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장애를 논하다  메를로-퐁티와 롤스에서 호네트와 아감벤까지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8

크리스트야냐 크리스티안센·시모 베마스·톰 셰익스피어 지음, 김도현 옮김 | 2020-01-09 | 528쪽 | 29,000원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국적을 지닌 학자들이 모여, 철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철학 전반의 시야에서 장애를 다룬 최초의 책이다. 이 책은 형이상학, 정치철학, 윤리학이라는 철학의 세 가지 주요 분과를 기반으로 하여 ‘철학적 이슈’로서의 장애에 초점을 맞춘다. 모리스 메를로-퐁티와 존 롤스에서부터 악셀 호네트와 조르조 아감벤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에게도 낯익은 현대 철학자들의 이론 및 개념을 통해 장애에 대한 논의가 펼쳐진다.  


저·역자 소개 ▼

저자 크리스트야냐 크리스티안센 Kristjana Kristiansen
노르웨이과학기술대학교 사회사업학과 교수. 그녀의 학문적 배경은 심리학이며 공중위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연구 관심사는 장애학, 정신보건, 질적 방법론이다. 

저자 
시모 베마스 Simo Vehmas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Stockholm University) 특수교육학과 교수. 철학과 특수교육을 전공했으며, 그의 연구 관심사는 장애이론과 장애 윤리이다.  

저자
 톰 셰익스피어 Tom Shakespeare
영국의 사회과학자이자 장애인 활동가로, 생명윤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로 『장애학의 쟁점』Disability Rights and Wrongs(학지사, 2013)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 『철학, 장애를 논하다』Arguing about Disability(그린비, 2020)가 있다.  

역자 
김도현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의 발행인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노들장애인야학 부설 기관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연구 활동가로도 일하고 있다. 《차별에 저항하라》,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장애학 함께 읽기》, 《장애학의 도전》 등을 썼으며,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 《철학, 장애를 논하다》, 《장애와 유전자 정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차례 ▼

책머리에

서장. 장애학과 철학의 피할 수 없는 동맹: 시모 베마스·크리스트야나 크리스티안센·톰 셰익스피어

제1부 _ 형이상학
1장. 사회정의와 장애: 스티븐 스미스
서론 | 의료적 모델의 재해석 | 사회적 모델의 재해석 | 재능으로 간주되는 손상? | 정체성과 인간의 행위주체성 | 결론: 자아성, 장애, 사회정의

2장. 장애의 정의들: 스티븐 에드워즈
서론 | 네 가지 견해 | 맺음말

3장. 장애와 손상의 존재론: 시모 베마스·페카 메켈레
서론 | 신체를 위한 그리고 신체에 대한 탈근대적 성전(聖戰) | 세계의 고유한 특징과 관찰자-상대적인 특징 | 손상: 원초적 사실인가 제도적 사실인가? | ‘사회적 손상’의 구성 | 존재론과 장애정치

4장. 장애와 사고하는 몸: 재키 리치 스컬리
윤리학과 몸 | 사고하는 몸 | 상황을 파악하기 | 전언어적·비개념적 내용 | 신체도식 | 신경과학에서의 체현된 마음 | 체현된 언어 | 이례적인 몸의 위상

제2부 _ 정치철학
5장. 인격과 장애인의 사회적 통합: 헤이키 이케헤이모
서론 | 인격: 그것은 무엇이며, 왜 우리는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 대인관계론적 인격, 인정, ‘우리’라는 것의 본질 | 정신적 인격의 요구에 대한 적절한 반응으로서의 인정적 태도 | 인격과 장애 | 사회적 배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사회적 통합: 우리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 맺음말
편집자 추천글 ▼

장애란 무엇이며 누가 장애인인가?
철학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사유하다

“장애학과 철학 모두에서 환영할 만한 작품!”
-『계간 장애학』(Disability Studies Quarterly)

“철학, 생명윤리, 사회과학, 법학, 장애학, 특수교육 분과의 학자들에게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는 풍성한 책.”
-『의학 윤리 저널』(Journal of Medical Ethics)

‘철학’의 시각에서 장애를 다룬 최초의 단행본!
68혁명 이후 신사회운동의 부상이라는 흐름 속에서 본격화된 장애인 대중운동, 그리고 이러한 대중운동이 동력이 되어 영어권 국가들에서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장애학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분과 학문들을 아우르고 횡단하는 학제적 연구 분야이며, 이와 같은 학제적 성격은 현재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장애 모델을 정립한 영국의 장애학에서 사회학이나 사회정책학의 영향력이 강했던 반면, 미국에서는 문학, 사회심리학, 교육학 등이 장애학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즉 장애학의 성립 과정에서 철학은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어떤 면에서는 방관자적 위치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물론 흔히 이야기되는 것처럼 철학이 하나의 세계관이고 입장이라면, 장애학을 실천해 왔던 활동가들은 언제나 일정한 철학적 입장을 표명해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철학이라는 명시적 타이틀을 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장애학과 연동해 이루어지는 모든 사유와 글쓰기 작업은 그 자체로 일정한 철학적 ‘효과’를 발생시켜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장애학이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특히 페미니스트 철학자들, 윤리학자들, 탈근대주의 이론가들은 몸과 손상/장애를 주제로 한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국적을 지닌 학자들이 모여, 철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철학 전반의 시야에서 장애를 다룬 것은 바로 이 책 『철학, 장애를 논하다』가 최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전개되는 장애에 대한 논의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리스 메를로-퐁티와 존 롤스에서부터 악셀 호네트와 조르조 아감벤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에게도 낯익은 현대 철학자들의 이론 및 개념과 조우하게 된다.

형이상학, 정치철학, 윤리학적 이슈로서의 장애
이처럼 이 책을 참신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철학적 이슈’로서의 장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선구적인 저작집은 형이상학, 정치철학, 윤리학이라는 철학의 세 가지 주요 분과를 기반으로 하여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형이상학에서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장애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현상의 본질과 과학적 지식의 관계는 무엇인지가 논의된다. 1장은 기존의 의료적 장애모델과 사회적 장애모델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면서, 인간의 행위주체성(agency)을 사상하지 않는 장애 모델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2장에서는 장애의 정의(定義)에 연루되어 있는 의료적, 도덕적, 미적 가치들이 비판적으로 검토되며, 3장은 존 서얼이 발전시킨 ‘원초적’ 사실과 ‘제도적’ 사실의 구분에 기반을 두고 손상과 장애의 존재론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4장은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관점에서 장애의 물질적 토대와 체현된 본질을 논하는데, ‘이례적인 몸이 누군가의 정체성과 자아감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이슈를 다루기 위해서는 새로우면서도 철저히 경험적인 지식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제2부 정치철학에서는 자유, 평등, 정의 같은 개념들이 장애와 관련하여 어떻게 재해석되어야 하는지가 주요 초점이라고 할 수 있다. 5장은 호네트의 인정이론 접근법에 기초하여 ‘대인관계론적 인격’(interpersonal personhood) 개념을 도입하고, 이 개념을 중심으로 장애인의 진정한 사회적 통합을 위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요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6장은 롤스의 정의론 및 소극적 자유 개념과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장애를 인간의 자유와 정의(正義)에 대한 본질적 이슈로 확립하며, 7장은 손상과 재능 부재(non-talent)의 경계를 다각도로 고찰하면서 분배적 정의가 지닌 정치적 성격을 강조한다. 그리고 8장은 ‘여성’과 ‘장애인’ 양자 모두가 일종의 사회적 구성개념이자 억압의 산물임을 논하면서, 집단 정체성의 유의미성과 한계, 정체성 정치의 타당성을 재검토하고 있다.
제3부 윤리학의 첫 두 장에서는 농(聾)의 ‘치료’ 및 예방이라는 복합적이고 논쟁적인 이슈가 다루어진다. 즉 9장은 인공와우 시술을 옹호하는 소위 ‘열려 있는 미래론’을 농아동의 언어권이라는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있으며, 10장은 ‘농배아’(deaf embryo) 선택에 활용되는 생식 및 진단 기술과 유전상담의 윤리를 논의하고 ‘비지시적 절충’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11장에서는 장애 관련 법률의 형성에서 의료적 담론의 영향력이 구체적인 판례를 통해 실증적으로 분석되고 있는데, 이는 소위 ‘삶의 질’이나 ‘최선의 이익’ 평가가 어떤 식으로 의료 권력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12장은 장애와 관련된 가장 첨예한 이슈라 할 만한 산전 선별검사와 선별적 낙태를 다룬다. 선별검사를 정당화하는 ‘자율성’이라는 논거가 전반적으로 재검토되며, 장애를 중심으로 한 논의와 적절한 산모보건을 중심으로 한 논의를 결합할 경우 각각의 관점 내에 존재하는 비판적 잠재력이 강화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3장은 아감벤의 이론적 작업에 의지해 장애인의 사회적 배제를 논한다. 앞선 장애서 논의된 산전 선별검사 및 선별적 낙태와 더불어 정신장애인의 정신병원 수용, 낯선 이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심리-정서적 장애차별주의가 ‘호모 사케르’와 ‘예외상태’라는 개념틀 속에서 독창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장애의 존재론부터 현재적 논쟁들까지 다루는 종합적인 책
비단 철학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장애 그 자체에 관한 논의는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장애인이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인격체와 비인격체를 가르는 경계가 되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철학, 장애를 논하다』는 장애와 관련된 제도, 정책, 관행의 도덕적 본질, 그리고 그것들이 장애인과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관해 분석함으로써 우리에게 더욱 풍부한 논점을 제공해 준다. 글래스고 대학의 장애학과 교수 닉 왓슨의 평가처럼, 이 책은 장애의 존재론을 포함해 윤리적 측면, 장애학의 현재적 논쟁들까지 다루고 있는 몹시 중요하고 종합적인 책이다. 지금까지 종합적이고 철학적인 장애에 대한 접근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만큼, 이 책은 장애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장애학이나 응용철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뒤늦게 찾아온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