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소개
5개의 핵심 키워드와 6개의 주제로 읽어내는 니체 철학의 전모!
니체 철학으로 배우는 삶의 기술
니체에게 사랑은 창조와 동의어이다. 친구를 사랑하면 친구를 창조하고, 삶을 사랑한다면 삶을 창조해야 한다. 따라서 운명을 사랑하는 것은 곧 운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에게 운명이란,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숙명’과 같은 것이 아니며, 운명에 대한 사랑 역시 ‘주어진 숙명에 순응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운명이란 ‘내 삶이 놓여있는 필연적 세계’를 의미하며, 운명에 대한 사랑은 내게 주어진 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운명에 대한 창조 의지’, 즉 운명을 창조할 수 있는 힘에의 의지를 말한다.
니체에게 철학이란 삶을 위한 기술,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 강의는 니체의 퍼스펙티브를 따라, 니체의 텍스트를 연구자의 자료가 아니라 삶의 기술로 활용한다. 그것이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가 철학이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웃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 때, 그가 철학을 무어라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철학으로 삶이 달라지고 신체가 바뀌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웃게 될 테니까.
▶커리큘럼
1강) 니체 철학의 지도 그리기 (24년 7월 2일)
“신은 죽었다”(Gott ist tot), 위버멘쉬(Übermensch),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아모르파티(Amor-Fati)는 니체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다. 이 강의는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니체 철학을 개괄한다. 한 번쯤 들어봤던 멋진 아포리즘으로는 그의 철학에 다가갈 수 없다. 이 강의를 듣고 나면 니체를 아포리즘이 아니라 철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 키워드가 안내하는 ‘니체 철학의 지도 그리기’는 니체 철학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좀 더 가볍게 할 것이다.
2강) 신의 죽음과 인간적 우상 (24년 7월 9일)
“신은 죽었다.” 철학사를 통틀어 이토록 강렬한 명제가 또 있을까? “신은 죽었다”는 명제에 포함된 니체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먼저, 신이 지배하던 중세가 무너지고 현대로 넘어오면서, “신으로 대표되는 절대적 가치는 더 이상 가치가 없다”는 선언! 그런데도, 인간이 신이 죽은 자리에 국가와 민족, 자본과 화폐, 시장과 대중, 도덕과 종교, 학문이나 과학 같은 인간적 우상을 만들어 신을 부활시키는 행위에 대한 경고! 마지막으로, 우리 외부에 우상을 만들어 그것에 의존하는 대신, “우리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제안! 이것이 ‘신은 죽었다’는 선언에 포함되어 있는 복합적인 의미이다.
3강) 위버멘쉬, 넘어서는 자 (24년 7월 16일)
위버멘쉬는 ‘신의 죽음’과 ‘인간의 몰락’이라는 두 가지 사건과 관련하고 있다. 위버멘쉬는 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인간의 몰락을 주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위버멘쉬Übermensch는 넘어섬을 뜻하는 ‘Über’와 인간을 뜻하는 ‘mensch’가 합쳐진 말이다. 위버멘쉬는 자기 스스로를 극복하는 존재, 자기 극복의 인격화이다. 자기 극복이란 새로운 것의 생성을 위해 낡은 것의 몰락이 진행되는 실천이며, 이 과정을 주도하는 것이 위버멘쉬이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넘어설 수 있을까? 여기 새로운 스타일을 창안하려는 작가가 있다. 자신의 문체는 그의 자랑이었으며, 그것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점차 그의 작품은 자기복제를 거듭하고, 이제 그는 문체가 가져다준 명성에 갇혀 새로운 실험이 두려워진다.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려고 한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스타일을 철저하게 해체하고, 그것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는 것, 이것이 자기 극복의 시작이다.
4강) 힘에의 의지와 힘의 유형학 (24년 7월 23일)
힘에의 의지에서, 힘은 ‘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역량’을 뜻하고, 의지는 ‘하고자 하는 욕망 혹은 의욕’을 의미한다.
힘에는 두 가지 질이 있는데, 능동적 힘과 반동적 힘이다. 능동적 힘은 시작하는 힘인 데 반해, 반동적 힘은 능동적 힘에 대해 반응하는 힘이다. 아이들의 웃음과 놀이, 춤 같은 것들이 능동적 힘인데, 특별한 의도나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들이다. 반대로 앙심, 분노, 원한(원망) 같은 것들은 모두 반동적 힘인데,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은 적극적 감정이어서 능동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 나를 공격하는 것들에 대한 반응이다.
의지에도 두 가지 질이 있는데, 긍정적 의지와 부정적 의지이다. 의지는 상이한 힘들을 긍정 혹은 부정의 방향 속에서 종합한다. 가령 고통은 우리를 약하게 만들지만 강하게 단련시키기도 한다. 나를 지배하는 고통은 부정적인 것이겠지만 내가 고통을 통제할 수 있다면 고통은 나를 단련시키는 긍정 요소가 될 것이다. 결국 고통을 어떻게 종합할 것인가의 문제다.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은 커다란 고통을 넘어서 획득되는 기쁨이다.
5강) 힘에의 의지와 자유의지 (24년 7월 30일)
의지에는 ‘자유의지’와 ‘힘에의 의지’라는 두 가지 퍼스펙티브가 있다. 먼저 자유의지에 대한 관점 속에서, 나는 자유의지에 의해 행동을 하고, 자유의지에 의해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거나, ‘내 의지로 못할 게 없다’는 의지주의로 빠지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나 행동을 내가 통제할 수 없을 때, 자신의 의지박약을 자책하게 된다. 결국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은 자신의 결단과 의지에만 기댄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으로 쉽게 빠진다. 자유의지의 관점은 오히려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게 된다.
반면 힘에의 의지에 대한 관점은, 나의 판단과 행동은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신체의 작용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의지들로서,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의 의지와 내가 포함된 사회체들의 의지를 이해하려고 한다. 진정한 자유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자유의 조건이 되는 필연을 이해하고 그 위에서 행동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는 필연의 통찰이며,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6강) 영원회귀, 몰락을 욕망하라(24년 8월 6일)
영원회귀는 삶에 대한 실천 의지로서 주체의 선택이다. 영원회귀의 윤리론은 “너의 삶을 다시 한번 살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라!”라고 말한다. 영원회귀의 윤리는 차이를 생성하는 삶을 긍정한다. 영원회귀 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생성‧소멸하는 삶(life)의 방식을 긍정하는 것이다. 생성‧소멸하는 삶의 방식이란 고정된 삶의 유형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와 차이를 만들어 내는 삶을 말한다. 영원회귀의 윤리론은 말한다. “차이만이 반복된다. 동일성을 해체하고 차이를 생성하라.”
7강)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24년 8월 13일)
“그래서 니체가 말하려는 게 결국은 뭐야?” 그 대답은 “아모르파티! 삶을 사랑하라, 네 운명을 사랑하라”이다. 니체의 모든 철학적 메시지는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향해 있으며, 아모르파티는 니체 철학이 의욕하는 마지막 사랑이다. 니체의 운명애(Amor-Fati)는 통상적인 운명론(Fatalism)과는 다르다. 운명론은 ‘체념’을 가르친다. “모든 것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으니, 운명을 받아들여!” 하지만 니체의 운명애는 ‘창조’를 명령한다. 니체가 ‘운명과 삶을 사랑하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운명과 삶을 아름답게 창조하라’는 것이다.
▶참고사항
강의교재: 수업 직전에 배포하는 강사의 ppt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강사소개 : 류재숙
지식공동체 [수유 너머] 연구원. 니체 철학 연구자. 공동체는 무엇보다 공동의 신체라는 생각으로, 지식공동체 [수유 너머]와 먹고 놀고 공부한다. 함께하는 기쁨을 기억하는 신체로서 코뮨의 파토스를 욕망한다. 어느 정오, 니체를 읽기 시작한 이후로 니체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니체 철학이 신체를 아름답게 하고, 세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믿는다. 세계와 사물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 우리 안의 춤추는 욕망을 노래하는 책을 쓰고 싶다. 『복지논쟁』(2012), 『행복한 노동』(2014), 『협동조합 이야기』(2015), 『행복한 생명』(2019), 『니체와 함께 아모르파티』(2024, 근간) 등의 책을 썼다.
▶강의소개
5개의 핵심 키워드와 6개의 주제로 읽어내는 니체 철학의 전모!
니체 철학으로 배우는 삶의 기술
니체에게 사랑은 창조와 동의어이다. 친구를 사랑하면 친구를 창조하고, 삶을 사랑한다면 삶을 창조해야 한다. 따라서 운명을 사랑하는 것은 곧 운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에게 운명이란,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숙명’과 같은 것이 아니며, 운명에 대한 사랑 역시 ‘주어진 숙명에 순응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운명이란 ‘내 삶이 놓여있는 필연적 세계’를 의미하며, 운명에 대한 사랑은 내게 주어진 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운명에 대한 창조 의지’, 즉 운명을 창조할 수 있는 힘에의 의지를 말한다.
니체에게 철학이란 삶을 위한 기술,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 강의는 니체의 퍼스펙티브를 따라, 니체의 텍스트를 연구자의 자료가 아니라 삶의 기술로 활용한다. 그것이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가 철학이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웃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 때, 그가 철학을 무어라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철학으로 삶이 달라지고 신체가 바뀌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웃게 될 테니까.
▶커리큘럼
1강) 니체 철학의 지도 그리기 (24년 7월 2일)
“신은 죽었다”(Gott ist tot), 위버멘쉬(Übermensch),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아모르파티(Amor-Fati)는 니체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다. 이 강의는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니체 철학을 개괄한다. 한 번쯤 들어봤던 멋진 아포리즘으로는 그의 철학에 다가갈 수 없다. 이 강의를 듣고 나면 니체를 아포리즘이 아니라 철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 키워드가 안내하는 ‘니체 철학의 지도 그리기’는 니체 철학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좀 더 가볍게 할 것이다.
2강) 신의 죽음과 인간적 우상 (24년 7월 9일)
“신은 죽었다.” 철학사를 통틀어 이토록 강렬한 명제가 또 있을까? “신은 죽었다”는 명제에 포함된 니체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먼저, 신이 지배하던 중세가 무너지고 현대로 넘어오면서, “신으로 대표되는 절대적 가치는 더 이상 가치가 없다”는 선언! 그런데도, 인간이 신이 죽은 자리에 국가와 민족, 자본과 화폐, 시장과 대중, 도덕과 종교, 학문이나 과학 같은 인간적 우상을 만들어 신을 부활시키는 행위에 대한 경고! 마지막으로, 우리 외부에 우상을 만들어 그것에 의존하는 대신, “우리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제안! 이것이 ‘신은 죽었다’는 선언에 포함되어 있는 복합적인 의미이다.
3강) 위버멘쉬, 넘어서는 자 (24년 7월 16일)
위버멘쉬는 ‘신의 죽음’과 ‘인간의 몰락’이라는 두 가지 사건과 관련하고 있다. 위버멘쉬는 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인간의 몰락을 주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위버멘쉬Übermensch는 넘어섬을 뜻하는 ‘Über’와 인간을 뜻하는 ‘mensch’가 합쳐진 말이다. 위버멘쉬는 자기 스스로를 극복하는 존재, 자기 극복의 인격화이다. 자기 극복이란 새로운 것의 생성을 위해 낡은 것의 몰락이 진행되는 실천이며, 이 과정을 주도하는 것이 위버멘쉬이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넘어설 수 있을까? 여기 새로운 스타일을 창안하려는 작가가 있다. 자신의 문체는 그의 자랑이었으며, 그것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점차 그의 작품은 자기복제를 거듭하고, 이제 그는 문체가 가져다준 명성에 갇혀 새로운 실험이 두려워진다.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려고 한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스타일을 철저하게 해체하고, 그것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는 것, 이것이 자기 극복의 시작이다.
4강) 힘에의 의지와 힘의 유형학 (24년 7월 23일)
힘에의 의지에서, 힘은 ‘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역량’을 뜻하고, 의지는 ‘하고자 하는 욕망 혹은 의욕’을 의미한다.
힘에는 두 가지 질이 있는데, 능동적 힘과 반동적 힘이다. 능동적 힘은 시작하는 힘인 데 반해, 반동적 힘은 능동적 힘에 대해 반응하는 힘이다. 아이들의 웃음과 놀이, 춤 같은 것들이 능동적 힘인데, 특별한 의도나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들이다. 반대로 앙심, 분노, 원한(원망) 같은 것들은 모두 반동적 힘인데,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은 적극적 감정이어서 능동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 나를 공격하는 것들에 대한 반응이다.
의지에도 두 가지 질이 있는데, 긍정적 의지와 부정적 의지이다. 의지는 상이한 힘들을 긍정 혹은 부정의 방향 속에서 종합한다. 가령 고통은 우리를 약하게 만들지만 강하게 단련시키기도 한다. 나를 지배하는 고통은 부정적인 것이겠지만 내가 고통을 통제할 수 있다면 고통은 나를 단련시키는 긍정 요소가 될 것이다. 결국 고통을 어떻게 종합할 것인가의 문제다.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은 커다란 고통을 넘어서 획득되는 기쁨이다.
5강) 힘에의 의지와 자유의지 (24년 7월 30일)
의지에는 ‘자유의지’와 ‘힘에의 의지’라는 두 가지 퍼스펙티브가 있다. 먼저 자유의지에 대한 관점 속에서, 나는 자유의지에 의해 행동을 하고, 자유의지에 의해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거나, ‘내 의지로 못할 게 없다’는 의지주의로 빠지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나 행동을 내가 통제할 수 없을 때, 자신의 의지박약을 자책하게 된다. 결국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은 자신의 결단과 의지에만 기댄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으로 쉽게 빠진다. 자유의지의 관점은 오히려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게 된다.
반면 힘에의 의지에 대한 관점은, 나의 판단과 행동은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신체의 작용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의지들로서,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의 의지와 내가 포함된 사회체들의 의지를 이해하려고 한다. 진정한 자유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자유의 조건이 되는 필연을 이해하고 그 위에서 행동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는 필연의 통찰이며,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6강) 영원회귀, 몰락을 욕망하라(24년 8월 6일)
영원회귀는 삶에 대한 실천 의지로서 주체의 선택이다. 영원회귀의 윤리론은 “너의 삶을 다시 한번 살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라!”라고 말한다. 영원회귀의 윤리는 차이를 생성하는 삶을 긍정한다. 영원회귀 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생성‧소멸하는 삶(life)의 방식을 긍정하는 것이다. 생성‧소멸하는 삶의 방식이란 고정된 삶의 유형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와 차이를 만들어 내는 삶을 말한다. 영원회귀의 윤리론은 말한다. “차이만이 반복된다. 동일성을 해체하고 차이를 생성하라.”
7강)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24년 8월 13일)
“그래서 니체가 말하려는 게 결국은 뭐야?” 그 대답은 “아모르파티! 삶을 사랑하라, 네 운명을 사랑하라”이다. 니체의 모든 철학적 메시지는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향해 있으며, 아모르파티는 니체 철학이 의욕하는 마지막 사랑이다. 니체의 운명애(Amor-Fati)는 통상적인 운명론(Fatalism)과는 다르다. 운명론은 ‘체념’을 가르친다. “모든 것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으니, 운명을 받아들여!” 하지만 니체의 운명애는 ‘창조’를 명령한다. 니체가 ‘운명과 삶을 사랑하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운명과 삶을 아름답게 창조하라’는 것이다.
▶참고사항
강의교재: 수업 직전에 배포하는 강사의 ppt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강사소개 : 류재숙
지식공동체 [수유 너머] 연구원. 니체 철학 연구자. 공동체는 무엇보다 공동의 신체라는 생각으로, 지식공동체 [수유 너머]와 먹고 놀고 공부한다. 함께하는 기쁨을 기억하는 신체로서 코뮨의 파토스를 욕망한다. 어느 정오, 니체를 읽기 시작한 이후로 니체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니체 철학이 신체를 아름답게 하고, 세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믿는다. 세계와 사물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 우리 안의 춤추는 욕망을 노래하는 책을 쓰고 싶다. 『복지논쟁』(2012), 『행복한 노동』(2014), 『협동조합 이야기』(2015), 『행복한 생명』(2019), 『니체와 함께 아모르파티』(2024, 근간)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