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인물 시리즈 9

박찬국 지음 | 2013-09-25 | 296쪽 | 15,000원


〈그린비 인물시리즈 he-story〉의 아홉 번째 책으로, 현대 철학의 거대한 뿌리이자, 난해함으로 악명 높은 하이데거의 철학과 사상을 높은 산에서 바라보듯 넓은 시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삶 전반을 톺아보며, 그의 사유가 현대 철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드러내고, 일반 독자들이 쉽게 다가서기 힘들었던 하이데거 사유의 개념들을 하나하나 예를 들어 설명하며, 독자들에게 하이데거의 사상에 좀더 가깝게 다가가도록 한다. 특히 이 책은 하이데거의 사상을 30년 가까이 깊이 연구해 온 저자가 유려한 우리말로 하이데거를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하이데거의 사유의 흐름, 그리고 삶의 변곡점에서 사유의 전회가 일어나기까지 꼼꼼하게 설명한다.


저·역자 소개 ▼

저자 박찬국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철학이 주요 연구 분야로 원효학술상, 운제철학상, 반야학술상 등을 받았다. 힘들고 지친 많은 현대인들에게 철학을 통해 창의적 영감과 활기를 불었던 박찬국 교수가 이번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눈높이 철학 수업을 선사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힘을 키우게 하여 사고력과 논리력을 확장시키고, 나아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관과 중심을 가질 수 있도록 친절하고 재미있게 철학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 논문 등을 발표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차례 ▼

책머리에

1부 ― 지금 왜 하이데거인가?
1. 고향상실의 시대
2. 고향상실과 하이데거의 존재물음

2부 ― 존재물음과 불안에의 용기 : 초기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
1. 『존재와 시간』의 저술과 프라이부르크 대학 정교수가 될 때까지
하이데거 철학의 모태, 메스키르히
수업시대
사강사 시절에서 프라이부르크 대학 정교수가 될 때까지
2. 『존재와 시간』에 나타난 초기 사상
『존재와 시간』: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
실존으로서의 인간
세상 사람과 비본래적인 실존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
세계와 존재자의 근원적인 개현
근본기분과 세계의 근원적인 개현
불안과 죽음에의 용기
죽음과 무 그리고 존재
양심의 소리
시간성: 현존재의 존재의미
영원의 경험과 순간
존재와 시간 그리고 전통형이상학의 해체
우상숭배의 파괴와 철학의 과제

3부 ― 나치혁명의 소용돌이에서
: 사상적 전회 이후(1930년)부터 독일 패전까지의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
1. 나치참여 이후부터 독일 패전까지
하이데거의 나치참여가 갖는 성격
나치참여의 역사적 배경과 동기
나치참여 행적
총장직 사퇴의 전말
기술문명·나치즘과의 사상적 대결
독일 패전 후의 시련 속에서
2. 현대기술문명과의 대결 : 사상적 전회 이후부터 독일 패전까지의 하이데거의 사상
그리스철학에서부터 기술시대까지의 존재의 역사
현대기술문명의 위기
현대기술문명의 본질적 특성들
현대기술문명의 극복과 하이데거의 존재물음
존재의 역운(歷運) 그리고 철학과 시의 의미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4부 ― 소박한 자연과 사물에로의 귀환
: 대학에 복귀한 후부터 서거(逝去)까지의 생애와 사상
1. 대학에 복귀한 후부터 서거까지
2. 말년의 사상 : 소박한 자연과 사물에로의 귀환
사방과 사물
존재와 시
시어와 정보언어
들길의 소리
하이데거 사상에 대한 오해의 비판적 검토

5부 ― 하이데거와 동양사상
1. 하이데거와 동양사상의 대화
2. 하이데거와 불교 그리고 노장
깊은 권태와 불안 그리고 무상함
존재와 공(空) 그리고 도: 방념과 무심 그리고 좌망

맺으면서 : 하이데거 철학의 의의

용어 해설
하이데거 연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편집자 추천글 ▼

『존재와 시간』에서 「들길」의 사유까지
한 권으로 읽는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


모든 철학은 자신의 시대와의 싸움이다. 모든 철학은 자신의 시대와 대결하면서 자신의 시대가 계속되어야 할지 아니면 변혁되어야 할지에 대해 결단을 내린다. 하이데거는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다. 20세기의 거의 모든 철학적 조류, 실존철학, 현상학, 해석학에서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 구조주의까지, 하이데거에 영향 받지 않은 사유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철학뿐 아니라, 문학, 심리학, 신학, 생태학 등에서도 하이데거가 미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하이데거의 저서를 읽은 이들의 반응은 흔히 극렬한 긍정과 부정으로 나뉜다. 하이데거의 철학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하이데거는 단순한 철학자를 넘어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열어 보이는 예언자인 반면에,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하이데거가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소박한 자연에로의 회귀를 요구했던 시대착오적인 낭만주의자라고 주장한다.
<그린비 인물시리즈 he-story> 9권인 이 책은 하이데거의 삶과 사유 전반을 하이데거와 처음 만난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소개한 책이다. 하이데거의 사상을 30년 가까이 깊이 연구해 온 박찬국 교수가 하이데거 철학의 전모를 톺아보며, 그가 현대 철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의 철학이 동양의 사상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특히 저자가 10년 만에 펴낸 이 수정증보판은 하이데거와 동양사상과의 접점을 드러내고, 하이데거의 심원한 후기 사상과 시학을 더욱 면밀히 살핌으로써, 초판이 다 담지 못했던 하이데거 사유의 다채로운 면을 보여 준다. 유려한 우리말로 쓰인 이 책은, 그간 독일에서 출간되거나 한국에 번역 소개된 하이데거의 주요 저서들, 하이데거에 관한 국내 연구서들의 목록을 보충함으로써, 하이데거와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하이데거의 삶과 사유 : 『존재와 시간』에서 나치참여로, 다시 기술문명 비판까지

하이데거는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중요한 변곡점에서 사상적 전회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후설을 만나 현상학적 방법을 배우고, 딜타이·베르그송·지멜이 말하는 생철학을 통해 그의 존재론을 만들어 갔다. 유럽에 광풍처럼 불었던 볼셰비즘을 바라보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들을 기술적인 부품으로 전락시키고 통제하려는 전체주의의 전형이라고 보았으며, 볼셰비즘 안에 현대기술문명 세계가 들어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기술문명 체계는 기술지배가 극단적으로 구현된, 그리하여 결국 서구문명 자체가 사멸로 이르는 길이었다. 하이데거는 이렇듯, 만남과 마주침, 그의 삶을 감싸고 있는 시대의 조류 안에서 자신의 사유의 방향을 수정해 왔다. 나치에 참여하던 철학자에서 추후 나치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하기까지 하이데거의 삶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 책은 하이데거 사유가 하나로 수렴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길목에서 사유의 넓이와 폭을 변화시켜 왔던 하이데거의 사상을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또한 사유의 방향점을 좀더 명료하게 알 수 있도록 책을 구성하였다.
첫째 부분, ‘지금 왜 하이데거인가’는 하이데거 철학의 근본문제를 개관하며, 오늘날 하이데거의 사상을 되새기는 역사적 의미를 살핀다. 둘째 부분, ‘존재물음과 불안에의 용기’는 하이데거가 그의 대저 『존재와 시간』을 저술하고 프라이부르크 대학 정교수가 되기까지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다. 여기서는 흔히 초기 하이데거의 사상이라고 불리는 사유의 여정이 문제가 되는데,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셋째 부분 ‘나치 혁명의 소용돌이에서’는 하이데거가 나치에 가담하면서부터 독일이 패전할 때까지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다. 하이데거의 나치참여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나치참여와 하이데거는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독자들에게 의문을 던지는 문제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하이데거의 나치참여를 했던 이유, 나치참여로 인해 그가 어떤 것들을 추구하려 했는지 독자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명한다. 넷째 부분 ‘소박한 자연과 사물에로의 귀환’은 독일 패전 이후부터 하이데거가 죽을 때까지의 생애와 사상을 그의 시학과 더불어 다룬다. 마지막인 ‘하이데거와 동양철학의 대화’는 하이데거와 동양의 불교 및 노장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을 다루고 있다. 하이데거는 서양의 전통 형이상학을 넘어서려고 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동양철학에 접근하고 있었다. 독자들은 여기서 하이데거의 시선을 통해 동양철학을 보고, 동양철학의 시선을 통해 하이데거 철학을 봄으로써 양자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적인 사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실의 시대 : 하이데거에게 길을 묻다!

앞서 말했듯 하이데거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대문명을 비판해 왔다. 그렇다면 하이데거의 시선에서 우리가 속해 있는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하이데거는 “세계는 황폐하게 되었고, 신들은 떠나 버렸으며, 대지는 파괴되고, 인간들은 정체성과 인격을 잃은 채 대중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말한다. 이제 발전된 세상에서는 전쟁이 반복되고, 국가는 경제만을 생각하며, 항시적인 구조조정으로 인간을 부품처럼 사용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현대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며, 이런 현대문명의 폐해가 끊임없이 문제시되는 이유는 인간이 고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 한다. 하이데거에게 고향은 단순히 돌아가야 할 곳이 아니라, 현대기술문명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현재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자들을 계산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동원하는 세계인 반면에, 고향은 인간과 모든 존재자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존재를 발현하면서도 서로 간의 애정과 조화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기실 하이데거에게 단순 소박한 자연을 망각한 채, 인위적이고 복잡한 기술만을 추구하는 우리의 세대는 가장 궁핍한 세대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상실해 온 것들에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기술문명의 발전만으로 현대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이런 현대인의 고정관념처럼 굳어 있는 생각에 일침을 가하듯, 단순 소박한 자연을 ‘존재’라고 부르며, 존재를 망각하고서도, 그 망각 자체를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비판한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바로 이 망각의 사태에 개입한다. 현대인들에게 존재를 상기시키고, 이러한 존재 기반 위에 각자의 고향을 건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향은 단순히 분배 정의가 실현되고, 사회를 자유롭고 정의롭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단순 소박한 자연의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존재자와 인간들이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것에서 올 수 있다. 하이데거가 걸어 왔던 사유의 도정에는 사상적 전회가 여러 번 있었을 만큼 상당한 기복이 있었지만, 하이데거의 사유는 궁극적으로는 작위적인 세계, 인위적인 세계가 지배하는 과학기술시대에서 단순 소박한 자연과 어우러진 고향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소박한 고향과 자연을 말하면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그는 주장해 온 것이다.

존재의 근본물음 : 21세기에 다시 묻는 ‘진보’의 의미

지난 20세기는 흔히 과학기술과 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이해된다. 그러나 기술적 진보라는 화려한 외관의 이면에는 한갓 계산 가능한 ‘인적 자원’으로 취급되어 온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흐르고 있고, 자유와 평등, 정의와 인류애를 내세운 이데올로기들은 이 무참한 닦달을 포장하고 숨기기에 급급하였다.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희망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 이데올로기 투쟁은 역사의 한 장으로 남았지만, 대신 그보다 더 집요한 경제 전쟁이 우리를 조여오고 있다. 온 세계가 총체적인 구조조정을 통해서 모든 인간을 적재적소에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부품으로 만들기 위해 진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실의 물질적 필요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윤’이 목적이 되고 ‘인간’은 수단이 된 이 시대가 과연 진정으로 우리가 원했던 것일까?
하이데거의 철학적인 근본물음인 존재물음(Seinfrage)은 이러한 현대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절박한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려 만들었던 문명이 도리어 인간을 그 부속품으로 만드는 시대에 망각된 것은 무엇인지, 우리의 삶이 지반으로 삼는 그 소박한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세계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새로운 시대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지 반문할지도 모른다. 세계를 해석하는 것보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이제 의구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세계를 진정으로 진보시키기 위해서는, 진정 더 나은 곳으로 우리의 사회를 이행시키기 위해서는, 세계를 변화시키기에 앞서 세계를 그 ‘근원적 있음’으로부터 귀 기울여 해석해야 한다고, 하이데거는 나직이 속삭인다. 그 말에 귀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이 ‘극단의 시대’의 밤을 밝힐 등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