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세계의 철학  필연과 가능으로 읽는 ‘존재’와 ‘세계’ 

철학의 정원 6

프레더릭 바이저 지음, 김주휘 옮김 | 2011-03-05 | 360쪽 | 20,000원


상상 그 이상을 말하는 철학을 만나다!

로봇이 주인공을 죽인다면 정말로 미래가 로봇의 세상으로 바뀔까? 반대로 주인공이 핵전쟁의 근원이 될 로봇의 기지를 미리 폭파한다면 미래의 핵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이 책은 이와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는 다른 상상의 세계, 가정된 세계가 어떻게 실재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제시한다. 강의식의 설명은 이해를 도왔으며, 가능세계에 관한 여러 문제와 다양한 가능세계론을 조목조목 살피고 있다. 수학과 논리학적인 사고, 논리식을 사용해 한 단계씩 논증하는 이 책은 인간 존재와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가능세계론 입문서이다. 


저·역자 소개 ▼

저자 미우라 도시히코 三浦俊彦
1959년 나가노(長野)현 출생. 1983년 도쿄(東京)대학 미학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동 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비교문학 비교문화 박사과정을 마친 후, 현재는 와요(和洋)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분석철학과 미학이며,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논리학입문』(論理学入門), 『허구세계의 존재론』(虚構世界の存在論), 『혼이 태어나는 방식』(たましいのうまれかた), 『싱크로나이즈드』(シンクロナイズド.), 『환경음악 입민』(環境音楽入悶), 『서플리먼트 전쟁』(サプリメント戦争), 『논리패러독스』(論理パラドクス), 『논리서바이벌』(論理サバイバル), 『심리패러독스』(心理パラドクス), 『논리학을 알 수 있는 사전』(論理学がわかる事典) 등이 있다.

역자
박철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고베(神戸)대학 이학연구과 비선형과학전공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생명현상의 해명,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인지 구조에 대한 규명에 주안점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그 분석틀로서 분배법칙이나 배중률이 성립하지 않는 대체 논리 체계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생명과 장소』(그린비, 2010)가 있다.


차례 ▼

목차

서문_‘무엇이든 가능하다’의 세계관

 

1장_ 가능세계로 무엇이 가능한가?

§1. 철학과 양상

§2. 양상과 양화

§3. ‘만약에……’

§4. 법칙과 인과

§5. 의미와 외연

§6. 허구와 가치판단

 

2장_ 가능세계의 네트워크

§7. 포화하는 세계

§8. 도달 가능한 세계, 불가능한 세계

§9.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개체

§10. 세계들을 관통하는 개체

§11. 지명된 개체

 

3장_ 가능세계란 무엇인가?

§12. 크립키형과 루이스형

§13. 가능주의—있을 수 있는 것은 있다

§14. 양상주의—악순환의 우려

§15. 자연주의—신의 마음인가, 시공간 좌표인가

§16. 현실주의의 한계

§17. 허구주의—실용이라는 진리

 

4장_ 가능세계는 정말로 있는 것인가?

§18. 면도날을 날카롭게 갈아라

§19. 귀납법을 정당화하라

§20. 허무주의를 회피하라

§21. 평행우주를 분리하라

§22. 세계의 개수를 결정하라

 

5장_ 자연과학과 가능세계

§23. 왜 양자의 요동인가?

§24. 왜 이 우주에 생명이?

§25. 왜 ‘이 우주’인가?

§26. 왜 당신은 존재하는 것인가?

 

6장_ 가능세계의 외측(外側)

§27. 불가능세계?

§28. 철학적 필연성?

§29. 무한개의 논리공간?

§30. 혼돈 속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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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추천글 ▼

“무엇이든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철학!

―‘가능세계’에 관한 여러 논점을 꼼꼼히 소개한 가능세계론 입문서

 

미래의 로봇이 현실의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 시간이동을 하는 영화 <터미네이터>는 몇 가지 질문을 낳는다. 예컨대 로봇이 주인공을 죽인다면 정말로 미래가 로봇의 세상으로 바뀔까? 반대로 주인공이 핵전쟁의 근원이 될 로봇의 기지를 미리 폭파한다면 미래의 핵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러나 더 큰 의문은, 그렇게 해서 변한 세계는 이미 실현된 미래와 같은 세계인가, 다른 세계인가 하는 점이다. 주인공이 죽는다면, 그가 살았던 미래의 일들은 없던 일이라고 하면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양자역학의 평행세계(parallel world) 이론은 그렇게 해서 변한 세계는 미래에 이미 실현된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계속 존재한다고 답을 한다. 두 세계가 시간 차이를 두고 서로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능세계의 철학』은 이와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는 다른 상상의 세계, 가정된 세계가 어떻게 실재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제시한 책이다. 강의를 하듯 편안한 말투로 가능세계에 관한 여러 문제와 다양한 가능세계론을 조목조목 살피고, 수학과 논리학적인 사고, 논리식을 사용해 한 단계씩 질문을 밟아 논증을 축적해 감으로써 인간 존재와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가능세계론 입문서이다.

17세기 라이프니츠가 ‘가능한 모든 세계’를 탐구한 것에서 연원하는 가능세계론은 영미권의 분석철학자들(크립키, 힌티카, 루이스 등)을 통해 발전한 뒤 현재는 크게 확장되어 다방면에서 응용되고 있다. 철학과 논리학 분야뿐 아니라 로봇 연구와 인지과학, 컴퓨터 과학, 언어학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현대 여러 학문 분야의 발전에 공헌한 이론임에도 가능세계론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국내의 많은 철학자들이 주로 독일과 프랑스의 철학을 연구하는 데 비해 이 방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국내 저작이 2종에 불과할 정도이다)이기도 하지만, 분석철학이 철인의 지혜에서 시대와 개인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철학적 쟁점을 명확히 부각시켜 자신의 입장을 뚜렷하게 결정하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듯, 가능세계론은 “동서고금의 어떠한 철학보다도 규모가 큰 치밀하고 정묘한 형이상학”으로 인간존재와 세계에 대한 질문을 극단까지 허용하는 철학이다. 더구나 이 책은 분석철학적 기법을 과도히 사용하기보다는 초심자들이 가능세계에 관한 논점을 하나하나씩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입문서로서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다. 전문 철학연구자뿐 아니라 새로운 과학의 실용성에 감탄하고 여러 종류의 픽션과 예술에 감동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안내하는 가능세계의 철학에 매료될 수 있을 것이다.

 

 

가능세계론은 왜 필요한가?

 

본래 철학은 ‘가능성’이라는 것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어떤 사태가 우발적으로 그러하거나 그러할 듯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 ‘그렇지 않은 경우가 불가능한’ 존재양식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플라톤의 이데아란 우연히 존재하는 개체를 초월한, 영원히 있는 그대로가 아니면 안 되는 필연적인 존재자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나 논리학은 필연적으로 성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성의 진리를 다루는 학문이었다. 역사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지만, 철학은 우발적으로 결정된 어떤 종류의 진위만을 문제 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연한 사실과 필연적 사실을 구별하고, 허위에 있어서도 참임이 가능한 허위, 참임이 불가능한 허위를 구별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필연, 우연, 가능, 불가능 등을 진리의 ‘양상’으로 다룸으로써 철학은 발전해 왔다. 고대 그리스뿐 아니라 서양 중세의 신의 존재 증명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가능세계론은 이런 양상에 관한 개념들을 직접적으로 지시 가능한 기호와 숫자로 환원하여 이해를 쉽게 만들고 있다. 철학뿐만이 아니라 언어학과 자연과학에서 이 이론이 응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의무, 사랑, 지식 등 일상적인 가치 개념도 논리학의 추론 규칙에 따라 질문과 답으로 구성하거나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것으로 확장시키기에 이르렀다. 예술이나 픽션에 응용되고, 과학철학 분야의 인과 및 확률 개념, 심지어 윤리학에까지 적용 가능한 무궁무진한 철학 도구가 가능세계론인 것이다.

 

 

가능세계론은 어떤 모습인가?

 

이 책은 가능세계론을 크게 ‘현실주의’와 ‘가능주의’로 나눠 논한다. 구체적 세계는 현실세계뿐으로 가능세계라는 것은 단순히 편의적인 추상개념이라고 하는 것이 현실주의, 가능세계를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실재하는 구체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주의이다. 현실주의는 이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것만이 존재의 전부라는 상식에 기반해서 이 안의 자원만으로 모든 가능세계를 구성하려 하는 입장이다. 반면에 가능주의는 유비가 방천화극을 휘두르는 세계, 조조가 백제성에서 비운의 최후를 맞이하는 세계, 주유가 제갈량을 패퇴시키는 세계와 같은 가능세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또 다른 면에서 봤을 때는 이 현실세계만이 선택될 확률이 극히 낮음을 알 수 있다(우주에 지구라는 것이 있고, 이 행성에서는 생명체가 살 수 있으며, 나아가 지능이 뛰어난 인간이라는 존재가 만들어질 확률은 거의 무한소에 가깝다). 이 책은 이 두 입장을 크게 나눈 뒤 다양한 철학자들이 제시한 가능세계론을 하나씩 살펴보며 현실주의가 결국 딜레마에 빠져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가능주의의 극단, 양상실재론

이 책은 가능주의 하위에 있는,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에 위치하는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의 양상실재론(Modal Realism, 가능세계 실재론)을 기반으로 가능세계론을 펼쳐 간다. 이 가능세계론은 예컨대 보라색의 아기 귀신이나 신장 백 미터의 인간 등 터무니없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고, 실제로 이를 진심으로 주장하는 철학자도 드물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불완전성 정리 등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믿지 않을 수 없게 된 과학이론이 무수히 많음을 감안하면 이 이론의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능세계론은 양상적 직관에 의존하여, 가능한 것은 필연적으로 가능하다고, 즉 여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필연적이며, 따라서 무수한 가능세계의 존재는 필연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없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일도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물이 100℃에서 끓는다고 믿지만, 이는 단지 귀납법적인 추론일 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백조는 하얗다’라는 명제가 검은 백조의 등장으로 무너졌듯이 귀납법적인 믿음은 언제고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가능세계론은 이 현실세계와 어떠한 외적 관계도 갖지 않는 다른 시공간(물리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체계를 다시 논리적으로 이 현실 내부에 있는 것으로 끌어들이는 데에도 반대한다. 즉, 별개의 가능세계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하나의 논리공간에 불과하며, 이러한 논리공간이 실수의 수만큼이나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논리공간을 갖고 있는 초논리공간, 초논리공간들을 갖고 있는 초초논리공간까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마치 태양계를 은하계가 감싸고 있고, 은하계를 은하단이 감싸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수리논리학의 방법론이 적용된 가능세계론은 논리상의 제한을 둘 수 있는 이론적 장치가 개발되지 않는 한 무한히 확장 가능한 이론인 것이다.

 

 

가능세계를 어떻게 응용할 것인가?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많은 순간 선택을 하고, 그때 선택한 것과 다른 것을 택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하곤 한다. 가능세계론을 적용해 말하자면, 선택을 바꾸고 난 이후 거기에 동반하는 최소한의 변경 사항만을 적용했을 때 무엇이 성립할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컨대 그때 고민했던 시험문제의 답안을 다른 것으로 결정했다면, 그때 사귀던 이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 혹은 그 사람은 이러저러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라고. 과학적 실험들 역시 본질적으로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시료에 나트륨을 1g 넣으면 이렇게 될 것이다, 뇌의 이 부위를 전극으로 자극하면 저렇게 될 것이다, 라고. 다만 과학적 가설들은 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고 실제로 성립하지 않는 가설은 잘못된 추측으로 부정된다는 점에서 훨씬 실증적이다.

그러나 과학적 실용성과는 전혀 다르게 실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쾌감을 주는 상상도 있다. 픽션이 그러하다. 영화나 드라마에 울고 웃고, 소설이나 만화를 읽고 감명을 받는 것은 그 수많은 극의 세계들이 그리는 바가 현실에서 성립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점에서 인간사에서 반복해서 벌어지는 보편적인 사건의 양태를 그려 내어 이야기의 개연성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논리적 법칙 혹은 이야기의 개연성을 지키는 한에서 우리는 현실의 법칙에서 벗어난 세계를 마음껏 상상해 볼 수 있다.

나아가 어떠한 초자연이나 황당무계한 것도 엄밀히 생각할 방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세계의 논리라면, 다친 사람을 보고 도와줄 것인가, 모른 척할 것인가와 같은 윤리에 대해서도, 생명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우주는 왜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와 같은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가능세계론은 지금까지의 특권적 위상을 점했던 논리에 새로운 의문을 던져 주는 새로운 철학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