향력·104 | 돌봄 서비스에 대한 ‘푸코적’ 분석·107
푸코적 분석은 장애 이론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나?-빌 휴스·117
푸코의 연구 영역: 감시받는 신체들·121 | 푸코의 살 없는 수동적 신체·126 | 결론에 부쳐·133
푸코의 유명론-베리 앨런·135
손상의 주입·135 | 지식과 권력·138 | 유명론·143 | 예속된 지식·147 | 담론과 신체·150
장애 입법: 부정적 존재론과 법적 정체성의 통치-피오나 쿠마리 캠벨·153
존재론 전쟁과 장애의 ‘사고 불가능성’·153 | 자유와 자율의 추방 — 비장애중심적 주체성의 재확립?·156 | 사회적 손상 — 위반의 수단인가? 재활 도구인가?·162 |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장애?·166 | 장애를 택할 것인가, 택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170 | 미국의 경험: 비장애중심주의와 미국 장애인법·172 | 결론: 존재론적 문제의 의제화·178
II부_역사들
유순한 신체, 유순한 정신: 정신지체에 관한 푸코적 성찰-리시아 칼슨·182
대항적 분석: 무수한 불화의 공간·186 | 양적 정의와 질적 정의·188 | 생산적이면서 보호적인 시설에서의 정태적 정의와 동태적 정의·191 |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197 |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 정신지체의 재성찰·202
비범한 학교: 19세기 초반 미국, 농의 제도화-제인 버거·206
기형의 딜레마: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파리에서의 비정상 인간에 대한 경찰통제와 기형학-다이애나 스니구로비치·229
III부_통치성
누가 정상인가? 누가 일탈자인가?: 유전 진단과 유전 상담에서의 ‘정상성’과 ‘리스크’-아네 발트슈미트·246
정상화 사회·249 | 유전학에서의 유동적 정상화·254 | 유전학 지향 도식의 주관적 해석·263 | 결론·265
배제된 학생을 위한 포함 교육: 예외적인 자들의 통치에 대한 비판적 분석-마르텐 시몬스 & 얀 마스켈라인·268
‘전체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개인, 사회, 교육·270 | ‘학교 교육의 통치화’·273 | ‘포함 교육’과 ‘포함 사회’를 향하여·279 | 포함에 관한 담론·282 | 포함과 배제를 넘어서·287 | 결론·292
지원받는 삶과 개인의 생산-크리스 드링크워터·295
우리의 제도적 ‘타자’·295 | 권력과 개별성·297 | 지원받는 삶에서의 권력관계들·299 | 차이의 윤리학을 향하여·313
미국 스포츠 경기장에서 장애의
현실적 공간과 이상적 공간-캐럴린 앤 앤더슨·316
장애 담론·319 | 능력 있는 신체 관리자·324 | 유순한 신체로서의 무능한 신체·330 | 결론·334
푸코와의 통화: 장애와 통치의 이동성-제라드 고긴 & 크리스토퍼 뉴얼·335
푸코씨? 어디세요?·335 | 누가 모바일에 장애를 장착했는가?·339 | 통치, 장애, 모바일·346 | 능동적 시민권·348 | 통치와 그 너머·351
IV부_윤리학과 정치학
윤리적 프로젝트로서의 ‘포함’ -줄리 앨런·358
푸코의 윤리학과 포함·360 | 학계를 위한 윤리적 프로젝트·365 | 포함은 아직인가?·372 | 장애 학생들의 위반 돕기·373 | 포함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375
젠더 경찰-캐스린 폴리 모건·377
지시: ‘실화’ 키를 누르시오·377 | 지시: ‘젠더 유토피아’ 키를 누르시오·378 | 지시: ‘젠더 불안정’ 키를 누르시오·390 | 지시: ‘푸코’ 키를 누르시오·392 | 지시: ‘경찰’ 키를 누르시오·394 | 지시: ‘경계’ 키를 누르시오·397 | 지시: ‘트랜스젠더 정치학’ 키를 누르시오·398 | 지시: ‘종료’ 키를 누르시오·407
후주·409
참고문헌·467
글쓴이 소개·511
옮긴이 후기_장애인 운동의 연장통, 푸코 담론을 혁신하라·515
찾아보기·524
편집자 추천글 ▼
우리가 몰랐던 푸코의 장애학
미셸 푸코는 한국에 1990년대에 소개되어 일반대중에게도 알려진 철학자다. 그러나 푸코의 철학이 ‘장애’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푸코의 저서가 번역되고, 푸코에 대한 개론서가 쓰이고, 푸코에 대한 강의와 논쟁이 펼쳐지는 동안 ‘푸코’와 ‘장애’를 연결하여 논의한 책이나 담론이 없었던 것은 푸코의 저서가 지닌 장애와의 연관성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의아한 일이다.
푸코의 철학을 통해 ‘장애’를 고찰한 『푸코와 장애의 통치』의 출간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 책은 ‘정신지체’, ‘손상’, ‘결함’ 등을 갖고 있다고 간주된 이들을 둘러싼 정치, 법률, 제도, 담론을 푸코의 개념과 사유로 분석하고 있다. 각 챕터를 담당한 장애학 연구자들은 임상의학, 광기, 정신분열증, 교육학, 감옥에 대한 푸코의 역사적 연구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배제와 통합의 실천들, 교육학, 건강 담론들을 서로 관련지음으로써 푸코의 텍스트와 사유가 지닌 현재적 가치를 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장애인 운동의 연장통,
푸코 담론을 혁신하라
『푸코와 장애의 통치』는 푸코가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 지점에서 오늘날 ‘사회적 장애 모델’의 한계를 넘어설 필요와 전망을 담고 있다. 사회적 장애 모델에 입각한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금지한 법 제정을 이끌어 냈으며, 장애인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 수 있게끔 여러 복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냈다. 문제는 장애인을 사회에 통합시키는 그 ‘정상화’ 프로그램에 내재하는 또 다른 권력과 담론이다. 정상화 권력과 정상성 담론에 대한 푸코의 비판적 분석이 요청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억압’이나 ‘차별’, ‘배제’라는 단어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장애인의 신체와 품행에 미시적으로 작동하는 권력의 시선과 담론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까닭이다.
『푸코와 장애의 통치』가 지닌 또 다른 ‘미덕’은 후반기 푸코의 연구주제인 ‘통치성’과 ‘자기-돌봄’을 충실히 검토하고 있으며, 푸코의 논의를 구체적인 장애 현실을 분석하는 연장통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전반기 푸코에 갇혀 있는 한국의 지식 사회에 후기 푸코의 시야를 공급할 수 있다. 그리고 푸코가 자신의 책은 아카데믹하고 총체적인 지적 사유의 수단이 아니라 전략, 정찰 등의 명분으로 오로지 투쟁의 현실과 결합되기를 원한 것처럼, 장애인 운동의 전략 수립을 위한 연장통으로 푸코의 사유가 활용되는 방법을 보는 것은 푸코 연구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다. 푸코의 사유는 강단이 아니라 이렇게 운동 현장의 연장통으로 활용되는 방식으로 배워야 한다.
정상화 권력을 넘기 위한 싸움,
그 전략과 의미
무엇보다 이 책은 한국의 장애인 운동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장애인 운동은 목숨을 건 이동권 투쟁을 통해 저상버스,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특수교통 수단을 만들었으며, 탈시설 투쟁으로 장애인 자립생활 센터와 활동지원사 제도, 발달장애인 특수학교와 주간돌봄 센터 등 지역사회 통합 시스템들을 쟁취했다. 사회적 장애 모델에 따라 그들은 장애를 손상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의 산물로 재정의하고, 억압의 사슬을 철폐하고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의 시민으로 살 수 있는 자립 기반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다. 『푸코와 장애의 통치』는 대략 20년 일찍 그 과정을 밟아 온 영미권 장애인 운동에서 새롭게 제기된 과제가 무엇인지 가르쳐 줄 것이다. 정상화 프로그램으로 지역 사회에 형식적으로 통합된 이후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는 무엇인지, 정상화 권력과 정상 담론을 넘어서는 싸움이 갖는 의미와 전략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꾸는 싸움은 자기를 변화시키는 싸움이라는 것, 그래서 지배적 통치체제와의 싸움은 그와 다른 새로운 자기-통치 방법과 집합적 주체 형성을 발명하고 실험하는 과정이어야 함을 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