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심연  삶과 이야기 사이

사이 시리즈 11

오윤호 지음 | 2017-08-10 | 240쪽 | 10,800원


이야기를 추구하고 즐기는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도, 최첨단의 인공지능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존재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내면화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에 대한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이야기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지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인간 진화의 근원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으로서의 삶과 허구로서의 이야기의 이중나선을 선회하며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심연』은 이토록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와 이야기 속 인물들을 서사이론의 틀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소설과 영화, 게임 등 다양한 텍스트 속에서 ‘허구의 인물들’이 생을 욕망하고 미궁에 빠진 삶의 경로를 탐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뚫고 이야기 밖으로 탈주를 꿈꾸는 장면들을 분석하면서, 저자는 이야기하기가 가지고 있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기능을 보여 주고자 한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오윤호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로 20세기 문화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던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SF문학비평 및 다매체 시대의 장르문학에 대한 연구도 심화하고 있다. 연구서로는 「현대소설의 서사기법」, 「이야기의 심연」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최인훈 문학의 기원과 진화론적 상상력」과 「인간을 매혹한 감정기계」 등이 있다. 
차례 ▼

머리말

1장·삶으로서의 이야기하기
1. 이야기하기와 경쟁
2. 뫼비우스의 심연 응시하기
3. 이야기 주체의 초월욕망과 서사 장

2장·어떤 죽음과 추리 경쟁
1. 자살인가? 타살인가?
2. 사건의 유효성과 ‘미궁’
3. 다원적 진술과 실존적 자살
4. 중층 구조와 정치적 타살

3장·놀이하는 인간
1. ‘놀이’와 기호학
2. ‘훔치기’와 아픈 성장의 비밀
3. 일탈과 유희의 ‘자위’
4. 기호학적 놀이와 생의 비의

4장·살아 있는 서사적 은유
1. 서사와 은유
2. 다중 이야기선과 ‘눈’의 메타성
3. 욕망 대상인 ‘강’과 낭만적 시선
4. ‘돈’과 ‘얼굴’이라는 은유
5. 1960년대의 감수성

5장·우울한 목소리, 환멸의 자의식
1. 재현으로서의 남성 우울증
2. ‘썩은 음부’에 대한 환멸과 불안
3. ‘아이’와 ‘도깨비’라는 환상
4. 상징적 강간과 훼손된 거래 윤리
5. 제도화된 타자로서의 ‘남성’

6장·훔쳐보며 젠더하기
1. 극사실적 묘사와 동성애
2. 오이디푸스적 욕망의 전유와 유동적 섹슈얼리티
3. 가학적 훔쳐보기와 분열증적 욕망
4. 차가운 렌즈의 시선과 나르시시즘적 섹슈얼리티

7장·트랜스휴먼의 목소리
1. 진화론과 인간 진화
2. 연금술적 기계인간: 『프랑켄슈타인』
3. 나노 우주 속 트랜스휴먼: <트랜센던스>
4. 인간 이후의 인간

8장·게임 사건과 규칙
1. 게임 서사학의 필요성
2. 우연적 사건이 내포한 필연성
3. 게임의 경쟁과 놀이 유흥성
4. 게이머의 욕망과 종결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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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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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삶 사이의 경계 흔들기

삼국유사 속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천일야화 속 ‘살아남기 위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의 1장에서 저자는 이야기하기의 조건 혹은 틀을 명료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시와 영화, 민담과 에세이 등 다양한 텍스트 속에 나타나는, 삶과 밀착되어 있는 이야기의 속성을 밝히면서, 이야기의 여러 국면들(‘살아남기 위한 이야기 욕망’, ‘이야기 속 인물들 간의 경쟁’, ‘자신을 얽매는 세계(삶)를 넘어서려는 욕망과 의지의 표출로서의 이야기’ 등)을 예시하고 있는데, 이는 삶과 이야기를 나누는 경계를 유연하게 만들고 서로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2장은 1966년 이어령이 발표한 「장군의 수염」이라는 흥미로운 텍스트를 분석하고 있다. 두 명의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형식의 이 소설에서는 한 젊은이의 ‘자살’이 지닌 진실을 파악하고자 하는 과정에서의 ‘이야기의 경쟁’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이야기하기가 다른 이야기하기와 경쟁에 놓일 때, 이야기의 진실은 다면화되고 복잡해진다. 이야기하기란 결국 타인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3장은 오정희의 소설들을 ‘놀이’라는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읽고 있다. 많은 평론가들이 모호함과 다층성의 작가로 꼽고 있는 오정희의 단편들(「동경」, 「완구점 여인」, 「유년의 뜰」, 「저녁의 게임」, 「중국인 거리」)을 ‘놀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석하면서 저자는 놀이가 시간을 낭비하는 쓸모없는 일이 아니라 삶의 균열과 정체성을 인식하기 위한 적극적인 ‘이야기 행위’임을 밝혀낸다. 오정희 소설 속 인물들이 ‘놀이’를 통해 생의 균열과 왜곡을 치유하려고 하는 노력을 중심적으로 다루면서, 삶, 놀이, 소설의 겹침 속에서 생의 환멸을 또한 드러내고자 한다.
4장에서 저자는 ‘서사’와 ‘은유’라는 일견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결합을 시도한다. ‘서사적 은유’는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난 서사적 주체가 정체성을 이해하고 맥락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저자는 이 개념을 서정인의 「강」을 분석하면서 더 분명히 하고자 한다. 소설 속 도회 사내가 겪게 되는 파편화된 일상의 기억들과 이야기 전개상 모호한 ‘강’과 ‘눈’을 ‘기법으로서의 서사적 은유’로 이해하면서 은유와 서사에서의 플롯이 언어적이면서도 구조적인 차원에서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욕망과 초월의 이야기하기

이 책의 5장과 6장은 각각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과 천운영의 소설들(「멍게 뒷맛」, 「바늘」,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월경」)에 나타난 젠더와 욕망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성적 욕망은 욕망 대상에 대한 동일시이자, ‘그’가 되고자 하는 변신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두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고 있다. 우선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에서는 결혼과 성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도시 남성에 주목하여 그가 쏟아내고 있는 삶에 대한 통속적인 환멸과 멜랑콜리한 독백을 주로 분석하고 있다. 천운영의 소설들에서는 동성애 모티프에 주목하여 젠더 정체성의 문제와 타자와의 동일시를 꿈꾸며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 인물들의 퀴어적 욕망을 분석하고 있다.
이렇듯 다른 것이 되고자 하는 초월의 욕망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영화 <트랜센던스>(윌리 피스터, 2014)에서도 나타난다. 이 책의 7장은 인간이 아닌 인간(프랑켄슈타인)이 (생물학적 사회학적)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의지와 이어지는 파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는 허구의 대상이었던 괴물, 타자, 인공지능이 주체화되는 일련의 인물형상화 속에서, 인간의 본질과 존재를 초월하고자 하는 상상력을 ‘이야기하기’의 욕망과 연결시켜 살펴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8장은 게임에 내재된 이야기성을 분석하고 있다. 게임은 ‘사건’의 다양한 위상과 존재성을 기반으로 하여 상대를 두고 벌이는 경쟁이다. 주로 윷놀이의 이야기성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게임 속에 내재한 사건과 서사의 흐름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놀이뿐만 아니라 첨단의 멀티미디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유의미한 분석틀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