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

트랜스 라틴 16

후안 호세 세브렐리 지음, 조영실·우석균 옮김  | 2022-03-18 | 408쪽 | 23,000원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는 아르헨티나의 문화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로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후안 호세 세브렐리의 저작이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특정 도시를 중심으로 도시와 도시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맺는 관계, 도시 공간의 기능 변화 등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을 전한다. 더불어 이 책은 정치학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일상생활과 소외’라는 제목에서 ‘일상생활’은 일상사 연구에 있어 유용한 용어이며 ‘소외’는 자본주의하에서 물화되고 파편화되는 인간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간학제적 분야와 거대 담론이 교차되는 제목은 그 자체로 세브렐리 특유의 ‘가로지르기식 사유’를 표방한다. 또한 1964년 출간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와 2003년 출간된 『위기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각각 ‘제1권’과 ‘제2권’으로 한 권의 책에 묶여 있는 구성이 책의 독특함을 더한다. 


저·역자 소개 ▼

저자 후안 호세 세브렐리 Juan Jose Sebreli
아르헨티나의 에세이스트이자 문화평론가로, 2015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을 졸업했고, 현재 ‘연방주의와 자유 재단’의 학술자문위원이다. 1994년과 2004년 두 차례 코넥스 상을 수상했고,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네 명의 아이콘을 분석한 『코미디언과 순교자』(2009)를 통해 스페인의 카사 데 아메리카(Casa de America)가 당대 사회에 대한 뛰어난 성찰을 담은 글에게 수여하는 이베로아메리카 논쟁작 상을 수상했다. 1950년대 문화잡지의 양대 산맥 『수르』(Sur)와 『콘토르노』(Contorno)의 칼럼니스트였으며, 공식제도권이나 강단과는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 평론가로 활동했다. 군부정권 시기에 수형 생활을 했으며, ‘그림자 대학’이라는 비밀 학습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세브렐리는 사회학, 정치 이론, 현대사, 철학 등의 여러 분과학문 들을 에세이적 글쓰기를 통해 교직시킨다. 전문화된 분과학문의 틀보다는 상호 학제적인 방식을 선호하지만, 다루는 주제는 거의 언제나 아르헨티나의 현실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1964)를 통해 20세기 전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상 사회학을 시도했으며, 통섭적인 시도로 출간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3년 출간된 『위기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20세기 후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상 사회학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마르티네스 에스트라다, 무용한 반란』(1960), 『페론주의의 상상적 욕망』(1983), 『근대성의 포위』(1991), 『축구의 시대』(1998), 『아르헨티나 정치사상 비판: 위기의 기원』(2002) 등이 있다. 

역자 
조영실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및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동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학을 스페인 정부 장학생으로 유학하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에서 대한민국 정부 연구과정 장학생으로 수학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과 부산외대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 숙명여대, 홍익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라틴아메리카 문화산업 및 도시 연구이다.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주요 도시의 생성과 근대 도시화 과정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 『차이를 넘어 공존으로: 스페인어권 세계의 문화 읽기』(공저, 2007)가 있고, 역서로 『보르헤스』(공역, 1996), 『세피아빛 초상』(2005), 『세상에서 나가는 문』(2006), 『라틴아메리카 국민국가 기획과 19세기 사상』(공역, 2008), 『노새』(2009), 『끝없는 사랑의 섬』(2010), 『라틴아메리카 문제와 전망』(공역, 2012)이 있다.

역자
 우석균
서울대학교 서어서문과를 졸업하고, 페루 가톨릭대학교와 스페인 마드리드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각각 라틴아메리카 문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논문 집필 중에는 칠레의 칠레 대학교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에서도 수학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에 재직 중으로 출판과 국제 교류에 역점을 둔 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AALA문학포럼(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문학포럼)의 라틴아메리카 문학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쓰다 만 편지』, 『잉카 in 안데스』,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를 썼으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칠레의 밤』, 루이사 발렌수엘라의 『침대에서 바라본 아르헨티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사랑과 다른 악마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밖에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 『현대 라틴아메리카』, 『마술적 사실주의』를 공역했으며,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라틴아메리카 석학에게 듣는다』와 『역사를 살았던 쿠바』 등을 편찬했다. 


차례 ▼

2003년판 서문 7

제1권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 51
I. 집필 목적 53
II. 부르주아지 63
환경 | 과두지배계급과 중산계급 | 사회적 게임 | 구부르주아지와 신 부르주아지
III. 중산계급 106
주의주의(主意主義) | 도덕주의 | 중산계급과 상류 부르주아지 | 사생활 보호 신화 | 변화 | 중산계급과 페론주의 | 자동차라는 토템
IV. 룸펜 152
불량배 무리 | 룸펜과 정치 | 변천
V. 노동자 184
구(舊)노동자 | 변화 | 바리오라는 마술적 세계 | 통합과 고독 | 소외와 탈소외
부록 가르델 신화 217

제2권 위기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229
서문 231
I. 일상생활 238
새로운 중산계급 | 하위 계급 | 가족 | 성 해방 | 진찰실로 간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 | 밤의 하위문화 | 청년 하위문화 | 폭력과 범죄 대중문화
II. 도시 322
도심과 바리오의 쇠락 |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서 | 사라지는 보행자 공적 공간을 둘러싼 분쟁 | 쇼핑몰 | 카페 | 소음의 포로들 | 파편화 | 도시와 문명

감사의 말 397
옮긴이의 말 399
지은이 소개 405
옮긴이 소개 406


편집자 추천글 ▼

매혹과 환멸의 현기증 나는 교차,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통해 파헤치는 ‘도시’의 진정한 의미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는 아르헨티나의 문화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로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후안 호세 세브렐리의 저작이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특정 도시를 중심으로 도시와 도시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맺는 관계, 도시 공간의 기능 변화 등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을 전한다. 더불어 이 책은 정치학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일상생활과 소외’라는 제목에서 ‘일상생활’은 일상사 연구에 있어 유용한 용어이며 ‘소외’는 자본주의하에서 물화되고 파편화되는 인간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간학제적 분야와 거대 담론이 교차되는 제목은 그 자체로 세브렐리 특유의 ‘가로지르기식 사유’를 표방한다. 또한 1964년 출간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와 2003년 출간된 『위기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각각 ‘제1권’과 ‘제2권’으로 한 권의 책에 묶여 있는 구성이 책의 독특함을 더한다.

“대국이 되지 못한 나라의 대도시”
세계화의 운명을 타고난 도시의 정체성


‘남미의 파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이자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국경을 이루는 라플라타강 하구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1890년대부터 독립선언 100주년이 되는 1910년대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맞이한 아르헨티나에는 수많은 이민자와 유럽의 전쟁 및 박해를 피해 건너온 망명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1914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구의 절반이 외국인일 정도였다. 보르헤스가 “진정한 아르헨티나 전통은 모든 서구문화”라고 할 만큼, 지속적으로 유럽문화의 영향권에 있으면서 다양한 언어, 국적, 종교 등이 혼합된 개방성은 곧 항상 “대국이 되지 못한 나라의 대도시”로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체성이 되었다.
그러나 물론 급작스러운 성장의 이면에는 이민자와 지방에서 이주해 온 도시 빈민의 애환이 있었다. 즉,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역동적인 도시이자 아르헨티나인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갈등의 공간, 온갖 사회적 불평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교차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러한 ‘애증’의 감정이 있었기에 아르헨티나에서도 도시사회학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제1권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1964)는 혼합과 혼종의 중심지였던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20세기 전반기에 경험한 일상문화를 분석함으로써 부에노스아이레스인의 소외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저작을 대대적으로 수정해 새 판본을 내려던 세브렐리는, 책이 출간된 시공간적 배경과 그에 따른 영향력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위기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2003)라는 별도의 책을 썼다. 여기에서는 90년대 후반기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대상으로 에로티시즘, 성별, 청년, 의복 등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주제들을 기준 삼아 장을 나누고, 제1권에 결여되어 있던 도시 이론을 보충하였다. 그리고 두 저작의 결합을 통해, 과거와 현재라는 양 시대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모두 살아 본 사람으로서 그는 현재를 통해 과거를 복원하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판단하는 시도를 한다. 그가 분석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단순히 성찰의 외적 대상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함께 변화하는 생명력을 지닌 공간이다.

도시를 걷는 사람들과
그 사이를 떠다니는 진실들을 포착하기


누구나 한 번은 도시를 걷는다. 우리가 걷는 도시는 매일같이 다니는 익숙한 길이거나 생전 처음 와 보는 낯설고 무서운 곳일 수도, 또는 우연들이 뒤섞여 발견된 새로운 모험의 공간일 수도 있다. 세브렐리는 정식으로 사회학을 전공한 학자는 아니지만, 열렬한 ‘도시 산보객’으로서의 경험과 영감에 기초해 이 책을 썼다. 즉 젊은 시절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 카페, 영화관 등을 구석구석 쏘다닌 여정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는 도시를 분석하기 위해 엄밀한 사회학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도시는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는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인식하에 에세이적인 글쓰기 방법을 동원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상 사회학’을 전개한다. 더불어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세계의 문학, 영화, TV 프로그램, 예술가 등을 풍부하게 인용하는 해박함은, 독자로 하여금 생동하는 도시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는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세브렐리는 ‘도시의 종말’이라는 현대 도시에 대한 묵시론적 관점을 반대한다. 그는 도시가 역사적으로 국민국가보다 먼저 존재했고 또 그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제2권 『위기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는 시기적인 차이나 도시적 공간 자체의 변모 등으로 인한 대중문화의 융성,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갈등, 쇼핑센터로 대표되는 소비문화, 도시민과 도시적 공간의 파편화 등에 주목하여 전 지구화 시대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보여 준다. 전 지구화로 말미암아 우리의 일상생활은 ‘세계적인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지역적인 것’을 수용하게 되었고, 나아가 지역적인 것을 세계로 확장시킨다는 ‘글로컬’(glocal)의 시대가 도래했다. 현대 도시가 모두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익명성을 바탕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통념을 그는 거부하는 그는 “오직 군중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고 낯선 이들과의 불가피한 접촉을 통해서만 인간의 유형과 풍습의 다양성을 용인하는 인성의 배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현대 도시의 문화는 개인이 자신의 연결망을 직접 만들어 나가는 한편 인간관계에서의 사회적 대립의 불가피함 역시 받아들이는 것, 사(私)와 공(公), 개인과 사회, 주관과 객관, 로컬과 보편이 엮이고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도시와 도시 거주자들의 미래는 공동체들의 경계를 초월하는 문제이며, 인류의 운명 그 자체와 관련되어 있는” 중대한 문제가 된다.

도시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하여,
일상의 소외에서 벗어나 삶을 향유하기


일상성의 소외는 진부함, 어리석음, 추악함, 지루함, 패배감 등에 잠겨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모든 사회계급이 겪는 일이지만 소외의 방식은 물론 다르다. 대중계급에게는 필수불가결한 것들에 대한 불만족 및 욕구, 중산계급에게는 과시하려는 긴장감과 쟁취한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상류계급에게는 의례적인 행사들의 반복에서 오는 따분함과 남아도는 부를 창조적 활동 없이 향유하는 데 따른 권태이다. _본문 중에서

그러나 극단적인 탈소외의 추구는 자칫 또 다른 형태의 소외를 불러올 수 있다. 결국 세브렐리는 일상성을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하게 혁신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소비가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을 수용하되 도시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독특한 문화적 공간을 통해 도시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마치 현대의 도시가 그러해야 하듯이, 우리의 삶을 내밀하게 가꾸면서도 개방성을 지니고, 정체성을 보존하면서도 변화를 수용하는 ‘균형’의 길을 추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