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
트랜스 소시올로지 29
마이클 레이섬 지음, 권혁은·김도민·류기현·신재준·정무용·최혜린 옮김 | 2021-08-03 | 448쪽 | 25,000원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는 근대화론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제3세계의 관계, 냉전과 제국주의, 냉전 이데올로기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트랜스내셔널/지구적 전환을 대표하는 저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비견할 이데올로기로서 미국이 내세운 ‘근대화론’의 이면을 살피며, 세상을 개혁하겠다는 희망과 신념이 어떻게 폭력과 억압의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저·역자 소개 ▼
저자 마이클 레이섬 Latham, Michael E.
미 UCLA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포드햄 칼리지(Fordham College)와 그린넬 칼리지(Grinnell College)에서 교수와 학장으로 재직했고, 현재는 하와이 푸나호우 스쿨(Punahou School)의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올바른 혁명』(The Right Kind of Revolution: Modernization, Development, and U.S. Foreign Policy from the Cold War to the Present), 공저 『성장을 일으키기』(Staging Growth: Modernization, Development, and the Global Cold War) 등이 있다.
역자 권혁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한미관계사·냉전사·정치사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1950년대 은행 귀속주 불하의 배경과 귀결」, 「5·16군사정부기 미 대한원조정책의 성격과 AID-유솜의 역할: 초기 울산공업단지 건설과정을 중심으로」, 「1960년대 미 대한경찰원조의 전개: 경찰 ‘현대화’와 대반란전(counterinsurgency) 수행」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역자 김도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현대사를 전공하며, 남북관계사·한미관계사·냉전사·구술사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1950년대 중후반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의 전개와 성격」, 「미군정기 아동노동법규와 미성년자노동보호법」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구술로 본 한국현대사와 군』(공저)을 썼다.
역자 류기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쏘련을 향하여 배우라: 1945~1948년 朝蘇文化協會의 조직과 활동」, 「한국전쟁기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의 북한 현지 조사와 북한 연구의 태동」, 「주월한국군의 대민관계: 참전 군인들의 구술 증언을 중심으로」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냉전사의 시각에서 남북한 현대사를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있다.
역자 신재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한국현대사 전공으로 「1965년 전후 한일 양국의 동아시아 지역주의 구상과 미국」, 「1970년 전후 공해(公害)의 일상화와 환경권 인식의 씨앗」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1960~70년대, 나아가 1980년대까지 확대해 탈식민과 냉전의 교차 양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역자 정무용
한국현대사 연구자. 주로 1960~70년대 사회사를 연구하며 1980년대까지 연구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야간 통행금지 해제 직후의 풍속도」, 「1960년대 후반 인력개발의 추진과 지능·적성검사의 도입」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사소하고 잡다한 것들의 변화를 통해 역사적 변화를 추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역자 최혜린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6·25전쟁기 미군의 포로 정책 전개 양상: 전범조사부와 민간정보교육국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 통사(通史)에 나타난 전근대 피지배층 저항 서술의 변화」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 근현대 교육의 변화와 이에 미친 냉전의 영향력에 관심을 갖고 있다.
미 UCLA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포드햄 칼리지(Fordham College)와 그린넬 칼리지(Grinnell College)에서 교수와 학장으로 재직했고, 현재는 하와이 푸나호우 스쿨(Punahou School)의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올바른 혁명』(The Right Kind of Revolution: Modernization, Development, and U.S. Foreign Policy from the Cold War to the Present), 공저 『성장을 일으키기』(Staging Growth: Modernization, Development, and the Global Cold War) 등이 있다.
역자 권혁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한미관계사·냉전사·정치사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1950년대 은행 귀속주 불하의 배경과 귀결」, 「5·16군사정부기 미 대한원조정책의 성격과 AID-유솜의 역할: 초기 울산공업단지 건설과정을 중심으로」, 「1960년대 미 대한경찰원조의 전개: 경찰 ‘현대화’와 대반란전(counterinsurgency) 수행」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역자 김도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현대사를 전공하며, 남북관계사·한미관계사·냉전사·구술사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1950년대 중후반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의 전개와 성격」, 「미군정기 아동노동법규와 미성년자노동보호법」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구술로 본 한국현대사와 군』(공저)을 썼다.
역자 류기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쏘련을 향하여 배우라: 1945~1948년 朝蘇文化協會의 조직과 활동」, 「한국전쟁기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의 북한 현지 조사와 북한 연구의 태동」, 「주월한국군의 대민관계: 참전 군인들의 구술 증언을 중심으로」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냉전사의 시각에서 남북한 현대사를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있다.
역자 신재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한국현대사 전공으로 「1965년 전후 한일 양국의 동아시아 지역주의 구상과 미국」, 「1970년 전후 공해(公害)의 일상화와 환경권 인식의 씨앗」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1960~70년대, 나아가 1980년대까지 확대해 탈식민과 냉전의 교차 양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역자 정무용
한국현대사 연구자. 주로 1960~70년대 사회사를 연구하며 1980년대까지 연구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야간 통행금지 해제 직후의 풍속도」, 「1960년대 후반 인력개발의 추진과 지능·적성검사의 도입」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사소하고 잡다한 것들의 변화를 통해 역사적 변화를 추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역자 최혜린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6·25전쟁기 미군의 포로 정책 전개 양상: 전범조사부와 민간정보교육국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 통사(通史)에 나타난 전근대 피지배층 저항 서술의 변화」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 근현대 교육의 변화와 이에 미친 냉전의 영향력에 관심을 갖고 있다.
차례 ▼
추천사 7
감사의 말 9
한국어판 서문 12
1장 이데올로기로서의 근대화: 문제에 접근하기 17
2장 미국의 사회과학, 근대화론, 그리고 냉전 53
3장 근대성, 반공주의, 그리고 진보를 위한 동맹 139
4장 평화를 위한 근대화: 평화봉사단, 지역사회개발 그리고 미국의 임무 212
5장 전쟁 중의 근대화: 대반란전과 베트남의 전략촌 프로그램 289
결론 392
옮긴이 해제 404
참고문헌 417
지은이/옮긴이 소개 447
감사의 말 9
한국어판 서문 12
1장 이데올로기로서의 근대화: 문제에 접근하기 17
2장 미국의 사회과학, 근대화론, 그리고 냉전 53
3장 근대성, 반공주의, 그리고 진보를 위한 동맹 139
4장 평화를 위한 근대화: 평화봉사단, 지역사회개발 그리고 미국의 임무 212
5장 전쟁 중의 근대화: 대반란전과 베트남의 전략촌 프로그램 289
결론 392
옮긴이 해제 404
참고문헌 417
지은이/옮긴이 소개 447
편집자 추천글 ▼
종전 후 케네디 정부의 대외원조,
발전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부서진 것들
근대화론의 폭력적 이면에 대하여
한국의 현대사를 논함에 있어 근대화론은 빠질 수 없는 주제다. 한국은 해방 후 줄곧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미국식 근대화론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변용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근대화론자들은 한국 정부의 정치 및 경제 체제 관련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케네디 정부기 대외 원조를 주관했던 미 국제개발처는 한국의 정책 전반에 대한 원조와 자문을 담당했다. 이는 1960~70년대 한국 사회 전반의 근대화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식 근대화 목표가 그나마 실현된 극히 예외적 사례일 뿐이다. 미국 근대화론은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파괴적인 윤리적/도덕적 문제를 야기했던 것이다. 종전 이후 ‘저개발 사회를 진보시킨다’는 단일한 가치 아래 수행된 근대화 정책들은 각 지역의 역사 조건과 문화를 등한시했고, 그 실패를 무력과 강압으로 만회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 책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의 저자 마이클 레이섬은 억압과 폭력을 개혁에의 희망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근대화론이 결국 세계를 특정 가치에 따라 지도하고 통솔하려 한 이데올로기였을 따름이라고 비판한다.
‘발전’이라는 오만과 기만
근대화론은 미국이 탈식민 세계의 조류에 대응해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의 산물이었다. 1961년 케네디 정부가 등장했을 때 제3세계에는 민족주의와 혁명의 물결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40여 개의 신생 독립국은 비동맹 운동을 표방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 소련 등의 열강에게 사회 경제적으로 필요한 원조를 요청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대화론이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특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2장에서, 레이섬은 근대화론을 1950~60년대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 분야가 근대화를 공통의 연구 의제로 상정하여 도출한 이론의 총체라고 설명하며 그것의 형성 과정을 검토한다.
레이섬이 보기에 근대화론은 ‘후진적’ 사회를 근대성의 종점으로 이끌 수 있는 ‘발전된’ 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계몽주의나 사회진화론과 매우 유사한 논리 구조를 가졌다. 근대화론자들은 미국을 근대화가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모델로 설정함으로써 오직 미국의 우월한 위치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만을 기준으로 다른 국가들을 평가했다. 자연스럽게 아직 발전을 이루지 못한 국가들은 미국이 밟은 경로를 뒤따를 것이라고 상정되었다. 그러나 근대화론자들이 설정한 보편적이고 단선적인 발전 단계는 미국이 밟았던 역사적 경로를 ‘과학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미국이 저개발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 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촉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미국의 이타적이고 자애로운 정체성에서 도출된 사명이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는 근대화론자들이 학계와 정부 간의 냉전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들어가고, 급기야 케네디 정부에서 중요한 대외 정책 관련 공직을 맡으면서 미국의 제3세계 정책을 주조하기 시작했다. 근대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통해 제3세계의 민족주의 세력과 저개발 사회를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방향으로 이끌 객관적인 정책 수단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케네디 정부의 가장 중요한 대외 정책으로 꼽히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진보를 위한 동맹, 베트남에서의 전략촌 건설, 그리고 평화봉사단 사업이 추진되었다. 세 정책은 모두 현지인들을 자유주의적/민주주의적 시민, 중앙정부에 애국심을 갖는 국민으로 양성하는 과정이자, 그 사회에 경제적 진보를 가져오는 과정으로 설계되었다.
근대화 너머, 더 나은 전환을 위한 성찰
당연하게도 세 정책은 모두 성공하지 못했으며, 강제적 가치 주입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그러나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는 정책 결정자들이 정책 실패의 징후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각 정책은 현지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제공해 주지도 못했고, 목표한 정치발전과 경제성장을 달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책의 구체적 내용과 실행 과정상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되었을 뿐, 근본적인 가정은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다. 근대화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은, 베트남전쟁이 실패하고 급진적 시민권 운동이 일어난 후에야 시작될 수 있었다. 이러한 맹목성을 보아도 근대화론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비견될 만한 ‘미국의 이데올로기’였음이 드러난다.
이렇듯 객관적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혼동하면 어떤 희생이 발생하는지를 보이며 미국의 대외 정책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보여 준 레이섬의 저작은 트랜스내셔널 전환, 지구적 전환, 담론적 전환을 대표하는 저작으로 평가된다. 이는 냉전과 제국주의의 관계, 냉전의 이데올로기적 속성, 냉전 지식 생산, 미국과 제3세계의 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포괄하는 이 책이 새로운 전환의 모호하고 중첩적인 경계에 위치하며, 그만큼 다층적이고 큰 의미를 지녔다는 점을 이야기해 준다. 특히 근대화론을 발판 삼아 희생과 발전을 거듭한 한국현대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함에 있어서 이 책의 의미가 더욱 클 것임은 물론이다.
발전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부서진 것들
근대화론의 폭력적 이면에 대하여
한국의 현대사를 논함에 있어 근대화론은 빠질 수 없는 주제다. 한국은 해방 후 줄곧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미국식 근대화론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변용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근대화론자들은 한국 정부의 정치 및 경제 체제 관련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케네디 정부기 대외 원조를 주관했던 미 국제개발처는 한국의 정책 전반에 대한 원조와 자문을 담당했다. 이는 1960~70년대 한국 사회 전반의 근대화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식 근대화 목표가 그나마 실현된 극히 예외적 사례일 뿐이다. 미국 근대화론은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파괴적인 윤리적/도덕적 문제를 야기했던 것이다. 종전 이후 ‘저개발 사회를 진보시킨다’는 단일한 가치 아래 수행된 근대화 정책들은 각 지역의 역사 조건과 문화를 등한시했고, 그 실패를 무력과 강압으로 만회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 책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의 저자 마이클 레이섬은 억압과 폭력을 개혁에의 희망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근대화론이 결국 세계를 특정 가치에 따라 지도하고 통솔하려 한 이데올로기였을 따름이라고 비판한다.
‘발전’이라는 오만과 기만
근대화론은 미국이 탈식민 세계의 조류에 대응해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의 산물이었다. 1961년 케네디 정부가 등장했을 때 제3세계에는 민족주의와 혁명의 물결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40여 개의 신생 독립국은 비동맹 운동을 표방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 소련 등의 열강에게 사회 경제적으로 필요한 원조를 요청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대화론이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특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2장에서, 레이섬은 근대화론을 1950~60년대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 분야가 근대화를 공통의 연구 의제로 상정하여 도출한 이론의 총체라고 설명하며 그것의 형성 과정을 검토한다.
레이섬이 보기에 근대화론은 ‘후진적’ 사회를 근대성의 종점으로 이끌 수 있는 ‘발전된’ 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계몽주의나 사회진화론과 매우 유사한 논리 구조를 가졌다. 근대화론자들은 미국을 근대화가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모델로 설정함으로써 오직 미국의 우월한 위치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만을 기준으로 다른 국가들을 평가했다. 자연스럽게 아직 발전을 이루지 못한 국가들은 미국이 밟은 경로를 뒤따를 것이라고 상정되었다. 그러나 근대화론자들이 설정한 보편적이고 단선적인 발전 단계는 미국이 밟았던 역사적 경로를 ‘과학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미국이 저개발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 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촉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미국의 이타적이고 자애로운 정체성에서 도출된 사명이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는 근대화론자들이 학계와 정부 간의 냉전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들어가고, 급기야 케네디 정부에서 중요한 대외 정책 관련 공직을 맡으면서 미국의 제3세계 정책을 주조하기 시작했다. 근대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통해 제3세계의 민족주의 세력과 저개발 사회를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방향으로 이끌 객관적인 정책 수단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케네디 정부의 가장 중요한 대외 정책으로 꼽히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진보를 위한 동맹, 베트남에서의 전략촌 건설, 그리고 평화봉사단 사업이 추진되었다. 세 정책은 모두 현지인들을 자유주의적/민주주의적 시민, 중앙정부에 애국심을 갖는 국민으로 양성하는 과정이자, 그 사회에 경제적 진보를 가져오는 과정으로 설계되었다.
근대화 너머, 더 나은 전환을 위한 성찰
당연하게도 세 정책은 모두 성공하지 못했으며, 강제적 가치 주입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그러나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는 정책 결정자들이 정책 실패의 징후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각 정책은 현지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제공해 주지도 못했고, 목표한 정치발전과 경제성장을 달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책의 구체적 내용과 실행 과정상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되었을 뿐, 근본적인 가정은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다. 근대화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은, 베트남전쟁이 실패하고 급진적 시민권 운동이 일어난 후에야 시작될 수 있었다. 이러한 맹목성을 보아도 근대화론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비견될 만한 ‘미국의 이데올로기’였음이 드러난다.
이렇듯 객관적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혼동하면 어떤 희생이 발생하는지를 보이며 미국의 대외 정책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보여 준 레이섬의 저작은 트랜스내셔널 전환, 지구적 전환, 담론적 전환을 대표하는 저작으로 평가된다. 이는 냉전과 제국주의의 관계, 냉전의 이데올로기적 속성, 냉전 지식 생산, 미국과 제3세계의 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포괄하는 이 책이 새로운 전환의 모호하고 중첩적인 경계에 위치하며, 그만큼 다층적이고 큰 의미를 지녔다는 점을 이야기해 준다. 특히 근대화론을 발판 삼아 희생과 발전을 거듭한 한국현대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함에 있어서 이 책의 의미가 더욱 클 것임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